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3월 2002-03-01   418

CEO 대통령?

CEO 대통령?


요즘 민주당 경선에 나선 후보들은 한결같이 경제 대통령 또는 CEO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 한나라당 후보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가 어려우니 충정으로 들으면 그냥 넘어갈 법도 하건만, 배운 도둑질이 경제학뿐이라 뭔가 꼬투리를 잡아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하긴, 아내로부터 ‘집안 경제도 모르면서 무슨 나라 경제냐’는 핀잔을 듣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만에 하나 이 글을 읽는 후보가 있더라도 과히 괘념치 마시기 바란다.

흔히들 경제전문가가 대통령이 되면 경제살리기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상식을 단연코 거부한다. 부탁하건대, 경제전문가를 자처하시는 후보께서는 더 이상 읽지 마시라.

경제전문가라면 이론가인 경제학자와, 이른바 실물경제에 밝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경제학을 하는 사람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경제학을 공부했든, 경제학자는 합리성의 기준으로 세상을 분석한다. 물론, 합리성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수많은 실수들을 예방한다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세상을 설명하고 변화시키는 유일한 기준은 분명 아니다. 따라서 상상력 부족이라는 불치의 직업병을 앓고 있는 경제학자가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정해야 하는 정치의 최고책임자, 즉 대통령이 되는 것은 국민 모두의 불행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른 한편, 이른바 실물경제에 밝은 사람은 어떤가? 실물경제통이라는 표현이 모호하기는 한데, 시장을 무대로 하는 영리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일단 해석한다면, 이 역시 대통령감으로는 적절치 못하다. 대통령은, 시장 외적인 압력에 흔들려서도 안 되겠지만, 시장의 압력에 대해서도 초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역사에는 시장의 이름으로 행해진 실수 또한 결코 적지 않으며, 그 파급효과는 반(反)시장적 실수에 못지않게 크다. 그런데 실물경제통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시장의 요구에 순응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재벌의 요구와 시장의 요구를 구분하는 것조차 헷갈려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시장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이 시장 외적인 압력에 굴복하는 것보다 낫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후보라면, 재삼 부탁하건대, 빨리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시라.

그러면, 비(非)경제전문가인 대통령이 경제살리기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각종 토론회에서 후보들이 쏟아내는 ‘공자님 말씀’에는 솔직히 관심이 없다. 참모들이 써준 원고도 못 외우는 후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TV 토론회를 보니, 주주대표소송과 증권집단소송 그리고 집중투표제를 정확히 구분하는 후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서까지 모범답안을 준비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이들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참여연대 사람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나, 그렇다고 해서 밤 새워 외우라고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그거 구분하지 못한다고 훌륭한 대통령 되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경제 대통령은 자신이 경제전문가가 아님을 인식하고, 능력 있는 경제전문가를 기용하면서 그 권한을 인정할 줄 아는 대통령일 것이다. 통화금융정책은 한은총재에게, 금융감독은 금감위원장에게, 재벌정책은 공정거래위원장에게 맡겨 이들이 해당 분야에서는 경제대통령으로 불릴 수 있도록 하는 대통령 말이다. 상상력 부족한 경제학자가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 혹시 여기까지 읽어 주신 후보 있으면, 진정 감사드린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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