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6월 2001-06-01   743

성폭력과 운동진영의 남근주의

필자는 작년 여름 롯데호텔 성희롱사건 소송을 준비했었다. 결과적으로는 심하게 성추행당한 여성들 대부분이 소송을 거부했고, 비교적 경미한 경우의 사람들만 참여했다. 롯데호텔 경찰병력 투입 과정에서 경찰에 저항하다 유산했던 한 여성조합원은 경찰폭력 때문에 아이를 잃었지만 그 사실을 끝내 감췄다. 이유는 시댁에 알려지는 게 두렵다는 것.

민주노총 소속 KBS 현 노조 부위원장(지난 5월 10일자로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제명됨. 이하 노조 부위원장)의 성폭력사건이 공개됐다.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여성 100인위원회’(이하 100인위)를 통해 공개된 이 사건의 내용은, 노조 부위원장이 95년과 97년 노조 사무실에서 노동조합이 채용한 여직원 두 사람에게 가한 성폭력이다. 한 사건은 노조 부위원장이 노동조합 일을 그만두고 지방에서 일하던 시절, 그 지역에 내려온 여직원에게 호텔 방을 잡아준 후 양주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강간미수를 범한 것. 또 다른 사건 역시 그 지방에 내려온 피해 여성과 그 친구를 단란주점에서 접대하는 자리에서 그 친구가 화장실에 가거나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피해자에게 키스하고 바지 속에 손을 넣으려 하는 등 성추행을 범한 것이다.

이 사건은 워낙 오래된 일인 데다, 너무나 힘들게 사회적 공개를 선택한 피해자들의 어려움 때문에 피해 당사자나 가까운 주변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자세한 사건의 정황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런 피해자들이 어렵사리 민주노총을 방문했는데 한 사람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신혼이었다. 그의 남편은 부인의 외출조차 금지하며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남편은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지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가해 당사자측에서는 오히려 훨씬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정황들을 들이대며 피해자들과 100인위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노조 부위원장의 입장은 피해여성들과 100인위가 왜곡된 사실을 전하고 있다는 것. 사건은 풀릴 수 없는 평행선이었고 지금도 계속 진행중이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느낀 것은 사회의 진보를 지향하는 운동사회 안에서도 여전히 여성문제는 뒷전으로 처지거나, 피해여성들이 당하고 말 문제로 인식돼, 피해자 스스로도 드러내고 언급하기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운동권의 경우도, 적어도 성폭력에 대해서만큼은 사회의 전반적 인식에 비해 조금도 진보적이지 않다고 단언하고 싶다.

사회의 보편적 인식이, 가족과 남편과 피해 여성의 인식마저도 그리고 법제도와 법집행 과정 등 모든 것들이 이와 관련된 문제를 드러낼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상사의 성희롱을 제기하면 그 이후 피해자는 회사를 그만두고 가해자는 당당히 회사를 다니는 것이 롯데호텔 사건 이전까지 우리들이 익히 보아왔던 상례 아니었던가.

따라서 소위 ‘운동권’이 이러한 흐름을 성찰과 발전의 기회로 받아들이려 한다면, 적어도 여성 문제를 여성의 시각에서 보려고 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 문제를 노동자의 시각에서 봐야 하는 것처럼…. 또 하나 많은 남성운동가들은 이야기한다. ‘그런 과정에서 생길지 모르는 선의의 피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는데….’

개혁 과도기에 남성들이 말하는 선의의 피해자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92.7%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인권유린은 당연시하며 드러나는 일부의 성폭력 가해자측 인권만을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심으로 그 어떤 인권유린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끊임없이 제기되는 가해자측 인권에 대한 많은 남성들의 지나친 우려가 이제 진력이 난다.

이혜순 민주노총 여성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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