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3월 2002-03-01   1262

가나가와현 야마토시 – 할머니운동가 이토 야스코와 노인복지단체 “소오”

‘사람이 보물이야!’


본지는 이번 호부터 일본 풀뿌리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소개한다. 오는 6월 13일로 예정된 한국 지방선거와 지방자치를 염두에 두고 일본의 자치 현장을 둘러보자. 꼼꼼히 학습한 뒤 궁리해보자. 시민참가형 선거와 풀뿌리민주주의 리더수비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지. 편집자주

“운동가들끼리 이념문제를 놓고 치열한 토론을 거듭하고 있던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발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는 한 운동가의 체험담은 풀뿌리 민주주의적 리더십이 무엇인가에 관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일본 가나가와(神奈川縣)현 야마토(山和)시에서 30년이 넘게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해온 이토 야스코(尹藤康子) 할머니는 풀뿌리 민주주의적 리더십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삶의 한복판에 들어가지 않는 한, 주민들의 말을 통해 주민들을 지도하고 동의를 얻는 힘, 즉 풀뿌리 민주주의적인 리더십은 길러지지 않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적인 리더십은 문제가 있는 곳에 들어가 그 문제를 생활자들과 함께 해결해나가는 경험을 통해 길러지는 것입니다. 제 말이 비교적 알아듣기 쉽다고 얘기하는 것도, 주민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기 위해서 그들의 일상언어를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저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가 대표로 있는 소오(想)는 1988년에 만들어진 노인복지관련 비영리법인으로, 가나가와현의 ‘워커즈 콜렉티브’(Worker’s Collective’ 지역주민들이 지역에 필요한 서비스 등을 시민사업으로 담당하기 위해 전원이 출자하고 경영에 책임지며 스스로 노동을 담당하는 조직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기행』 중에서) 가운데 하나이다. 소오(想)라는 단체 이름은 지역사회에서 ‘누군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想)과 ‘내가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뜻(想)을 결합해 하나의 활동을 만들어 왔다는 의미(想)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소오의 역사는 곧 주민들의 아마추어 리더십을 길러온 역사였다”라는 게 그의 평가다.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가는) 뛰면서 동시에 뛰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삶의 현장에서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지요. 이런저런 글을 통해 민주주의, 정의, 평등, 자립, 자치 등을 말했지만 실상은 고요한 호수 속을 헤엄치고 있는 오리의 모습에 비유할 수 있지요. 오리란 게 상반신은 우아해 보이지만, 물밑의 다리는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이토 할머니의 나이는 74세. 현장에서 한 발 물러나 여생을 충분히 편히 보낼 수 있는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을 헤아리기라도 한 것일까.

“현장에서 이렇듯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제 주위에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코디네이터들이 있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했다.

주민 속에서 아마추어 리더십 기르기

소오의 지난해 예산은 1억5000만 엔(약 10억 원) 가량. 204명의 유급 자원활동가가 일하고 있다. 아마추어만의 힘으로는 조직 운영이 버겁지 않을까. 아마추어 리더십을 어떻게 길러왔는지 물어 보았다. 대답은 광고 문안처럼 간단명료했다.

“역할이 사람을 길러내지요.”

이 단체의 조직적 모체인 가나가와 생활클럽의 활동가들과 인터뷰를 할 때 꼭 한번쯤은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도모이쿠(共育)라는 표현이다. 상대방을 성장시키지 않으면 자신도 절대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이토 할머니도 이 단어를 썼다.

“우리 단체는 사람이 보물이에요. 공육(共育)하지 않으면 풀뿌리 민주주의적 리더십은 절대 길러지지 않아요. 멤버들 간의 공육관계를 통해 합력(合力)을 키워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성장할 수 없었을 거예요.”

시민의 정부는 지역사회의 일상에서 시작

도모이쿠(共育)! 가나가와 생활클럽운동그룹의 창시자인 요코다(橫田克己) 씨는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지도한다는 것은, 그것이 필요한 관계를 지속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상호간의 힘으로 지도와 피지도의 관계를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끝내기 위해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리더십과 공육이 관계 속에서 작용하지 않는 한, 삶의 현장이 지니고 있는 다양성과 자주성에 기초한 민주주의는 결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소오’야말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전형이 아닐까.

풀뿌리 민주주의형 선거를 실천하고자 했던 후보자들이라면 한번쯤은 머리속에 떠올렸을 속담이 하나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 일본어 사전에서 이 속담의 의미를 살펴보니,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오히려 알기 어렵다”고 풀이되어 있다. 시민참가형 선거를 표방하는 후보자들이 선거 뒤 이 속담을 곱씹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와사키(川崎)시의 시장 선거에 시민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한 후보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정보공개운동을 쉬지 않고 해왔지만, 정작 내가 살고 있는 가와사키시의 일상적인 지역활동에 관해서는 모르는 점들이 많았습니다. 시민의 정부, 시민참가형 선거를 표방하였지만 지역사회의 일상생활 속에서 진지하게 음미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풀뿌리 민주주의형 선거가 무엇인가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이해하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뿌리 민주주의적 리더십이 몸에 배어 있지 않는 한, 풀뿌리 민주주의형 선거를 머리로 이해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이해는 행동과 실천으로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 패배 이유의 하나를 주체적 역량의 부족에서 찾고 있는 위 후보자의 얘기를 전하면서 글을 맺는다.

“지역사회는 다양한 업종의 주민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특성을 저는 시민사회의 잡거성(雜居性)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잡거성을 모체로 하는 생활자들의 에너지에 기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업종 간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데서 의원선거와 시장선거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의원선거는 정책이념과 정책내용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내부를 우선적으로 단합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면, 시장선거는 평소 서로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네트워킹 작업이 얼마나 되어있느냐가 당락을 결정짓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풀뿌리 민주주의형) 시장선거에서 중요한 리더십은 코디네이터로서의 역량입니다. …선거 때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일상생활에서도 잡거 상태에 있는 주민들의 차이를 어떻게 합력으로 전환시키느냐 하는, 즉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조정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저의 역량 부족을 절감한 선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일경 일본 게이오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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