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3월 2002-03-01   697

생명을 담보한 노바티스의 글리벡 상술

생명을 담보한 노바티스의 글리벡 상술


최근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글리벡 논란에는 여러 가지 배경과 입장들이 섞여 있다. 이제 글리벡은 단순히 화학성분으로 이뤄진 약품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성분까지 첨가된 복잡한 약품이 되었다. 이 약을 복용하기 위해 잘 걸러내야 하는 ‘불순물’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글리벡에 대한 사전지식

‘만성골수성 백혈병’이라는 병이 있다. 희귀 난치병의 하나로 유일한 치료법은 골수이식이다. 그러나 적합한 골수를 이식받을 수 있는 환자는 25%뿐이며, 나머지 75%는 사망한다. 25%의 환자들 중에서도 부작용이나 병의 재발로 사망하는 비율이 30∼40%이다. 수술비용도 보통사람들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비싸다. 사정이 이러니 환자들은 목숨을 잇기 위해 인테페론이라는 항암제에 의존해왔지만 안 듣는 환자도 있고 부작용도 있어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런데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노바티스가 글리벡(Glivec)이라는 신약을 내놓았다.

현재까지 각종 임상실험 결과와 환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글리벡의 약효는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자 비상대책위원회의 강주성 대표에 따르면 글리벡을 시험적으로 복용한 후 죽기만 기다렸던 사람이 직장으로 복귀했다. 글리벡이 완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들에게는 최선의 생명연장제로 인식되고 있다.

의약품이 수입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이 신청된 의약품의 안전성을 판단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가격을 결정한다. 2001년 6월 식약청은 글리벡의 국내 시판을 허가했고, 심평원은 한국노바티스와 약값 조정에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까지 반 년을 끌어온 논란은 바로 이 단계에서 시작됐다.

특허권과 강제실시권

현재 노바티스측은 글리벡 한 캡슐 가격을 약 2만5000원으로 공시하고 있으나, 정부는 약 1만7000원을 제시하고 있다. 한 캡슐에 2만5000원이라면 하루 네 알이므로 10만 원, 한 달이면 300만 원이다. 1만7000원이라 해도 한 달이면 211만 원이다. 이렇게 약값이 비싼 이유는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앞으로 20년 간 갖게 되는 지적재산권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지적재산권(TRIPs) 협정 7조에 따르면 “기술적인 혁신, 기술이전을 장려하기” 위해 노바티스에게 특허권이 인정된다. 만일 기술개발에 특허권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수익성이 없어져 기술개발 의욕은 떨어지고 사회발전이 지체되므로 시장경제 체제에서 신기술의 특허권은 보장되고 있다. 단,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예를 들어 한 볼펜 제조자가 신기술을 개발하여 시장에 진출했다고 할 때, 소비자들은 높은 가격에도 혁신적인 성능을 선호하여 신제품을 살 수도 있고, 낮은 가격 때문에 예전에 사용하던 볼펜을 살 수도 있다. 이 경우 제아무리 특허권이 있다고 해도 공급자가 다수인 시장에서 기존 제품과 경쟁하려고 한다면 신기술을 개발한 공급자가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없게 되므로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은 신기술도 보호하면서 동시에 특허보유업체의 독점도 통제하게 된다.

그런데 글리벡은 당연히 볼펜이 아니고 의약품시장도 볼펜시장이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라고는 하지만 모든 상품이 시장의 수요 공급 원리로만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쌀값이나 교통요금에는 국가가 개입하고 있으며, 상하수도, 우편, 고속도로 등의 공공재는 정부가 독점적으로 공급함에도 불구하고 이윤보다는 국민경제 전반을 고려해 가격이 결정된다. 글리벡의 대체재는 없다. 그리고 의약품만큼 공공의 이익과 직결된 상품도 흔치 않다. 시장경제원리가 아무리 중요하고 존중돼야 한다고 해도 의약품의 공급은 수익성보다 공공성의 원리를 상위에 두어야 한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민중의료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정보공유연대, 참여연대시민과학센터, 환자비상대책위원회 등이 참여하고 있는 글리벡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1월 특허청에 글리벡에 대한 강제실시권을 청구했다. 강제실시권이란 WTO 지적재산권협정(TRIPs) 31조에 명시되어 있는 것으로, 국가비상사태나 긴급상황,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 특허권의 일부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다. 협정 31조에 따르면 의약품이 지불 가능한 가격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정부는 강제실시권을 시행할 수 있으며, 협정은 강제실시권이 발동하는 영역을 제한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건강보험과 한국의 사회복지

정보공유연대의 남희섭 변리사는 “강제실시권은 특허법과 국제협정에도 명시되어 있는 것이고, 특허권자의 이익 역시 보장한다”고 말한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의 한재각 간사는 “국내에서 강제실시의 전례가 없으나 일본의 경우를 참고할 때 청구일로부터 180일 이내에 결과를 통보해줘야 하기 때문에 현재 심사가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민중의료연합 공공의약팀의 정혜주 팀장은 “1세계 국가들의 경우 강제실시를 1년에 수백 번 하고 있다”며 “노바티스는 이미 93년에 미국에서 강제실시를 당한 전례가 있고, 최근에 베트남에서도 AIDS 관련 약품을 강제실시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노바티스는 “현재 환자들이 무상으로 글리벡을 투여받고 있으며, 정부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강제 실시권 청구는 근거가 없으며 2001년 11월 WTO 협의안에 위배된다”고 반박했다.

글리벡 복용에도 건강보험은 적용된다.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의 기준에 의하면 약값의 70%는 보험으로 처리되고 본인부담률이 30%이므로, 캡슐당 약값이 2만5000원일 경우 환자 부담은 한 달에 100만 원, 1만7000원일 경우에는 70만 원이다. 다른 비용은 빼고 순전히 약값만 그렇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그나마 70%의 보험지원을 받는 환자들을 일부 환자들로 제한했다. 만성골수성 백혈병은 4∼5년의 만성기를 거쳐 6개월 안에 가속기, 급속기로 이어지는데 보건복지부는 글리벡 복용시 보험적용을 가속기와 급속기 환자들에게만 하고, 만성기 환자의 경우 인터페론 투약 실패자들에게만 적용하고 있다. 만성기 환자들은 보험 지원을 못 받는다는 뜻이다. 보험을 적용 받는다고 해도 30%의 본인부담률은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글리벡은 기호품이거나 안 사도 그만인 상품이 아니라 환자들의 생명과 결부되어 있으므로 구매능력과 상관없이 약품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본인부담률을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상품에서 약품으로, 소비자에서 인간으로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의 김상희 사무관은 노바티스측이 식약청에 신청해 놓은 범위에 따라 일부 환자들이 보험 지원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며, 모든 환자들에게 보험지원을 하기에는 재정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본인부담률을 낮추는 문제는 다른 의약품과의 형평성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글리벡에 특혜를 줄 경우, 전체 약가 및 보험통제력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중의료연합의 정혜주 팀장은 “보험범위를 제약회사만 신청할 수 있는 규정 자체가 문제”라며 “글리벡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모든 난치병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품에 대한 문제제기의 시작”이고 “재정이 없으면 정부는 회사와 더 싸워야 하는데도 손쉽게 환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 팀장은 나아가 “이는 몇몇 공무원이나 관계기관의 업무 소홀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한국의 사회복지 마인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글리벡의 공공성을 주장하고 있는 공동대책위원회측은 국가인권위에 해결을 요청하거나 헌법재판소 위헌소송, 행정소송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상의 유의사항을 살펴보면 병을 치료해야 할 약품에 다국적기업의 상혼과 이를 지원하는 1세계 중심의 국제협약, 불완전한 보험체계 등의 불순물이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막대한 개발비용을 투자했다 하더라도, 환자 한 명당 매달 300만 원씩, 20년 동안을 전세계에서 받아야만 회수될 리 없고, 국민이 약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죽어가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는 재정상의 곤란과 규정에 따른 시행이라며 변명만 하고 있다. 환자에게 절실한 것은 특허권, 국제조약, 보험체계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생명을 이어주는 약품인 것이다.

조진호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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