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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02월
  • 2002.02.01
  • 1352

난곡이여, 안녕


난곡이 부서지고 있다. 한 시대가 사라지고 있다. 시대야 어디론가 사라지게 마련이라지.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로 간다지. 난곡이 사라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해서 힘없는 사람들이 보금자리에서 쫓겨나고 있다. 정녕 어디로 가야 하나?

난곡으로 가는 길은 산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름 자체가 난이 흐드러지게 핀 골짜기라는 뜻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 난곡에서는 흐드러지게 핀 난은커녕 단 한 촉의 난도 볼 수가 없다. 대신에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낡고 지친 모습으로 부서지고 있는 허름한 집들이다. 한 세대 동안이나 가난한 사람들의 소중한 보금자리로 구실해 왔으나, 이제 시나브로 부서지고 사라질 운명에 처한 집들만이 골짜기에 가득하다. 아름답구나.

이곳이 난곡으로 불린 까닭은 볕이 잘 들어 난이 잘 자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난이 이곳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났던 것은 아니고, 조선의 명장인 강홍립 장군이 이곳에 살면서 난을 많이 길렀던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잘 자란 난을 왕에게 바치기도 하면서 이곳에서 아름답게 살았던 모양이다. 그와 그의 후손들이 묻힌 묘지가 아직도 이곳에 있다. 아직까지 그 묘지는 이곳과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고층 아파트들로 뒤덮인 뒤에도 그럴 수 있을까?

‘난골짜기’였다는 난곡의 변화

난곡은 몇 해 전에 사라진 봉천동의 ‘가마니골’과 함께 강남의 대표적인 도시빈민 주거지역이다. 강남이라고 다 같은 강남이 아니다. 난곡도 분명히 지리적으로는 강남이지만, 그러나 그곳은 사회적으로는 강남이 아니다. 난곡의 불행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곳의 운명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곳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가난해서 힘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난곡은 세 차례에 걸쳐 그 모습을 바꿔왔다. 이제 난곡은 네 번째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맨 처음에 강홍립 장군이 이곳에서 난을 기르고 살면서 난곡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뒤 지금과 같은 도시빈민 주거지역으로 바뀌기 전에 이곳은 골이 깊고 넓은 곳이어서 공동묘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서울시에서는 이런 곳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살게 했던 것이다.

이곳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뀐 것은 서울의 곳곳에 살던 도시빈민들을 이 깊은 골짜기로 몰아넣었던 때부터 시작된다. 1967년에 시행된 ‘도심 빈민촌 철거정책’에 의해 시내 곳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이곳으로 쫓겨 들어왔던 것이다. 1968년에 대방동에서 100여 세대의 철거민들이 집단으로 옮겨온 것을 시작으로 서울의 곳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옮겨오게 되었다.

『중앙일보』의 ‘조사 보도’에 따르면, 여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국립묘지 옆 한강가에서 천막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 대통령 시찰을 이유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도록 공무원들이 종용해서 정부 트럭을 타고 이곳으로 들어와 평생을 산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도심 빈민촌 철거정책’이 어떤 이유에서, 어떤 목적으로, 또 어떤 방식으로 추진되었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요컨대 ‘가난한 사람이 없는 도시’라는 모습을 억지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이 깊은 골짜기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박정희(다카키 마사오)는 때때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기는 하되 그들과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1994년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난곡에서 두 번의 지역조사와 주민들과의 면담조사를 한 일이 있다. 그 때의 조사결과는 한 편의 보고서로 남았는데, ‘낙골’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곳으로 쫓겨 들어왔을 때, 이곳은 아무런 하부시설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산골짜기였다고 한다. 더욱이 바로 전까지 이곳은 공동묘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산비탈에 천막을 치기 위해 땅을 파헤치면 곳곳에서 뼈가 나왔고, 그렇지 않더라도 여기저기 뼈가 나뒹굴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모두 사람 뼈였다. 그래서 쫓겨들어온 가난한 사람들은 이곳을 ‘난곡이 아니라 낙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난이 흐드러지게 피는 골짜기가 아니라 사람 뼈가 굴러다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비가 오면 산비탈은 온통 진창이 되어 버리고, 밤이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들었다고 한다. 수돗물도 안 들어오고 하수도도 없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할 수 없는 땅이었다. 그러나 천막이 지붕도 담도 있는 집으로 바뀌어가면서, 이곳도 어엿하게 사람이 사는 동네로 바뀌어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뜯어고치려는 계획을 이곳의 사람들에게 강요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난곡은 영원히 사라질 처지가 된 것이다.

난곡으로 가는 가장 큰 길은 남부순환도로에서 들어가는 난곡로이다. 차를 타고도 산자락을 따라 굽이도는 길을 제법 한참 들어가야 난곡이라 불리는 커다란 산동네를 만나게 된다. 이 산동네는 버스 종점에서 시작된다. 누가 보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한눈에 드러난다. 버스 종점의 위로는 허름한 집들이 층층이 들어서 있고, 그 옆으로는 서울의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고만고만한 주택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는 곳의 모습이 다를 뿐만 아니라 사는 모습 자체가 다르다. 형편이 나은 아랫동네 사람들은 가난한 윗동네 사람들을 싫어하고 꺼린다. 서로 섞일 수 없는 두 지역사회가 맞붙어 있는 셈이다. 이곳이 아파트 단지로 바뀌면, 이런 꺼림도 없어질 것이다. 윗동네는 사라지고 아랫동네만 남을 테니까. 높은 집과 낮은 집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아랫동네이기는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러나 높은 집과 낮은 집 사이에 또 다른 가시철조망이 생겨나는 건 아닐까?

난곡로는 버스 종점에서 끝나지만, 찻길은 뒤로 계속 이어진다. 조금 더 올라가면 이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 산으로 향한다. 오른쪽 길이 신림동과 시흥을 잇는 산복도로와 만나는 찻길이다. 그러니까 이 길이 난곡의 중앙로인 셈이다. 이 길을 따라 초라한 가게들이 들어서 있고, 이 가파른 길로 물건들을 실어 나르는 차들이 다닌다.

난곡이 서울에서 가지는 의미

예전과 두드러지게 달라진 점은 길 초입에 부동산업소들이 여럿 들어섰다는 점이다. 재개발사업이 벌어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찍고 있는데, 한 업소에서 건장한 젊은 남자가 나온다. 기름이 번쩍이는 머리와는 달리 운동복 바지 차림이다. 복덕방 아저씨는 말할 것도 없고 부동산업자로 보기에도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왜 사진을 찍는지 궁금하다고, 요새는 참 많이들 와서 찍더라면서, 묻는다. 사라지는 난곡의 모습을 남겨두려 한다고, TV에서 여러 번 방영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모양이라고, 대답한다.

부동산업소들보다 먼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제법 공을 들여 지은 커다란 교회이다. ‘유신교회’라는 이름이다. 왼쪽 산동네로 올라가는 길의 초입에 있는 이 커다란 교회는 그 크기로나 모습으로나 이곳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저 작은 집들에 비해 너무나 크고, 저 보잘것없는 집들에 비해 너무나 멋있기 때문이다. 둘레의 집들이며 사람들을 본다면, 예수는 절대 이곳에 이런 교회를 짓지는 않을 것 같다. 예수가 과연 저 안에 있을까? 저 윗동네의 초라한 교회들에 있는 그 예수와 같은 예수일까?

중앙로를 따라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이 동네에서 사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를, 또 이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게들은 모두 초라하고, 창으로 보이는 물건들도 그렇다. 길가의 전봇대에는 검은색 전깃줄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다. 이 길갓집들도 이미 많이 비거나 헐린 상태여서 썰렁하고 쓸쓸한 느낌이 가슴에 찬바람을 몰아오는 듯하다. 올라가면서 잠깐씩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저 멀리 서울의 만성적 스모그 사이로 고층 빌딩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저곳이 이곳의 미래인가? 저 살인적 스모그 속의 유령도시가?

산복도로는 삼성산 중턱을 지나가는 큰 찻길이다. 이곳에서는 난곡의 전체 모습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저 멀리 여의도의 고층 빌딩들이 스모그 속으로 가물가물하게 보이고, 아파트며 연립주택들이 마찬가지로 스모그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남부순환도로에서 이곳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난곡로가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한다. 그리고 종점을 경계로 윗동네와 아랫동네가 분명히 구분되는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산자락을 따라 넓게 펼쳐진 윗동네는 한결같이 허름한 꼴이다.

골목길을 따라 여기저기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눈이 얼어 미끄러운 골목길 여기저기에 연탄재를 뿌려 놓았다. 오랜만에 보는 산동네의 겨울 풍경이다. 이곳의 집들은 8평이나 16평 정도의 땅 위에 지어져 있다. 그래서 변소 문이 대체로 밖에 있다. 좁은 터에 지은 집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이층을 올리는 것이다. 이런 집들 중에서 비었지만 아직 완전히 헐리지는 않은 집을 만났다. 안으로 들어가 좁은 계단을 통해 이층으로 올라갔다. 여의도 쪽으로 큰 창이 나 있는 집이다. 산중턱에 자리한 집이라 전망이 아주 좋다. 사방이 확 트여서 어디나 잘 볼 수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서울의 모습이 영 흉하다. 스모그에 잠긴 ‘유령도시’의 모습.

윗동네에서는 교회도 절도 점집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종교시설은 아마도 교회일 것이다. 모든 아파트 상가마다 하나 이상의 교회가 난립해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상가의 옥상에는 으레 금속 꼬깔모자와 십자가가 내걸려 있다. 윗동네의 교회들은 아랫동네의 교회와 달리 허름하다. 이 교회들은 사람들에게 살아갈 이유를 주기도 하고 살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하나님을 안 믿었으면 미쳤을 거유’라고 말하는 주민이 있고, 이런 사람들을 도와 지역운동을 펼쳐온 낙골교회 같은 훌륭한 교회가 있다.

담 밖으로 나뭇가지도 뻗어나와 있는, 조금 좋아 보이는 집으로 들어갔다. 넓지 않은 마당에 놀랍게도 2m를 넘는 불상이 서 있다. 시멘트로 만들어 하얀 페인트 칠을 해 놓은 미륵상이다. 밖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더니 절집이었던 모양이다. 집은 아직 멀쩡한 상태고 방안엔 버리고 간 가재도구들이 널려 있다. 버림받은 미륵은 이제 어떻게 될까? 미륵마저 버림받는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중앙로의 오른쪽 동네는 시흥으로 이어진다. 이 동네의 가장 윗머리에는 교회와 두 절집들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교회는 낡아서 끊어진 십자가 탑을 이어 놓지도 못하는 가난한 모양새다. 교회와 붙어 있는 절집은 들어가는 길이며 문이 그런 대로 다듬어져 있다. 그러나 꽉 닫혀 있다. 그 옆의 또하나의 절집은 마침 문이 열려 있다. 절집처럼 보이지 않는 이 절집에 들어서니 지붕에 올려 놓은 대웅전이라는 크고 붉은 아크릴로 쓴 글자가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꼴은 어떨지 몰라도 이곳에서 보는 전망은 꽤 그럴 듯하다. 이것도 아파트가 들어서면 사라지고 말겠지. 산자락에 자연스럽게 안겨 있는 이 동네는 사라지고 커다란 로봇 같은 아파트들이 시야를 깡그리 막아서고 말겠지.

이미 많은 집들이 헐린 상태고, 또 많은 집들이 빈 상태다. 골목길은 좁고 어지럽고, 주인이 떠난 집들은 썰렁하고 슬프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사람들만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아니,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기 위해 아프고 어려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 중에는 일흔 살, 여든 살이 넘은 나이에 가족도 없이 생보자 지원금으로 삶을 겨우 이어가는 노인네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더러 무조건 떠나라고 하는 게 ‘발전’이란 말인가?

피난처를 잃어버린 가난한 사람들

당연한 말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을 부수고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를 짓는 것은 결코 ‘발전’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단지 먹고 자는 곳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기 위한 정보와 물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을 한순간에 부숴 없애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삶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커다란 아파트 단지를 지을 수 있는 넓은 땅이 다 동이 나자 산 위에도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돈암동, 청량리, 봉천동 등지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아파트 산’들이 그것이다. 이 흉물들이 서울의 발전한 모습인가? 이어서 아파트들이 아예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삼양동, 정릉, 그리고 이제 난곡으로.

난곡의 바로 옆에는 이미 ‘산 속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난곡처럼 대규모는 아니다. 이제 난곡이 커다란 아파트 단지로 바뀌면 이 지역 전체가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물론 교통이다. 난곡로는 미어 터질 것이고, 산복도로도 아주 어려워질 것이다. 급기야 서울시에서는 여의도로 연결되는 경전철을 놓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시의회에서 밝혔다.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 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길이 없는 땅을 팔아 놓고는, 사후약방문을 급조해 제시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관악산이 지척에 있어서 환상적인 자연환경을 갖춘 아파트라고 시끄럽게 선전해대겠지만, 이런 곳에 지어지는 아파트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게 현명한 일이 아닐까?

이제 서울에서 커다란 산동네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와 함께 일어난 변화가 과연 서울의 발전인가? 거대하고 흉칙한 시멘트 더미들이 서울의 산 위고 산 속이고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들어선 게 과연 서울의 발전인가? 이렇게 엉망으로 서울의 자연을 망가뜨리고도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비참하게 살아가야 하는 게 과연 서울의 발전인가? 우리에게 정작 부족한 것은 집이 아니라 정의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정의를 바로 세울 때, 서울의 발전은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 땅이라는 절대적으로 한정된 재화는 잘난 사람들만의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 원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더 좋은 삶을 추구하는 정의의 원리에 따라 이용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식의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이다.

난곡에 어둠이 내린다. 골목길 여기저기에 가로등이 켜진다. 분홍빛 네온등이 난곡의 곳곳에서 음울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집집마다 큰 창들을 달고 있지만, 불이 켜지고 빛이 비치는 창은 드물다. 모두 큰 눈을 감고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오늘도 불을 밝히고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삶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홍성태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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