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3월 2002-03-01   722

벤처와 머니게임 그리고 권력

전문가 좌담 – 4대 게이트 분석과 부패방지 길 찾기


조은경 4대 게이트에는 한국사회 부패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정·관·경 유착구조의 전형적인 양태입니다. 검찰 경찰 국세청 금융감독원 국가정보원 청와대 정치권 언론계 등 우리 사회의 권력기관이 줄줄이 연루되었습니다. 이들 게이트들은 불법과 부도덕을 바탕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부도덕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은 역시 윤태식 게이트입니다. 자기 아내를 죽이고 그것을 은폐한 것도 그렇지만, 이것을 국가기관이 덮어주고 살인범의 사업까지 도와주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박흥식 윤태식사건은 여러 게이트 가운데서도 한국 사회에 특별한 메시지를 던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은 한국 국가운영시스템과 사회구조의 불건전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겁니다. 아내를 죽인 살인자가 대통령을 만났고, 국회를 드나들었어요. 전 청와대 공보수석은 3개 부처에 패스 21 시연회를 주선했고 언론인, 정치인, 공무원 등이 주식을 뇌물로 받았어요. 국회의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 전 국정원장, 전 정통부 장관, 전 청와대 국정홍보처장 등은 그를 도왔죠. 전직 국회의원이 패스 21의 감사였고, 전 『서울경제신문』 사장은 언론의 힘으로 국민의 눈을 속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건이 드러난 다음에도 공직자들은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둘러대고 있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김병섭 이른바 4대 게이트의 정확한 내용을 진단하는 것은 현 단계에서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검찰의 수사 결과가 모두 발표된 것도 아니고 발표된 내용 또한 특검의 그것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이죠. 그리고 꼼꼼히 따져보면 4대 게이트는 그 규모와 형태가 조금씩 다릅니다.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 게이트는 주가 조작과 불법대출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윤태식 게이트는 불법대출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정현준과 진승현 게이트는 사이비 벤처기업가가 불법적으로 기업 확장을 도모하고 이런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을 무마하기 위해 권력 실세를 동원한 모양으로 전개됐어요. 이에 비해 윤태식과 이용호 게이트는 기업가가 주도했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치자금 확보를 위해 정치권이 이들을 이용했다는 설명도 제기되고 있지요. G&G그룹 이용호 회장이 작년 9월 기업구조조정 자금을 횡령하고 보물 발굴사업을 재료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구속됐죠. 그런데 보물 발굴사업은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도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용호 게이트에서 이형택 게이트로 사건의 성격이 변했습니다. 한편 윤태식 게이트는 기업 인수와 불법대출의 문제라기보다는 부인을 죽인 살인자가 지문인식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를 설립해 사업가로 변신하고 이 회사가 고속성장하는 과정에서 수지김 사건을 은폐했던 국정원(전 안기부)은 물론 청와대 등 권력 실세들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게이트로 발전했습니다.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들 4대 게이트는 자체 개발한 신기술로 승부를 하는 창조적 벤처기업가들이 아니라 기업인수나 주가조작, 불법대출 등을 통해 머니게임에 치중했으며 단기간에 고속성장을 구가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고속성장 뒤에는 막강한 배후가 있었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죠.

이종원 4대 게이트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사람·제도·문화의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정부패 문제가 터질 때마다 어떤 이는 행위 당사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이는 제도 탓을 합니다. 다른 한편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근본 원인을 찾음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4대 게이트에 대한 진단도 사람, 제도, 문화의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시스템으로 검토되고 분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흥식 4대 게이트는 부패한 돈과 권력의 만남입니다. 벤처들은 불법적인 대출이나 주가조작, 횡령 등으로 사업확장을 시도했고, 공직자들은 뇌물을 받고 권력을 남용해 이들의 부정에 눈감은 사건입니다. 이것은 부도덕한 몇몇 벤처 기업인들이 저지른 단순 불법대출 사건이 아니라 핵심 권력기관들이 돈에 매수돼 저지른 비리이죠. 4대 게이트는 과거의 부패사건과는 다릅니다. 벤처라는 새로운 분야의 부패로 로비스트가 출현합니다. 주식이 뇌물의 한 형태로 등장한 겁니다. 정부의 벤처사업 지원도 게이트 발생에 한 몫을 한 셈이죠. 정부는 98년 벤처기업인증제도를 통해 벤처기업에 지원을 퍼부어 벤처붐을 일으켰어요. 코스닥시장의 주가는 폭등했고, 벤처들은 1년도 안 걸려 엄청나게 치부했습니다. 4대 게이트는 젊은 벤처기업가들의 부도덕한 탐욕의 표출인 것입니다.

부정부패사건이 속출하는 까닭

조은경 각종 게이트를 통해 부정부패사건의 발생 원인을 찾아보면, 우선 한국사회의 권력집중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아직도 윗선의 한마디가 통하고 정치인과 관리가 연합하면 막대한 자금이 창출될 수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권력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몇 사람의 힘만으로도 불법이 합법화 되고, 불가능이 가능해지고, 엄청난 자금이 모일 수 있게 되는 거죠. 또한 윤리부재가 그 원인이라고 보는데, 게이트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윤리의식이 없었어요.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했죠. 관계와 정계, 언론계에 있는 인사들은 자신들의 직분을 망각했고, 불법과 부도덕을 묵인 또는 조장했습니다.

이종원 게이트 발생에는 아마도 김대중정부의 임기말적 요인이 큰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역대 정권들은 초기에는 정권의 정통성이나 개혁의 정당성을 부패처벌, 부정혁파 등에서 찾았습니다. 따라서 정권의 심장부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부패사건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권 말기쯤 되면 감시와 견제력이 느슨해져 부패사건이 속출하게 되는 거죠. 권력층의 핵심인사들이 아무리 깨끗해도 정치자금의 손쉬운 조달은 떨치기 힘든 유혹일 겁니다. 특히 지금처럼 정치자금 자체가 불투명하고, 권력 실세만이 그것을 조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 그렇겠지요. 어찌 보면, 벤처육성은 권력과 돈의 연결을 어느 때보다 쉽게 만들어놓은 ‘부패의 서식환경’ 아닌가 싶습니다. 경제구조 개편과 경제위기 탈출과정에서 특정부분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은 필연적으로 부패고리를 형성합니다. 그것이 각종 ‘보호막’이 작동되지 않는 정권 말기에 ‘게이트’의 형태로 세상에 알려진다고 봅니다.

김병섭 게이트가 끊임없이 터지는 것은 부패연구자들이 일반적으로 지적하는 원인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자금 수요가 지속되고, 부패와 비리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돼 있으며, 부패행위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허약하기 때문이죠. 4대 게이트의 공통 키워드는 벤처·국정원·정치자금입니다. 4대 게이트 모두 국정원이 벤처 기업인의 머니게임에 개입했고, 여기에서 만들어진 천문학적 액수의 정치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요. 정치자금의 수요가 계속되는 한 비리에 대한 유혹은 지속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다음은 부패의 기회입니다. 현 집권세력은 전통적으로 정경유착을 통해 성장한 재벌과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어요. 여기에 기업간 빅딜과정에서 재벌과 정부가 대립했고, 회계의 투명성과 기업지배구조의 개선, 외국자본의 유입 등으로 과거처럼 재계가 정치권에 자금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은 어느 정도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 정부가 들어설 즈음 전세계적으로 정보 기술 열풍이 불면서 정부는 벤처기업을 대량으로 육성, 경제기반을 튼튼히 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벤처정책은 자생적이기보다는 정부가 깊숙이 관여하는 관치의 형태를 띠면서 비리가 싹트기 시작한 거죠. 셋째, 벤처에 엄청난 돈이 몰렸지만 비리를 막을 수 있는 장치는 부족했어요. 육성에 관심을 쏟다 보니 감시를 소홀히 한 겁니다. 단기간에 몇만 개의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욕은 부실 벤처기업을 양산했고, 관리·감독 기능의 미비 등 제도상의 허점은 사이비 벤처기업인을 양산하게 했죠. 오히려 벤처 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정·관계 인사, 벤처기업인, 유력 투자자를 아우르는 수많은 모임이 생겨났습니다.

부정부패 근본적 대책 없나?

조은경 부패 행위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부패행위 적발과 처벌의 확실성, 예측가능성이 보장돼야 합니다. 이제까지 부패행위자에 대한 적발과 처벌이 미흡했던 점이 가장 큰 부패발생 원인이라고 봐요. 부패 행위를 한 경우 반드시 처벌되며 그 결과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패행위자에 대해 사면권을 제한할 필요도 있어요. 그뿐 아니라 공익정보제보의 활성화 유도와 제보자 보호, 사회 전반의 윤리의식 제고, 기업의 자율적 반부패 노력에 따른 처벌 감면제도 도입, 로비스트 등록법 제정,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 정책결정과정의 공개 등이 이뤄져야 합니다. 특히 정책결정과정이 명확히 공개될 때 정책에 대한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이종원 제도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도의 투명성 절차와 규범, 기준과 원칙을 분명히 제도화하고, 이를 국민에게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여러 세력이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부패방지위원회가 발족했습니다만 좀더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각 분야의 부패사례를 엄밀히 분석해 제도적 차원에서 부패자에 대한 ‘처벌’ 허가-승인-감독 및 규제권한을 갖도록 했으면 합니다. 또 행정절차를 간소하고 투명하게 해야 합니다.

김병섭 지난 한 해 나라를 흔들어 놓은 각종 부패 스캔들에 대해, 정부는 여러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사이비 벤처기업에 대한 특감, 특별수사검찰청의 신설, 반부패 관계장관회의의 개최 및 분야별 추진실태 점검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정책은 그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벤처기업에 대한 특감 문제입니다. 정부는 벤처비리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진단해 ‘진정한 벤처’와 ‘사이비 벤처’를 가리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벤처비리는 정부주도의 벤처정책에 그 근원이 있습니다. 정부가 벤처인증제도를 도입해 벤처기업의 장래를 판별하는 권한을 가지고 또 이를 기초로 지원을 하니까 밤새워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판정 권한을 가진 기관에 줄서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죠. 벤처지원 정책은 직접 지원에서 간접 지원 중심으로 바꾸고 창업 지원 등 양과 하드웨어 중심에서 전문인력 양성, 우수기술의 고부가가치화, 벤처산업 국제화 등 질과 소프트웨어 지원 중심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벤처의 기술 평가는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정부는 민생관련 부조리에 대한 집중적인 감찰활동을 벌여 나가고 이를 매달 반부패 관계장관회의에서 점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각종 게이트는 부패통제기구들이 관련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들이 다른 공직자를 감시하는 격이니 맞지 않죠.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감시자들을 만드는 것이 부패 통제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패통제의 가장 확실한 방향은 관심 있는 시민들이 모두 감시자가 될 수 있도록 권력의 분권화를 제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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