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6월 2001-06-01   640

『E=mc²』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호기심은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인간은 진리와 인생 그리고 불가사의한 현실의 구조를 직시할 때,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두려움에 빠지곤 한다. 그저 매일 이 불가사의한 세계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걸로 족하다. 신성한 호기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목적에 자신의 온 힘과 정신을 다해 몰두하는 사람만이 진정 탁월한 사람이다. 이런 까닭에 탁월해지는 데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요구된다.”

“우리는 사람 문제에 관한 한 과학과 과학적 방법을 과대평가하지 않아야 한다. 또 우리는 사회조직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사람이란 전문가들뿐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 기술진보는 노동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실업만 증가시키는 결과를 종종 낳는다. 자본가들의 경쟁과 연관된 이윤동기야말로, 자본축적과 활용의 불안정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심각한 경기 침체의 원흉이다. 무한 경쟁은 노동의 엄청난 낭비를 유발하며, … 개인들의 사회의식을 불구로 만든다. 개인을 불구로 만드는 것은 내가 보기에 자본주의 최대 악이다. … 이런 악을 제거하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것은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교육체계를 동반한 사회주의 경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계획경제가 아직은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계획경제는 개인을 완전히 노예화함으로써 달성할 수도 있다. 아주 극도로 어려운 사회정치적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 문제란, 정치경제적 힘의 광범한 중앙집중화를 고려할 때, 관료들이 모든 힘을 장악하고 자만해지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또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료의 권력에 맞서는 민주적인 평형추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서로 별 상관이 없는 듯한 두 개의 인용문은 한 사람의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인용글은 1949년 5월 미국의 독립계 좌파 월간지 『먼슬리 리뷰』 창간호에 실린 이래 주기적으로 되풀이돼 실리고 있는 글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자기 이름을 딴 우유광고에도 나오는 ‘머리 좋은 사람’, 천재의 상징.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그가 바로 두 인용문의 작성자이다.

원자폭탄의 충격과 과학자의 책임

아인슈타인은 평생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자본주의 진영의 국가-독일과 미국-에서 살았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비판적 거리를 두고 사회주의에 우호적이었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으로 유명한 닐스 보어와 세계관 논쟁과정에서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고, “오래된 자(신)가 우리 우주에서 의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을 평생 학문의 목표로 삼았던, 신앙심 깊은 유태인이었던 그는 왜 이렇게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었을까.

그 직접적 이유는, 거칠게 말하면, 그의 상대성이론과 원자폭탄, 그리고 그 폭탄이 인류의 삶과 역사에 끼친 악영향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독일이 원자폭탄을 성공적으로 생산해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나는 결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았을 걸세, 결단코!”아인슈타인이 그의 비서에게 자주 했다는 말이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원폭이 투하돼 그 재앙의 위력을 유감없이 과시한 뒤, 아인슈타인은 말이 아닌 실천에 나서기 시작했다. 1955년 버트런드 러셀, 조지프 로트블랫(9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등 11명의 저명한 학자들과 ‘핵무기 없는 세계, 전쟁없는 세계’를 위해 세계의 과학자들의 공동연구와 실천을 촉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57년 7월 7일 그를 비롯한 22명의 핵물리학자들이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퍼그워시라는 작은 어촌에 모여 첫 회의를 열었다. 그게 바로 핵무기에 대한 국제적 규제틀을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해온 세계적 반핵 평화운동단체인 ‘과학과 세계문제에 관한 퍼그워시 회의’(www.pugwash.org)이다.

원자폭탄의 재앙적 위력이 과학자들에게 안겨준 충격은 실로 엄청났던 것 같다. 미국의 원자폭탄 비밀 개발 계획인 맨허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제임스 채트윅(중성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발견)이 호소한 고통을 들어보자. “그때부터 나는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치료제였다. 그 후 한번도 편하게 쉰 적이 없었다. 28년 동안 단 하루도 수면제를 거른 적이 없었다.”

특수상대성이론의 공식 E=mc²의 전기

원자폭탄의 사용은, 분명히 ‘중립성’의 지대에 안주해오던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하게 부각시킨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리고 원자폭탄은 아인슈타인의 저 유명한 공식 E=mc²(에너지는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것과 같다)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영국의 역사저술가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E=mc²』(김민희 옮김, 생각의 나무 펴냄, 2001년)은, 특수상대성이론으로 알려진 공식 ‘E=mc²의 전기’이다. 아인슈타인에 관한 전기가 아니라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은이는, 영화배우 카메론 디아즈가 한 영화잡지와 인터뷰를 마친 뒤 기자에게 “E=mc²이 도대체 무슨 뜻이죠?”라고 물었다는 데서, 복잡한 수식이 포함되지 않은 대중적 저술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게 진실의 전모는 아닌 것 같다. 지은이는 아인슈타인 등 특정인에 초점을 맞췄을 때 불가피하게 발생할 ‘영웅화’, ‘신화화’의 난점을 피하려 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다. 인간이 개발한 어떤 측정 방법으로도 지능지수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똑똑했다’는 앙리 푸엥카레 등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덤덤하게 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 모른다.

책은 E, =, m, c, 2 등 공식을 이루는 다섯 개 기호의 연원에서부터 시작해 우주와 생명의 신비를 풀기 위해 땀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있는 세상의 수많은 위대한 물리학자들의 노고를 아름답고 감각적인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수학을 생각하면 머리에 쥐부터 나는 이들에게도 이 책은 "유쾌하고, 놀랍고, 생각을 자극하는 걸작이며 한편의 문학작품"(윌리엄 맥닐)처럼 다가설지 모른다. 발간 이후 대부분의 중앙일간지 서평란에 비중있게 소개된 바 있어 책 내용을 자세히 설명할 생각은 없다. 아니 솔직히 전문 연구자가 아닌 나로선 제대로 설명한다는 것이 요령부득임을 고백해야겠다.

다만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미군 B-29 폭격기에서 투하된 원자폭탄이 폭발하기까지 물리·화학적 과정을 묘사한 13장 ‘오전 8시 16분, 일본 상공’은 반드시 숙독에 숙독을 거듭할 것을 권한다. 1/1000초라는 찰나적 순간에 이뤄진 원자폭탄의 폭발─이 부분을 읽을 때 산사의 고요함보다도 더 무서운 정적이 엄습했다─이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가슴으로 느끼길 바란다.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의 연인이자 에너지 보존 법칙의 실마리를 잡아낸 에밀리 뒤 샤틀레, (우라늄)핵분열의 구조를 해명해 ‘E=mc²’을 실증했을 뿐만 아니라, 원자력─그것이 폭탄이든 발전이든─이용 가능성의 신천지를 열어젖힌 리제 마이트너, 태양이 수소와 수소의 폭발로 생겨난 수소핵이 융합한 헬륨으로 이뤄졌음을 해명해 우주의 비밀에 다가설 열쇠구멍을 뚫은 세실리아 페인 등이 뛰어난 물리학적 능력과 업적에도 불구하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야 했던 엄청난 시련과 차별도 빼먹지 말고 곰곰이 되새겼으면 한다. 블랙홀 개념을 창안한 인도인 수브라마냔 찬드라세카르가 황색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인종차별도 함께…. 차별은 그 자체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류가 더 일찍, 더 폭넓게 공유할 수도 있었을 지적 사유의 전진을 가로막았다는 점에서도 나쁘다.

이제훈 『한겨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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