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8월 2001-08-01   776

하이네켄 맥주가 미얀마를 떠난 까닭

하이네켄 맥주가 미얀마를 떠난 까닭

중국 베이징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 목숨을 건 농성을 벌이던 탈북자 장길수 군 가족이 원하던 대로 유엔 난민의 지위를 얻어 한국으로 오게 된 사건으로 우리가 난민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법무부가 유엔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01년 2월 13일까지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약 30만 명으로 추산) 중에 난민 지위를 요구한 104명 중 단 1명만이 우리 정부에 의해 난민 지위가 주어졌다. 나머지 103명 중 45명은 난민 인정이 거부되었으며, 11명은 스스로 포기했고, 47명은 심사 계류중인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그런데 난민 인정을 신청한 104명 중 21명이 미얀마인이며, 이들 모두의 신청은 심사중에 있다.

지난 4월 30일과 5월 1일 이틀 간 스위스 제네바에선 유엔의 A 규약조약(사회권, 문화권 그리고 경제권)이 심사되었는데 여기서 채택된 유엔 심의위원의 권고사항 중 하나가 한국의 난민 지위 부여에 대한 부정적 경향이다. 물론 어느 나라든 난민 지위 부여를 남발할 경우 자국의 이익이 침해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경제적 이유로 난민이 자국에 흘러들어 왔다고 판단되면 난민 지위 인정이 더 힘들어진다. 그렇더라도 우리나라가 1951년 발효된 유엔 난민 지위협정에 가입한 것은 1992년 12월의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한 명의 에티오피아 사람만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획득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요, 즉시 개선돼야 할 일이다. 우리 민족의 아전인수격인 이기주의적 성향과 국제동향에 관한 무지는 심각한 수준이다. 역지사지의 자세가 아쉽다.

군인들의 집단강간 희생양, 소수민족 여성들

이야기를 다시 미얀마의 유랑민들에게로 돌아가보자. 미얀마의 인접국인 태국은 지난 20년 동안 인접국인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에서 온 피난민 수백만 명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태국은 미얀마에서 온 7개 부족민에겐 유엔의 난민 지위 부여를 사실상 봉쇄했다. 미얀마인들은 다른 나라 피난민들보다 훨씬 혹독한 고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1988년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국민항거 이후 총 30만 명의 태국 내 미얀마 난민 중 약 9만8000명이 25개 난민수용소에 수용되었으며, 이 수용소들은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 1500km를 따라 흩어져 있다.

유엔으로부터 난민 지위가 거부된 태국 내 미얀마 피난민들 중 몬족은 주로 남쪽, 카렌족은 중앙, 그리고 카레니족은 북쪽 국경에 위치해 있다. 이들의 생활은 너무나 비참하다. 유엔에서 버림받은 이 난민들은 기독교 기관을 주축으로 1984년 결성된 미얀마국경 난민구제NGO협회의 구호를 받고 있다. 미얀마 군부가 소수민족 통합정책(사실상의 소수민족 말살정책)을 빙자하여 카렌 독립군, 몬 자치군에 대한 섬멸 작전을 편 결과, 무고한 양민들만 피난민이 되어 고향을 등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몬족이 있는 남쪽의 수용소들은 미얀마 군인들에 의해 강제 철거되고 있다. 미얀마 군사정권으로부터 천연가스 채굴권을 사들인 태국 회사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피난민 중에서도 여성들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미얀마 군인들의 집단강간 대상이었고 피난민 수용소에서도 주부로서, 어린 자식들의 어머니로서, 하루 품삯을 벌어야 하는 노동자로서 겪는 그 고통은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들의 처지만 보노라면 하루 속히 미얀마에 평화가 정착되고 민주화와 7개 민족의 화합이 이루어져야겠다는 염원이 저절로 마음 속에 깃든다.

미얀마의 평화 정착과 민주화, 그리고 여러 종족 간의 평화적 공존에 가장 큰 장애요인은 군사독재 정권이다. 1990년 5월 선거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이 80%를 웃도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군사정권은 정권 이양을 11년째 미루고 있다. 지난 호에 언급했던 군부와 수지 여사의 비밀회담은 아직도 결말을 알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군부는 나라 이름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꾼다든지, 1996년을 ‘미얀마 방문의 해’로 정하고 곳곳을 장식하여 관광객 유치에 힘쓰는 등의 피상적인 방법으로 군사독재의 어두운 그림자를 감추려 하고 있다. 특히 전국의 불교 사찰들을 재건하고 모든 절과 탑에 금색을 입히고 치장한 뒤 미얀마를 세계 불교도의 성지로 선전하고 있어서 한국의 불교도와 관광객들의 발길도 줄을 잇고 있다. 미얀마 수도 양군의 스웨다곤 종탑.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에 금괴를 녹여서 종을 만들고 수십 개의 보석으로 장식했으며 종의 꼭대기에는 76캐럿의 다이아몬드까지 달아놓았다. 그러나 고통에 몸부림치는 헤아릴 수 없는 양심수들, 강제노역에 끌려나와 철도를 놓고 가스관을 묻는 노동자들의 한숨, 권력을 독점한 버마족의 토벌작전에 스러져가는 6개의 부족의 한 맺힌 서러움, 1인당 국민소득이 400달러에 불과한 4600만 미얀마족들에게 금으로 만든 종탑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한국의 관광객이나 성지순례를 가는 불교신자들은 이 종탑에서 미얀마의 눈물을 보아야 한다.

미국 등 서방세계는 군사정권의 불법성과 인권유린을 문제삼아 1995년 이후 경제적 제재를 가했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의 모든 기업이 미얀마에서 철수하였다. 예를 들면 1997년 미국의 대학생들과 NGO들은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유린 사건을 전국에 널리 알리고 미얀마 군부에 압력을 넣자는 운동을 일으켰다. 이 운동의 영향과 미국 지식인들의 노력의 결과 같은 해 4월, 코네티컷 시의회는 미얀마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미국 회사 상품의 불매운동을 결의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또 콜로라도주 상원의회는 5월 미국 회사의 미얀마 경제활동 금지안을 통과시켰고 이어 뉴욕 시의회도 미얀마 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미국 회사들과의 협력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해당 회사들이 뉴욕시 기금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국 기업도 인권상황 고려해야

1997년 12월 네덜란드의 맥주회사 하이네켄은 양군시에 공장터를 사들이고 대규모 맥주공장 설립계획을 세웠으나 결국 포기해야 했다. 이는 NGO와 힘을 합한 네덜란드의 개신교(Uniting Church)가 미얀마 군부의 무고한 국민학살과 양심수들의 열악한 감옥살이를 문제삼아 5년에 걸쳐 끈기있게 회사를 설득한 끝에 얻어낸 결실이다. 이에 앞서 9월 1일 영국의 로빈 쿡 외무장관도 1998년 4월 런던에서 개최 예정인 아시아 유럽 정상회담에 미얀마를 제외시킨다고 발표하였다. 이것들은 여러 가지 사건들 중의 몇 몇에 불과하다.

이처럼 유럽과 미국의 많은 기업이 미얀마에서 철수하고 압력을 가하지만 군사독재 정권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는 아시아 국가 중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중국, 일본, 한국의 경제협력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가능한 것이다.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는 군부와 수지 여사의 회담이 이번에도 실패로 끝날 경우, 이제 우리 시민세력은 미얀마에 경제투자를 하고 있는 회사 제품의 불매운동을 벌여서라도 군부가 퇴진하고 정권이 민간에 이양되도록 힘을 모아 줘야 하지 않을까?

박경서 인권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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