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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02월
  • 2002.02.01
  • 968

시장경제도 계획경제다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경쟁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더불어 막을 내렸다. 이것이 ‘계획경제’에 대한 ‘시장경제’의 전면적인 승리일까? 천만의 말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대결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시장경제 역시 계획경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계획’을 세우지 않는 국민경제는 있을 수 없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은 ‘계획경제’ 일반이 아니라 ‘중앙통제식 계획경제’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러면 ‘시장경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분권적 계획경제’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분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산업사회는 고등동물과 같다. 이 고등동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서로 다른 신체부위 사이의 높은 상호의존성이다. 지렁이와 같은 하등동물은 두 토막으로 잘라지면 잘린 부위가 각자 따로따로 기어간다. 하지만 사람 같은 고등동물은 척추 한 마디만 잘못되어도 남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진다. 우리의 국민경제도 그렇다.

외환시장에서 벌어진 원화가치 폭락이 200만 실업자를 만든 총체적 경제난으로 비화하고, 기아나 대우 같은 개별 기업의 부도가 국민경제 전체의 동요를 가져오며, 지하철 노조의 파업이나 의사들의 집단폐업이 시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각자가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남의 행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고도 분업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계획 없는 경제체제는 없다

‘시장경제’는 계획 없는 경제체제가 아니다. 시장경제를 경제적 기본질서로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계획을 세우는 데 골몰하고 있는가? 알뜰한 가정주부들은 꼼꼼하게 가계부를 쓰면서 식료품비와 아이들 학원비, 외식비와 남편의 용돈, 어버이날 선물 구입비 등등의 지출계획을 세운다. 제 정신을 가진 기업의 경영자라면 당연히 투자를 위한 자금조달 계획과 생산을 위한 인력채용 계획 따위를 미리미리 세울 것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세금을 얼마나 거두어서 언제, 어떤 사업에 쓸 것인지를 계획해서 국회의 심의를 받는다. 흔히 개별 경제주체라고 하는 가계와 기업과 정부는 저마다 심사숙고를 거듭하면서 자기의 경제활동과 관련된 계획을 세우고 집행한다. 가계와 기업과 국가가 아무 계획도 없이 경제활동을 하는 경제체제는 상상할 수도 없다.

문제는 계획들 사이의 관계다. ‘시장경제’에서는 서로 다른 경제주체의 다양한 계획이 시장경쟁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조직된다. 정부가 기업에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라고 지시하거나 민간가계를 향해 밥상에 무슨 반찬을 올리라고 명령하는 따위의 일은 있을 수 없다. 반면 흔히 말하는 ‘계획경제’에서는 이런 다양한 경제주체가 세우는 계획을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연결하고 조정한다.

소련과 동유럽의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는 고도 분업사회와는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체제였다. 생산력 발전의 열쇠가 분업이라는 스미스의 견해가 옳다면 분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체제에서는 생산력의 발전도 더뎌진다. 그리고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의 말대로 생산력의 발전을 방해하는 경제체제는 반드시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스스로 주저앉고 말았다.

중앙통제식 계획경제도 잘 돌아갈 수는 있다. 예컨대 30명으로 이루어진 대가족을 생각해 보자. 이 대가족을 이끄는 이는 절대적 권위를 지닌 한 사람의 가부장이다. 가부장은 땅을 어떻게 나누어 무엇을 얼마나 심고 거두어야 하는지, 언제 어떤 가축의 우리를 새로 지어야 할지, 농기구를 손질하고 퇴비를 만드는 따위의 일에 노동력을 어떻게 배치해야 좋은지도 모두 파악하고 있다.

물론 이런 가족경제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때로 들일을 할 손이 모자라는데 쓸데없이 나무를 베러 사람을 보낸다거나, 쌀이 부족한데 감자를 너무 많이 생산하는 따위의 잘못이 일어난다. 하지만 가부장은 언제든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 그는 한 뼘의 땅과 한 사람의 일손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잘 알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일이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도록 정밀한 계획을 짤 수 있다. 한마디로 일상적 경제활동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중앙통제식 계획경제로 유토피아를?

이제 2001년의 한국을 생각해 보자. 여기서는 2000만 명의 경제활동인구가 수없이 다양한 작업에 투입된다. 그들은 모두 필요한 작업장비를 가져야 하는데, 그 장비는 어딘가 다른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원료와 부품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일터 밖의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 역시 거의 전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떤 사람이 생산한 것이다. 부두에는 수출용 자동차와 전자제품과 옷을 실은 컨테이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항만의 다른 곳에서는 수입업자들이 석유와 기계와 쇠고기를 나라 안으로 들여온다.

이 모든 활동이 의미를 가지려면 누군가 개개인의 경제활동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조정해 주어야 한다.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예컨대 국가가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주어야 한다.

올해 자동차를 몇 대나 만들어야 할까? 더 세부적으로는 버스와 승용차, 트럭을 각각 얼마나 생산해야 할까? 승용차 중에 대형과 중형, 소형의 비율은 어떻게 해야 할까? 금속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산업까지 고려할 때 철강 생산량은 얼마나 되어야 하나? 여기에다 다른 수만 개의 기업과 2000만의 민간가계가 소비하는 전력과 석유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어떤 기준에 따라 어떻게 분배해야 할까? 소비재는 어떻게 하나? 양복과 개량한복, 여성용 속옷과 남성용 속옷은 몇 벌을 만들며, 학생 신발과 성인용 남자구두, 여성용 하이힐은 몇 켤레가 있어야 하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생산하는 수만 개의 기업에 각각 얼마만큼의 노동력을 배치해야 할까? 서로 다른 산업과 기업에서 서로 다른 일에 종사하는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노동자들에게 어떤 기준에 따라 얼마만큼의 보수를 주어야 할까?

천문학적 용량을 가진 슈퍼컴퓨터로 답을 찾았다고 하자. 그래도 문제는 계속된다. 세상은 언제나 변화의 물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슨 이유에선지 미국 경제가 갑자기 불황에 빠져 자동차 수출이 격감했다고 하자. 그러면 자동차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데 거기서 나온 노동자들은 어느 산업, 어느 기업에 배치할 것인가? 철강 소비가 줄어드니까 제철소의 생산량도 줄여야 하고 에너지 수급계획도 수정해야 한다. 제 아무리 용량이 큰 슈퍼컴퓨터라도 끝없이 일어나는 소비자의 선호와 생산기술의 변화를 반영하여 매일 매일 새로운 해답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름대로 최선의 계획을 세워 집행하면 된다. 국방이 중요하니까 자원과 인력을 먼저 군대와 군수산업에 배치하고, 다음으로 중화학공업에 주고, 나머지로 소비재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한 재화가 소비자의 욕구와 다르다면? 그래도 별 문제는 없다. 어떤 물건이 남으면 다음 해에 생산을 줄이고 모자라는 건 배급을 하거나 먼저 오는 순서대로 팔면 그만이다. 옛 사회주의 나라들의 그 유명한 줄서기 풍경은 이렇게 해서 나타난 것이다.

고도 분업사회의 경제활동은 그 누구도 전체를 조망하고 계획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중앙통제식 계획경제’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시도는 운명적으로 실패하게끔 되어 있다. 결국 경제적 기본질서로 택할 수 있는 것은 ‘분권적 계획경제’인 시장경제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유시민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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