월간참여사회 2002년 03월 2002-03-01   514

‘취득주식 자금원 공개를’

부패게이트 새 돈줄 주식로비 차단법


“돈과 명예는 양립할 수 없다.”

미국의 공직자들이 고위직에 임명될 경우 마음속에 새겨두는 경구이다. 실제로 미국의 공직자들은 고위직에 올라가는 순간부터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한다. 그 흔한 식사대접 한번 마음대로 받지 못한다. 미국의 공직자윤리법에 자세한 행동규범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한끼 식사로 얼마 이하의 식사가 허용되는지, 의원의 직무와 관련된 민간인으로부터 여행경비의 보조를 받는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당한지, 마치 전투교범처럼 자세히 제시되어 있다. 이뿐 아니다. 공직자들이 공직에 취임하는 순간부터 자기 재산을 마음대로 굴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얼마 전 뉴욕시장에 당선된 블룸버그는 뉴욕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시장으로서 공직을 수행하는 데 최대주주로 있는 불룸버그와의 관계가 문제가 되니 그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는 권고를 받았다. 즉, 주식을 처분하든지 시장 직을 관두든지 양자택일하라는 것. 이렇듯,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들이 공직자 윤리규정의 이해충돌 방지조항에 따른 ‘재산 손실’을 불평하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특히, 민간기업에서 활동하던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부시 행정부의 경우, 이런 불만이 더욱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 위험수위

그러나 우리 사정은 정반대이다. ‘의원도 기업 활동을 할 자유가 있다’며 국정감사에서 동료의원들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노량진 수산시장에 ‘무혈입성’하려던 주진우 한나라당 국회의원. 결국 그는 ‘공직을 돈벌이에 이용하려 한다’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비판에 가로막혀 노량진 수산시장의 인수를 포기했다. 주진우 의원 사건은 한국의 공직사회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단면인 셈이다.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는 각종 게이트에서 나타난 ‘주식로비’와 관련된 사건들이다. 윤태식 게이트에서 윤 씨는 자신이 경영하던 패스21사의 사세 확장을 위해 여야 정치인·벤처출입 기자·관련 공무원들에게 자사 주식을 무상으로 혹은 액면가에 양도했다. 그는 자신의 로비대상에 등급을 매겨 주식 수와 주가를 조정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용호게이트에서는 주식의 직접 증여 대신 펀드를 활용한 간접 투자가 로비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 씨는 지난해 10월 약 900만 달러의 해외전환사채(CB)를 발행한 뒤, CB의 주식전환이 가능해진 올해 1월 CB 일부(약 3분의 1)를 정·관계 인사들에게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본격적인 ‘작전’을 통해 주식 가격을 보름 만에 5배까지 오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들은 주당 약 2500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주식로비’란 대체로 ‘코스닥 등록을 앞둔 유망기업이 유상증자를 하면서 주식을 예상주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또는 무상으로 로비 대상자에게 제공하는 로비 방식’을 지칭한다. 한편, 이용호게이트처럼 직접 주식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고수익이 예상되는 펀드에 가입하고 그 과정에서 내부자거래 등을 시도하는 경우도 공직자와 기업의 유착관계라는 점에서는 규제의 대상이라 할 것이다.

‘주식로비’는 무상으로 돈을 건네받는 것이 아니라 시장가격이 명확하지 않은 장외주식에 투자하는 형식을 갖춤으로써 로비라는 죄의식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자본금이나 주주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벤처기업의 경우 공직자가 직·간접적으로 주식을 취득하는 행위는 사실상 벤처기업과 공직자의 동업자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고위공직자들의 주식투자 문제는 이미 외국에서는 공직윤리 중 가장 문제가 되는 영역이 되었고, 따라서 이를 규제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모색중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은 고위공직자의 주식취득을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규제했다고 한다. 첫째, 거래소에 상장된 주식을 관련 공직자가 보유한 경우 ‘내부자거래’로 간주해 규제하거나, 둘째, 자본금이나 주주 수가 적은 첨단 기술 주를 가진 공직자는 ‘해당기업과 동업’하는 것으로 취급해 규제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는 공직자와 이해충돌관계에 있는 보유 주식을 처분하도록 권고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해상충죄로 형사처벌하거나 이해충돌을 피하기 위한 폐쇄펀드(BLIND TRUST)제도 등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국가공무원 윤리규정에 따라, 이해관련자들로부터 미공개 주식의 양도는 유상·무상을 불문하고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허술한 주식투자 규제, 허물어지는 공직윤리

우리의 경우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공직자들이 주식보유 현황을 공개하고 그 거래내역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주식보유현황보다는 취득시점과 취득경위, 자금원의 출처 등을 파악해야 주식을 통한 로비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으로는 이 부분을 규제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 외에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등의 몇몇 조항(제25조 영리업무의 금지) 등에서도 주식투자와 관련된 규제조항을 발견할 수 있으나 선언적인 성격이 강하고 특별한 처벌규정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주식로비의 경우, 대부분 형법상의 뇌물죄를 적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뇌물죄의 경우 ‘대가성’의 입증 외에도 재산상 이익을 얻었는가를 입증해야 한다는 난점이 있다. 따라서 만약 그가 당시 장외거래가격에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 뇌물죄로 처벌할 수 없다. 물론, 이런 경우 법률상으로는 뇌물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가 공직자가 아니었다면 그 주식을 취득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을지 모른다는 점과 그가 정당하게 주식을 취득했다 하더라도 그의 영향력으로 인해 주가가 변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규제의 필요성이 있다. 분명한 것은 뇌물죄만으로는 공직자들의 주식로비와 관련된 문제들을 전반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식로비’ 막으려면 공직자윤리법 개정해야

결국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보면 주식로비에 대해서는, 감시체계로부터 처벌규정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법체계의 보완이 요구된다. 보완의 기본 방향은 다음과 같다. 먼저 현재 보유 주식의 취득 경위와 자금원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둘째,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이를 심사해 직무와 이해가 충돌할 우려가 있는 주식을 매각하도록 강제하며, 셋째, 비상장주식의 경우 아예 기업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일정 직급에 있는 공직자의 경우 주식 취득을 금지하고 이미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처분하도록 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미국의 경우처럼 ‘폐쇄신탁(Blind Trust)의 도입’. ‘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와 ‘고위직의 경우 인사청문회의 개최’ 등을 통한 사전통제장치들을 마련하는 것도 주식로비를 근절할 대안일 수 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38개 시민단체들은 작년 11월 주식로비의 규제방안을 포함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입법 청원했다. 그리고 뒤이어 천정배 의원을 비롯한 20여 명의 여야의원들은 시민단체의 공직자윤리법안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제 공직자의 주식로비를 규제하기 위한 공은 국회로 넘어간 셈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가장 부패한 집단으로 지목되어온 국회가 이를 기꺼이 통과시킬 보장은 없다. 부패방지법 제정과정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참여와 감시의 정신, 그리고 시민단체의 의지와 행동이,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위해 다시 요구된다 할 것이다.

최한수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본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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