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9월 2009-09-01   1295

헌법 새로 읽기_’제왕적 대통령’의 견제장치, 국민




‘제왕적 대통령’의 견제장치, 국민



김진 변호사


지난 1년 반 동안 심한 마음고생을 하고, 몇 달 사이 두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며 어울리지 않게 아침마다 눈물바람이었다. 모두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었거나 있는 사람 때문이다. 어째서 이렇게 한 번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 때문에 슬프고 힘들게 마음고생을 해야 하나. 무엇 때문에 우리네 국민들 생활이 한 사람 때문에 휘둘려야 하나. 대통령이 도대체 뭐기에 이렇게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혹자는 이것이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 자체가 선뜻 이해되지는 않지만(이 말은 원래 1973년 슐레진저가 닉슨 행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말이라고 하니 우리 실정에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일단 ‘대통령이라는 한 사람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뜻이라고 얼버무려 이해해도 된다면 동의할 수 있겠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직’의 의미를 되짚어 보자. 출발점은 그 이름과 권한을 만들고 규정하는 ‘헌법’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과 정치적 권위는 헌법에 의하여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이다(헌법재판소 2004. 5. 14. 선고 2004헌나1 결정 –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우리 헌법은-중간 중간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제헌 당시부터 ‘대통령제’에 통치구조의 기본을 두고 있는데, 대통령제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임기제 대통령에게 행정권이 집중되고 의회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통치 구조’라고 정의할 수 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장 뒤에 먼저 국회에 대한 조항들을 열거하고, 다음으로 ‘정부’에 관한 제4장의 첫머리 20개 조항에서 대통령을 다루고 있다(제66조~제85조). 선출방법과 취임 선서 문구, 임기와 궐위 시 권한 대행 등을 상세하게 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원수로서의 권한과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권한을 폭넓게 부여하고 있다. ①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②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③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④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제66조). 언뜻 보기에도 엄청난 권한인 것처럼 보인다.

이 ‘대통령’이라는 것 자체가 1781년 미국 헌법 이전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제도이기 때문에 ‘대통령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라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미국과의 비교로 이어진다. 우리 헌법 조항 자체가 미국 헌법을 많이 닮아 있기도 하다.

미국 헌법의 제정자들은 이미 유럽에서 상당한 선례와 경험이 있었던 의회, 사법부와는 달리 새로운 행정 권력을 만들고자 했다. ‘강력한 행정부’ 개념을 만들고 싶었던 데다가 그 힘을 잘 다루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의 숫자, 행정부 선택 방법, 재임 기간 등 많은 고민을 했으며 그 중에서도 대통령에게 권한을 얼마나 주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집중했다. 하지만 결국 대통령 권한에 대해 명확한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한에 대해서는 골격만 세우기로 하였고, 많은 영역을 애매모호하고 불명확하게 두어 빈틈을 만들었다(제정자들이 이러한 공백을 남겨둘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제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고, 그 능력과 성실성에 대한 확신 때문에 대통령제를 완성하지 않고서도 안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헌법과 미국 헌법을 비교하면서, 우리가 미국보다 대통령에 관해 더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고 그 지위와 권한이 강화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더 강력한 권력을 쥐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헌법 조항만 보더라도 실제로 우리의 대통령 권한이 미국보다 강하다는 주장에는 의문이 생긴다. 미국 헌법에도 행정권 부여 조항Vesting Clause과 군군 통수권자 조항Commander-in-Chief Clause, 조약체결권이나 공무원 임용 권한과 법률 집행 권한Take Care Clause 등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헌법에는 미국에는 없는 긴급명령권 및 긴급재정경제명령권과 계엄선포권 등 국가긴급권에 속하는 권한들(제76조, 제77조), 그리고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회부권(제72조)등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모두 비상시나 위기 시에 관한 것이므로 상시적 권한이 ‘제왕적’인 데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즉 규범 자체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헌법조항이 아니라면 무엇이 ‘제왕적 대통령’을 만드는가. 더 큰 원인은 오히려 사회·문화적인 것에서 찾는 것-즉 남북분단의 긴장상태 속에서의 권력 집중, 이른바 ‘개발국가’의 이념, 상하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유교문화의 전통, 구조적으로는 공천장악권을 비롯한 민주적이지 못한 정당 체제 등-이 더 맞을 것이다.

사람들은 ‘제왕적 대통령’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국회의원의 자율성과 정당의 민주화, 책임총리제 등을 통한 권력의 분산 등을 든다(물론 문화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살펴보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니 잠시 놓아두자). 쉽게 말해 권력을 조금은 분산시키고 적절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안에만 무게를 둘 수는 없다. 의회든 총리든 다른 권력에 의해서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고 분산하는 데 치중하면 ‘무력한 대통령’이 되어, 대통령제의 본질에 반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통령제의 딜레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누가, 무엇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무분별하게 행사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기본으로, 다시 거슬러 대통령제의 정의로 돌아 가보자. ‘대통령제 =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임기제 대통령에게 행정권이 집중되고 의회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것’. 다시 말해 ‘국민 전체에 의해 선출된 유일한 공직자’인 대통령은 오직 국민에게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힘을 막거나 견제할 수 있는 것도 국민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그 권한이 질주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이는 권한의 원천을 잊지 않고 오직 국민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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