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12월 2018-12-02   1219

[만남] 달인에서 장인으로 – 김우영 회원

달인에서 장인으로

김우영 회원

 

월간참여사회 2018년 12월호(통권 261호)

 

단 걸 싫어한다. 빵보다 밥이 좋다. 내가 빵집을 잘 찾지 않는 이유다. 거기에 더해 방송에 나온 집이라면 내 발로 ‘그 빵집’을 찾아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래서 빵 좀 먹을 줄 안다는 참여연대 간사들 사이에서 ‘그 빵집’ 이름이 회자될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올해 2월 SBS<생활의 달인>에 소개되어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그곳.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 빵집 이름을 검색하니 #망리단길 #빵지순례 #빵덕후 등의 단어들이 출렁인다. 이 인터뷰, 정말 내가 해도 괜찮은 걸까. 

 

바게트의 달인 

이런저런 걱정이 빵처럼 부풀어 오른 채 도착한 망원동. 한적하고 고요한 주택가 한켠에 그의 빵집이 있었다. ‘빵’이라는 고딕체 글씨가 정직하게 새겨진 입간판. 예상과 달리 다행히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확인하니 조금 안심이었다. 그가 나온 <생활의 달인> 129회를 이미 재방송으로 보고 간 터라 그에게 가장 궁금했던 방송 출연 이야기부터 물었다. 

“처음엔 가게 앞에 줄을 한 100미터 섰어요. 생활의 달인 작가님이 망원동에 사나보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손님으로 왔다가 망원동에 이런 빵집이 있는데 달인으로 소개하면 어떨까 의견을 내셨대요. 그다음에 PD님하고 작가님하고 오셔서 쭉 한번 둘러보시고는 뭐가 유명한지 물어보시고, 사진도 좀 찍어 가시고 하다가 나중에 연락이 와서 출연하게 됐죠.”

 

<생활의 달인>은 잘 알려졌다시피 수십 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른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수십 년 경력을 가진,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분들이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나이, 만36세. 달인 중에서도 젊은 편에 속하는 그는 어떻게 벌써 달인이 될 수 있었을까. 

“2006년부터 빵을 만들었어요. 그때가 24살. 원래 요리를 배우려고 조리학과가 있는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처음 빵을 배웠죠. 뭔가 살아있는 걸 가지고 만드는 느낌이 흥미로웠어요. 빵에는 효모가 들어가거든요. 다른 요리들은 뭔가 죽어있는 재료들로 만드는 건데, 빵은 살아있는 생물을 다룬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제 손으로 빵을 키우고 관리하고 얼마나 정성을 들이느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 게 신기하고 좋더라고요.”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 올해 벌써 경력 11년. 그는 직접 개발한 누룩을 사용하고 무즙을 넣어 만든 바게트로 유명한 ‘바게트의 달인’이다. 그가 언급한 효모는 빵을 부풀리는 데 쓰이는 균의 일종인데, 말 그대로 ‘살아있는’ 생물이다. 효모는 밀가루 속에서 당분을 먹고 가스와 알코올을 내뿜는데 이 알코올이 빵 반죽을 부풀리게 하는 역할을 한단다. 막걸리를 발효할 때도 사용된다는 효모. 아, 그래서 가끔 빵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는 거구나! 

“무 같은 것도 넣어 본 계기가 빵을 소화가 잘 안된다고 하시는 분이 많잖아요. 근데 무나 동치미라든지 그런 거 먹으면 소화가 잘되니까. 그러면 손님들이 빵을 드시고도 속이 편안하고 그런 게 있어야 오래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사용하게 됐어요. 발효종도 비슷한 원리인데 무의 효소가 탄수화물을 분해를 해서 소화 흡수를 편하게 하거든요.”

 

그에게 빵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더 묻자 각종 어려운 제빵 용어들이 튀어나온다. 제빵사는 요리사보다 생물학자나 화학자에 더 가까운 직업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원래부터 빵을 좋아했어요? 

“저는 제가 먹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사람들이 제가 만든 빵이 맛있다고 하는 게 더 좋아요. 빵 만드는 사람 중에는 두 부류가 있어요. 자기가 빵 먹는 걸 좋아해서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 같은 경우는 반대로 빵을 만들어서 누굴 먹이고 반응을 보는 게 좋아요.” 

 

월간참여사회 2018년 12월호(통권 261호)

지난 2월 김우영 회원이 ‘바게트의 달인’으로 출연한 방송화면 출처 SBS

 

마음가짐, 아띠뜌드

머릿속에 한 장면이 스친다. 약 10년 전, 주지훈, 유아인 등 꽃미남 배우들이 총출동해 보기만 해도 달달한 디저트를 만들어내던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극 중에서 빵집 사장 역할을 맡은 ‘주지훈’은 나처럼 단 걸 싫어하면서 디저트를 만드는 파티셰로 등장한다. 하지만 정작 ‘달인’의 빵집엔 영화 속 디저트처럼 화려한 빵들이 보이지 않았다. 

“예전엔 빵 하면 달고 부드럽고 그런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아요. 빵, 하면 떠올리는 게 몇 개 없었잖아요. 단팥빵, 소보로빵 카스텔라…. 그런데 지금은 취향이 뭔가 다양해졌달까요. 빵에 대한 취향도 세분화 됐다는 느낌이 들어요.”

 

먹방이 생활화 된 요즘, 사람들의 입맛을 당겨주는 음식과 디저트 가게를 찾는 이들이 점점 많아진다. 빵집도 예외는 아닐 터, 사람들이 맛있는 빵집을 찾아다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람마다 맛을 느끼는 게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빵을 좋아하는 분들은 밀가루에서 느껴지는 식감이나 맛에 되게 예민하고 거기서 오는 즐거움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확실히 여성들이 밀가루에 대한 호감이 남자 분보다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손님 중에도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고요. 왜 그럴까 나름 생각해 봤는데 어느 책에서 그러더라고요. 어머니들이 애기들 먹일 때 씹어서 먹여주기 때문에 씹는 행동 자체를 유전적으로 좋아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가 만드는 ‘바게트’는 물과 밀가루, 소금, 이스트만으로 만드는 빵으로 알려졌다. 단순하지만 즉, 기본을 지키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제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마음가짐 같아요. 프랑스어로는 ‘아띠드’라고 얘기하는데. 빵을 대하는 자세를 뜻해요. 예를 들면 제가 맛있는 빵을 만들고자 하면 좋은 재료를 찾을 거고 정확한 공정을 잘 지켜서 만들 텐데, 그 마음가짐이 없다면 사람들이 잘 모를 수는 있어도 결과물 자체는 좋게 나올 수가 없다고 보거든요. 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어요. 예전에 신라호텔에서 일할 때 실수하면 선배들이 그런 말 되게 많이 하시더라고요. 빵은 정직하니까 사람이 실수하고 거짓말해서 결과물이 이렇게 나오는 거지. 사람이 그걸 대하는 마음가짐이 좋아야지 빵이 잘 나온다는 거죠.”

 

어디 빵뿐이랴.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빵에 대한 ‘아띠드’를 제대로 배운 건 바게트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에서였다. 빵이 좋아서 무작정 빵 유학까지 다녀온 그였다. 프랑스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게트의 종류만 열 가지가 넘고 빵을 만드는 재료도 프랑스 식품법으로 엄격히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빵과 관련된 자격시험도 국가공인이다.

“이엔베빼(INBP)라고 하는 프랑스국립제과제빵학교를 다녔어요. 제빵명장 시험도 거기서 치를 수 있거든요. 매년 명장을 뽑긴 하지만 국가에서 치르는 시험인 만큼 엄격하게 보기 때문에 기준에 미달하면 그해 명장이 한 명도 안 나올 때도 있어요.” 

 

처음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네가 할 수 있겠냐고 빈정댔지만 점점 오기가 생겼다. 처음 프랑스 사람 만났을 때 봉주르란 인사도 안 나왔다. 무엇보다 단기 속성으로 누구든 쉽게 제빵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점은 기술이 아닌 바로 빵을 대하는 태도였다.

“특이한 게 제빵학교인데도 그 나라의 역사나 지리, 언어시험도 쳐야 해요. 인문 교양 교육에 대한 그런 거 게을리하지 않더라고요. 프랑스나 유럽에서 빵은 단순히 먹을거리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라고 생각하는 게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저는 사실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려고 간 거였는데 막상 가서 보니 유럽에서는 빵이라는 게 문화더라고요. 이걸 이해하는 게 기술 배우는 것보다 더 크다는 걸 느꼈어요.”

 

우리 모두의 작은 가게를 위해   

2010년에 유학을 떠난 그는 한국인 최초로 2013 파리 최고의 바게트 경연대회에서 입상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2016년, 동업자와 함께 망원동에 지금의 가게를 차렸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빵집을 차린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기엔 제가 추구하는 거랑 좀 안 맞았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걸 하고 빵을 통해서 저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딴 사람이 만든 걸 파는 건 제 것이 아니잖아요. 프랜차이즈는 회사생활의 연장 같은 느낌이랄까요.” 

 

몇 해 전 ‘나만의 작은가게 만들기’같은 주제의 책들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정부 차원에서 독려하는 청년 창업 프로그램도 물밀 듯이 나왔지만, 대한민국에서 가게를 운영한다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뛰어들었다가 실패를 맛보곤 했다. 

다행히 그의 빵집은 개업 2년 만에 제빵사 네 명에 홀 아르바이트생을 별도로 둘 만큼 자리를 잡았지만, 그에게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망리단길’이 더 자주 회자될수록 못 버티는 가게들이 늘어났다. 

 

 “지금 망원동도 그렇고 홍대도 그렇고 그런 거 보면 좀 안타깝죠. 젊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잘 가꿔놓은 과실을 다른 사람들이 따 간다는 게. 자영업이라는 게 항상 불안한 거 같아요. 저야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적이지만 매출이라는 게 늘 보장된 것도 아니니까. 직원들 월급도 그렇고 임대료도 계속 오르잖아요. 제 월급이야 좀 덜 먹고 덜 쓰면 되는 건데 직원들 월급은 꼭 챙겨줘야 되는 거니까요. 어떻게 보면 제 가게지만 저도 월급 받는 거고 직원도 월급을 받는 거니까. 저 혼자만 커도 안 되고 직원들도 비전을 갖고 같이 성장하면 좋겠어요. 누굴 쥐어짜거나 착취하는 건 오래가는 비결은 아닌 것 같아요.”

 

그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는 달인을 넘어 장인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특별히 사회문제에 관심이 깊었던 것은 아니지만 친구인 참여연대 간사가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해서 가입을 결심했다는 그.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 그리고 가금은 내 옆 사람을 돌보며 살 수 있는 것. 사회 운동이란 결국 그런 게 아닐까. 세상의 모든 ‘생활의 달인’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이쯤되면 그가 만드는 빵이 먹고 싶어질 독자들을 위해 공개하는 빵집의 이름, ‘블랑제리코팡’. 프랑스어로 ‘블랑제리(boulangerie)’는 빵집, ‘코팡(copain)’은 친구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언제까지 빵을 만들고 싶은지 물었다. 

“체력이 닿는 한 계속 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빵을 배우고 싶은 어린 친구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의 꿈에 도움이 되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글, 사진.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녹취. 조연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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