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3월 2002-03-01   948

월드컵은 약자를 동정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월드컵 관전포인트


‘아시아에서 열리는 첫번째 월드컵이자 21세기 첫 월드컵, 72년 월드컵 역사상 첫 본선대회 공동개최.’

오는 5월 31일 한국과 일본에서 막을 올릴 제17회 월드컵축구대회는 어느 모로 보나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모험과 참신한 시도로 지구촌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대회들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의욕에 찬 시도는 분명 축구잔치를 바라보는 데 새로운 의미를 더해 줄 것으로 보인다. 4년 마다 이뤄져온 축구의 기술적인 변화뿐 아니라 그 동안 유럽과 남미가 양분해온 국제축구의 패권주의에 ‘축구 제3세계’가 얼마만큼 경쟁력을 갖고 대항할 수 있을지, 또 공동개최국 한일 양국을 포함해 ‘축구개발도상국’들이 세계무대 도약과 스스로의 축구발전을 위해 어떤 비전을 찾을 수 있을지, 국제축구의 변혁은 어느 정도 가능한지 등이 31일 간의 긴 본선 일정 속에서 하나하나 드러날 것이다.

‘제3세계 축구’의 변혁이 관건

2002년 월드컵까지 포함해 지금까지 월드컵 본선 무대를 한번이라도 밟아본 나라는 모두 69개국. 그 중 유럽이 30개국이다. 남미는 10개 회원국 중 베네수엘라만 빼고 모두 본선행에 성공했다. 반면 아시아는 10개국, 아프리카와 북중미는 각각 9개국, 오세아니아는 2개국에 불과하다. 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월드컵에 참가해온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여태 8강 진출이 최고 성적이다.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이 발휘하는 힘과 기술, 그리고 그네들의 슈퍼스타가 펼치는 화려한 예술축구와 조직축구는 4년을 기다려온 축구 팬들에겐 월드컵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월드컵을 유럽과 남미의 잔치로만 바라볼 것인가. 그 동안 월드컵 축제에서 유럽과 남미의 그림자에 가려 있던 제3세계의 도약은 또 다른 의미에서 2002월드컵의 볼거리가 될 것이다.

분명 과거 어느 대회보다 제3세계의 축구도약을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는 것이 이번 2002월드컵이다. 아직도 국제축구연맹(FIFA)의 지원금에 의존해야 할 만큼 재정이 어려운 국가가 많지만 축구 제3세계 국가들의 목소리는 커져만 가고 있고 전체적으로 경기력도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2006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서 남아공이 독일에 밀려났지만, 2010년 월드컵 개최는 보장받은 상태다.

또한, 월드컵 역사에서 3세계의 도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국제축구 질서변화의 분수령을 이룬 두 사건이 있었다. 66년 축구종가인 잉글랜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처음 출전한 북한이 34, 38년 우승국 이탈리아를 1:0으로 격파하는 대파란을 일으키며 8강에 진출한 것이 그 하나다. 또 하나는 90년 이탈리아월드컵 개막전에서 카메룬이 두 명의 선수가 퇴장당한 열세에서도 전(前)대회 챔피언인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제압해 8강까지 ‘검은 돌풍’을 이어간 사건이다.

먼저 66년의 지역예선을 돌아보자. 당시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의 총 21개국은 같은 그룹에 속해 단 한 장의 본선티켓을 놓고 다퉈야 하는, FIFA의 유럽과 남미 기득권 수호정책에 반발해 예선에 불참했다. 그 와중에서 북한이 예선을 거쳐 본선에 나가 당당히 유럽의 강호를 꺾음으로써 4년 뒤에는 3세계의 본선 티켓이 늘어나게 됐다. 90년 카메룬의 돌풍으로 94년 월드컵부터는 아프리카의 본선티켓이 늘어났고, 94년 사우디아라비아의 16강 진출로 98년 아시아의 티켓도 늘어나는 등 실력을 앞세운 3세계의 목소리는 유럽과 남미 강국들의 안정적인 승부에만 기대어 흥행에 골몰하는 FIFA의 기득권 질서를 하나씩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제3세계 국가가 2002월드컵에서 과연 얼마나 큰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아프리카는 경쟁력에서 유럽과 남미에 크게 뒤질 게 없다.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은 각각 1996, 2000년 올림픽을 제패했다. 여기에는 유럽파의 후광효과가 크다. 지난해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을 끝냈을 때만 해도 유럽 1부 리그에서 활약하는 아프리카 선수는 38개국 517명. 프랑스(75명), 포르투갈(68명), 벨기에(51명), 네덜란드(49명), 독일(45명) 순으로 많았으며, 이탈리아와 스페인에도 18명씩 진출했다. 그 중 25개국에 가장 많은 97명을 진출시킨 나이지리아와 카메룬(47명), 남아공(24명)은 폭넓은 선수층을 바탕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세네갈은 23명의 유럽파 중 프랑스에서 활약하는 14명의 응집력으로 모로코(46명), 이집트(18명)와 혼전 끝에 처음으로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튀니지는 유럽파가 9명으로 같은 예선조의 코트디부아르(25명)와 콩고공화국(29명)보다 훨씬 적었지만 지중해의 기후·지리적인 여건 덕택에 유럽 팀과 잦은 실전 경험으로 경쟁력을 높여 본선에 무사히 올랐다. 대체로 사하라사막 이북의 모로코, 튀니지, 이집트 등을 뺀 나머지 아프리카 국가들은 신체적 탄력성과 힘, 옛 식민지 경험에서 나오는 빠른 문화 적응력, 축구를 통한 경제적 상승욕구 등에 힘입어 유럽 35개국 221개 클럽에 진출한 선수들이 2002월드컵에서도 돌풍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시아도 안정환과 나카타가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뛰고 있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등에 판즈이 등 수비수를 내보낸 중국 등이 유럽파를 앞세워 대도약을 노리고 있다.

해외파들의 활약 기대

다른 각도에서도 귀화선수의 활약으로 제3세계의 도약을 가늠해볼 수 있다. 66월드컵에서 모잠비크 태생의 에우제비오가 북한의 돌풍을 잠재우며 포르투갈의 4강 돌풍을 일으킨 게 아프리카 귀화선수의 첫 성공 사례. 프랑스가 알제리 출신의 지단과 아프리카의 옛 식민지에서 들어온 이민세대를 받아들인 덕택에 98월드컵에 이어 2000유럽선수권, 2001년 대륙간컵 등 트리플크라운에 오른 데 자극받아 유럽엔 귀화열풍이 불어 닥쳤다. 한국과 월드컵에서 첫 대결하는 폴란드의 첫 흑인 대표선수인 엠마누엘 올리사데베는 유럽파가 3000명이나 되는 나이지리아에서 대표팀에 뽑힐 가망성이 없다고 보고 폴란드 리그에서 귀화를 결심했다. 폴란드 대통령의 특례조치에 힘입어 예선에서 8골을 터뜨리며 새로 선택한 조국에 16년 만의 본선 진출권을 선물했다. 그는 코너킥을 찰 때 관중석에서 바나나가 날아오는 설움을 겪으며 실력으로 성공하면 흑인들이 더 이상 차별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굳게 다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골을 넣고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슬픈 스트라이커’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독일이 순혈주의를 깨고 처음으로 발탁한 가나 출신의 흑인대표 게랄트 아사모아도 주목받는 기대주. 지난해 5월 데뷔하자마자 골을 터뜨려 스타덤에 오른 그는 월드컵에서 독일을 우승으로 이끌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월드컵은 결코 약자를 동정하지 않는다.’ 이 말은 보수적인 기득권과 냉엄한 현실주의가 월드컵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3세계의 약진과 돌풍이 2002월드컵에서 아무리 거세도 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이 16강에 오르지 못한다면 그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시민 중심의 풀뿌리 지역사회 체육 안착돼야

개최국 프리미엄도 엄격한 규정이 적용되는 이번 월드컵에선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축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목표를 향해 총력전을 펴는 일이야 당연하고, 실패했을 때를 대비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3세계의 도전은 늘 모험적이며, 위험이 뒤따른다. 선발주자의 시행착오를 살펴 더 빠르게, 더 멀리 도약할 수도 있지만 가용자원이나 준비가 부족하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한국은 월드컵 개최를 축구 도약의 계기로 삼고 있다. 월드컵 경기장 10개 모두를 새로 지었을 정도다. 전용구장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축구 발전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실패했을 때 뜨겁게 달았던 냄비가 곧 식어버리듯 팬들이 축구를 외면한다면 사장되는 경기장과 함께 한국 축구는 공멸의 길을 걸을 것이 뻔하다. 월드컵 이후, 특히 실패했을 때의 대비책을 준비하는 것은 더 이상 이른 일이 아니다. 88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데만 치중하다보니 정작 올림픽과 맞물려 발전해 나가야 할 생활체육에 소홀했던 전철을 되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보다 10년 늦은 93년, 치밀한 준비로 프로축구 J리그를 출범시켜 발전의 토대로 삼았던 일본처럼 사회체육, 지역스포츠가 맞물려 돌아가는 풀뿌리축구의 틀을 정비하는 게 중요하다. 유럽과 남미가 월드컵을 오래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어린이·청소년 클럽이 지역사회체육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으면서 축구발전의 건강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바로 보아야 한다. 월드컵이 끝나면 이미 늦을 일이다.

김한석 스포츠서울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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