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3월 2004-03-01   426

[회원마당] 기적의 러브하우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이 의탁할 조그마한, 하지만 과분하게 넉넉한 공간을 하나 마련했다.

아내가 결혼 전에 세 들어 살던 구옥을 세입자가 수리하고 유지하는 조건으로 저렴하게 장기임대 한 것이다. 모아 놓은 돈을 다 털어 넣고 고리의 대부금을 더 집어넣어야 겨우 방 하나를 얻을까말까한 처지의 우리로서는 큰 마루에 작지 않은 안방과 서재, 별채의 식당방과 부엌이 딸린 집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최상의 조건이기도 했다.

집 단장을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트럭으로 가득 건자재를 싣고 올라오셔서 직접 리모델링을 시작하셨다. 바깥에 있던 화장실을 대신해서 부엌 자리에 화장실을 새로 만들었다. 낡은 문들이 새 것으로 교체되었고 벽에는 요즘 웰빙 인테리어로 유행한다는 황토를 발랐다. 아내가 운영위원으로 있는 노숙자 쉼터의 도배팀에서 도배를 담당했다. 최근 독거 노인을 위한 도배를 시작해서 솜씨는 서투르지만 정성은 대단했다. 대역사가 보름 정도의 시간과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대단히 적은 비용으로 완성되었다. 감동적인 대변신이다. 우리 부부는 이것을 ‘신동엽의 러브하우스’가 따로 없다는 의미에서 ‘부모님의 러브하우스’라고 명명했다.

“집은 삶의 흔적이다.” 건축가 김진애의 말이다. 그렇다. 집에는 기억이 있다. 시골의 본가에 가면 어릴 적 구슬치기하던 양지바른 담벼락과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던 다락방을 둘러보곤 한다. 우리 부부에게 이번 집은 사연과 기억이 묻어 있는 집이다. 깨끗한 욕실에 들어갈 때면 아내는 추위에 떨며 손발을 씻어야 했던 지난 겨울의 기억을 떠올린다. 흙벽의 까칠까칠한 느낌에는 아버지의 숨결이 배어있다. 어찌 보면 공간이 넓은 것보다, 주거비용이 적게 들어간 것보다 이런 많은 기억과 함께 살 수 있어서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노인들이 자기 집을 담보로 잔여 수명 동안 생활비를 대출 받는 ‘역모기지’제도를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평생을 집을 마련하고 넓히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하고 정작 그것이 완료되었을 때에는 다시 그 집을 저당 잡혀 노후의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루는 구덩이를 파고 다음날에는 그 구덩이를 다시 메우는 노동을 반복하는 것은 최악의 형벌이다. 왜 우리는 집을 사고 다시 그 집을 파는 형벌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나라에는 약 1000만 채의 집이 있다. 나는 그 집들이 다 다르기를, 다 고유의 색깔이 있는 집이 되기를 바란다. 부디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더욱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김진애, 『이집은 누구인가』 중에서)

넓은 평수의 집, 많은 수익을 안겨다 주는 집이 더 좋은 집이 아니라 내 삶의 진정한 중심이자 가족과 벗들에게 풍요로운 교류의 공간이 될 때 더 좋은 집이 되는 것이라면 주택문제는 새로운 시야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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