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1월 2002-01-01   3720

대한민국 부자들이 사는법

2000년 12월 미국의 존 홀링스워스 2세라는 사업가는 4억 달러의 재산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대학과 자선단체 등에 기부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일한 혈육인 외동딸에게조차 한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외손의 대학 학비를 위해 1인당 25만 달러의 신탁기금을 적립해 놓은 것이 전부다. 몸소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스스로 귀족임을 자부하는 부유층이 있다. 이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는커녕 탈세와 재산도피, 병역기피 문제로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지상을 오르내리고 있다. 귀족을 자칭하는 그들의 삶은 과연 노블(Noble 고귀한) 한 것인가? 가장 가까이서 부유층을 상대한다는 네 명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보는 ‘대한민국 부유층 문화’에 대해 들어 보았다.

“최상류층의 비밀회동공간 메트로폴리탄을 아십니까?”

김선일 롯데호텔 객실관리 담당

김선일 씨(가명·36세)는 롯데호텔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호텔 객실관리. 그는 우리나라 부자들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호텔이라고 말한다. 김씨가 말하는 ‘부자들의 호텔이용 백태’를 들어보자.

“부유층들은 대개 호텔 멤버십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호텔을 이용할 일이 많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예로 저희 호텔 38층에는 메트로폴리탄이라는 멤버십 클럽이 있습니다. 이곳은 회원들끼리 식사하거나 술을 마시면서 비밀회동을 하는 곳입니다. 메트로폴리탄은 정부 고위관료나 그룹총수 같은 최상류층만 가입할 수 있는 클럽입니다. 회원권 가격은 개인 800만 원, 법인 1600만 원입니다. 돈만 있다고 다 회원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롯데호텔 사장님이 직접 회원 가입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서빙하는 사람들조차도 일단 문이 닫히면 그 안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휘트니스 센터도 멤버십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저희 호텔 휘트니스 클럽은 회원수가 1390명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현재로서는 신규회원 가입이 힘듭니다. 그래서 호텔 외부에서 회원권 매매를 위한 암시장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이곳 회원권 가격도 800만 원입니다. 다른 곳에 비하면 싼 편이죠. 힐튼호텔 헬스클럽은 개인 입회비가 1300만 원 정도니까요.

부유층 손님들 중에는 호텔 중독증 환자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호텔 식당에서만 식사하고 약속장소는 꼭 호텔 커피숍이나 일식당 같은 곳으로 합니다. 머리 손질이나 세탁물까지 호텔 내 미용실과 세탁소만 고집하는 고객도 있어요. 시간이 나면 휘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하고 사우나도 이용하고요. 물론 비싸죠. 미용실에서 퍼머하는 데도 최소 10만 원 이상 드니까요. 이분들이 호텔을 애용하는 것은 특수계층만 사용하니까 편하고 익명성이 완전히 보장되기 때문이겠죠.

호텔 직원들 중에는 부유층 손님들을 경멸하는 경우도 많아요. 직원들에게 반말하기 일쑤고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퍼붓는 사람도 있어요. 또 성희롱에 가까운 추한 행동을 하거나 마음에 드는 여직원을 밖으로 불러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호텔 밖에서 고객을 만나거나 필요 이상의 접촉을 갖는 것은 금지되어 있죠. 하지만 대놓고 거절하면 괜한 트집을 잡아서 곤경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게다가 요즈음은 젊고 돈 많은 손님들이 늘었어요. 젊은 손님들이 술 마시고 와서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술주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어쩝니까, 무조건 잘못했다면서 고개를 숙여야죠. 하지만 호텔측에서 보기에도 그 정도가 심한 사람들은 출입금지명단(ugly guest list)을 만들어 호텔 간에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합니다.”

“뚱뚱하고 못생긴 캐디는 싫어!”

임재균 한성컨트리클럽 노조위원장

한성컨트리클럽 노조위원장 임재균 씨(33세)는 대한민국에서 골프는 부유층만이 즐길 수 있는 고급 스포츠라며 말문을 열었다.

“골프는 고급 스포츠입니다. 한 사람당 최소한 30만 원 이상 들고 와야 골프를 칠 수 있습니다. 그린피(green fee)가 15만3000원, 캐디피(caddy fee)가 7만 원입니다. 골프 치다가 중간에 ‘그늘집’에서 사 먹는 간식 값도 만만치 않습니다. 슈퍼마켓에서 500원에 파는 과자를, 이곳에서는 3000원에 팝니다. 클럽 하우스에서 간단한 식사만 해도 1만 원 정도 듭니다.

회원권 가격은 골프장마다 달라요. 저희 한성 같은 경우는 5700만 원이지만 레이크 사이드 같은 데는 4억 정도 합니다. 이 회원권 값은 주말 부킹이 얼마나 잘 되느냐에 달려 있어요. 주로 주말에 골프 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주말 부킹은 힘듭니다. 하지만 회원권이 없어도 검찰청이나 국정원, 경찰청에서 전화 한 통 오면 부킹은 언제나 가능합니다. 괜히 미운 털 박히면 나중에 세무조사 때 문제될 수 있으니까요

골프장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원이나 경기보조원을 함부로 대합니다. 경기보조원들에게 욕을 하고 직원들에게 골프채를 휘두르는 손님도 있어요. 손님들이 내기 골프를 치다가 공이 안 맞으면 경기보조원에게 마구 화를 내기도 합니다. 조금 뚱뚱하고 못생긴 경기보조원에게는 괜히 시비를 걸고 다른 경기보조원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죠. 그뿐 아니라 성희롱도 심하죠. 아시다시피 골프에서 한 라운드가 18홀입니다. 손님들 중에는 간혹 한 라운드가 끝나면 경기보조원에게 노골적으로 19홀 가자고 그래요. 19홀이란 호텔을 말하는 거죠. 저녁 술자리에 마음에 드는 경기보조원을 불러내는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선풍기 틀어 1만원권 지폐 날리는 사람들”

조재춘 강남 룸살롱 영업부장

조재춘 씨(33세)는 룸살롱 영업부장이다. 현재 그는 하루 1억 원 정도의 매상을 올리는 강남의 한 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조씨는 “10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정치인부터 재벌 3세까지 안 만나본 사람이 없다”면서 ‘부유층의 밤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룸살롱에서 술 한번 마시면 기본이 40만 원입니다. 발렌타인 30년산은 150만 원 합니다. 아가씨들 팁이 기본 10만 원, 음악밴드도 1시간에 10만 원입니다. 평균적으로 계산해보면 룸 하나에 200만 원 정도, 좀 마셨다 싶으면 500만 원 정도 나옵니다. 손님층은 대체로 경기를 타면서 바뀝니다. 벤처 경기가 좋으면 벤처 사업가가 많고, 건설경기가 좋으면 건설업자가 많습니다.

요즈음은 사채업자가 많아요. 우리 업소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치인도 많이 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 사람들은 ‘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상대화가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니까요. 검사, 판사도 기업의 고문 변호사들과 같이 오곤 합니다. 저희 집에 자주 오는 검사나 판사는 술을 마시고 그냥 달아 놓으라고 하죠. 그러면 나중에 변호사가 와서 계산해줍니다. 저희는 잘 모르지만 청탁이 오가는 특수관계 아니겠어요?

돈 많은 사람들은 여기 와서 술 마시다가 애인도 많이 만듭니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생기면 아파트 하나 얻어 들여앉힙니다. 용돈은 매달 500만 원 정도 주죠. 우선 골프부터 가르쳐서 골프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고객접대 하기도 합니다.

부자들이 술집에 와서 돈 자랑하는 법도 다양합니다. 1만 원짜리 지폐를 5센티 정도 쌓아놓고 술 마시기도 하고 선풍기를 가지고 와서 돈을 뿌린 다음에 주워가라고 하는 손님도 있어요. 얼마 전에 300만 원어치 술을 먹고 5000만 원짜리 수표를 내는 손님이 있었어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근처 업소를 다 돌아서 4700만 원을 구했습니다. 커다란 쇼핑백에 담아 줬는데 거스름돈도 제대로 못 세고 돌아가더군요.

저는 그런 사람들 보면 ‘우리 아버지는 영동지역이 다 참외밭이었을 때 땅 좀 사놓지 뭐 하셨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갑부들은 강남에 건물 하나만 있어도 그냥 놀고 먹고 사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여기서 10년을 일해도 별로 돈을 벌지 못하니까요.”

혼자서는 아무 일도 못하는 재벌가의 아이들

김인자 재벌3세 영재교육 과외교사

김인자 씨(가명·45세)는 재벌 3세의 영재교육만을 전문으로 하는 과외교사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부유층이 귀족으로 행세하는 신분사회”라면서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리나라 부유층의 특권의식은 깨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부유층은 가난이라는 걸 상상조차 못합니다. 왜냐하면 한번도 접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재벌집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세상사의 옳고 그름을 배우기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이기는 법을 배웁니다.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진정한 위인이라는 걸 모르죠. 다만 남들보다 부유하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아이들은 보통 3세까지는 유모가 키우고 3세가 지나면 파출부 손에서 큽니다. 유치원에 갈 때도 기사 하나와 파출부가 따라가고 아이가 유치원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모시고 옵니다. 중간에 아이들에게 간식도 먹이고요. 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아이들입니다. 하다 못해 신발도 스스로 신을 줄 몰라요. 파출부 아줌마들이 다 신겨주니까요. 포도를 먹을 때도 파출부가 칼로 반을 잘라서 씨를 빼줘야 먹죠. 수업을 하다가 지우개를 가져오라고 하면 바로 ‘아줌마’를 부르고 지우개를 가져다 달라고 할 정도니까요.

제 학생들은 주로 보통 4세부터 초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대개 외국인 학교에 다니거나 경기초등학교 같은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죠. 이 아이들 생일파티는 주로 서울클럽에서 레크레이션 강사를 불러서 해요. 아이들은 게임을 할 때 반칙을 써서라도 이기려고만 합니다. 그렇다고 그걸 말리고 규칙을 지키라고 말하는 부모도 없어요. 다들 자기 자식이 1등 하는 데만 신경을 쓰죠.

그렇게 귀하게 자란 상류층 아이들은 보통 초등학교까지만 국내에서 다니고 중학교 이상 되면 90% 이상 외국으로 유학을 갑니다. 부모가 굳이 같이 가지 않더라도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보내거나 아니면 외국에 집을 사서 일하는 사람을 몇 명 고용하면 되니까요.

돈이 많다고 해서 결혼생활이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아요. 부부생활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생활을 즐기는 편이죠. 예를 들자면 돈 많은 재벌집 남자가 가난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한 경우에는 그 여자는 남편을 뺏기지 않으려고 하녀처럼 살아요. 우리나라에서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예쁜 여자를 구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재벌집 여자와 가난한 남자가 결혼한 경우에도 불행한 건 마찬가지죠. 결혼을 통해 부를 얻게 된 남자들은 옛날 애인을 만난다거나 외도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10년째 과외교사를 하고 있지만, 부유층 사람들을 보면서 한번도 부럽다거나 부끄럽다는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돈에 비례해 행복한 건 아니라는 걸 잘 알 수 있거든요. 돈 많은 순서대로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한 달 용돈이 4000만 원이라는 한 사람이 강남의 룸살롱에서 150만 원짜리 양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명동성당에서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옥란 씨가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최씨가 농성을 시작한 이유는 한 달에 26만 원 남짓 한 최저생계비로는 기본적인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최씨가 길거리 농성을 벌이는 동안 농성비용은커녕 꽁꽁 언 몸을 녹일 가스비조차 없었다고 한다.

한 달에 4000만 원의 용돈을 쓰는 사람과 생계비 26만 원으로 한 달을 버티는 한 중증장애인. 상위 10%만 부를 독점하고 그렇지 못한 90%는 오늘도 일용할 약식을 버느라 허리가 휘는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박정선영(참여사회 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