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4월 2004-03-18   541

[인터뷰] 탄핵반대 릴레이카툰 참여한 강성수 만화가

병렬이만 즐겁다. 국민은 괴롭다.

2004년 3월 12일,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제껏 겪지 못한 충격을 경험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해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정치사회적으로 이미 웬만한 충격은 다 겪어본 맷집도 이번에는 도움이 되질 않았다. 국민의 뜻이고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 벌어진 쿠데타에 국민 대다수는 할 말을 잃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거리로 거리로 나왔고 사람들은 거리에서 거대한 물결을 이뤘다.

[##_1R|318-4.jpg|width=”250″ height=”44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만화가들은 약간 다른 언어로 이 물결에 동참했다. 강풀닷컴에서 지난 8일부터 ‘탄핵반대 릴레이카툰’으로 이어달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좀처럼 작업장 밖으로 나오기 힘든 이들은 카툰으로 탄핵무효를 선언하고 있다. 탄핵은 국민의 뜻이 아니라고 말이다. 5번째 주자로 ‘병렬이는 즐겁다’를 그린 강성수 만화가를 만났다. ‘강도하’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그는 ‘만화문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웹사이트 ‘악진(akzine)’ 대표이기도 하다.

‘탄핵’이라는 말을 꺼내자 그는 4년만에 다시 피우게 됐다며 담배부터 꺼내 물었다. 탄핵안이 가결되던 그날, 그는 바로 콘티를 짰다. 거리로 나가는 대신 종이를 펼쳐 든 것이다.

“사람에게 아직 동물적 직감이 남아있나봐요. 정말 불안하더라구요.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불깔고 자는 심정으로 아침 6시까지 작업하면서 지켜보다가 혹시나 못 일어날까해서 9시에 시계를 맞춰놨죠. 그래서 그 생쇼를 실시간으로 다 봤어요. 그나마 지금은 헛웃음이라도 나올 여유가 생겼지만, 그날은 너무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다들 그랬겠지만, 패닉상태였죠.”

패닉상태에서 그렸다는 그의 만화는 뜨거운 민심을 상징하는 불붙는 붉은 색이다. 만화는 한 꼬마가 너무 신나서 미친 듯이 뛰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노반장 모가지를 분질렀다는 그 기쁜 소식’은 영삼엄마와 태우아빠를 거쳐 두환할아버지에게로 전해진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조상 박정희와 일장기를 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도입부는 탄핵으로 시작되지만 시간의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뿌리를 건드려 봤어요. 하나 하나 뒤로 돌아가보면 지금 한나라당은 노태우, 전두환 그리고 박정희를 지나 친일세력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거든요.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당의 정체성 속에 수맥처럼 흐르는 것이죠. 정말 그 질김이 고래심줄 같은 거죠. 하지만 근현대사를 관통했던 그 질김도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봐요. 마지막 발악이죠.

그래도 너무 심하죠. 아무리 마지막 발악이라고 해도 국민정서를 너무 몰라요. 어느 시대의 국민인지부터 알아야죠. 국민이 소통할 수 있는 매스미디어가 지금 어느 정도의 일상성, 속도, 확장성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이죠. 그래서 그 파괴력을 짐작조차 못한 거죠. 너무 너무 둔해져버린 공룡과도 같다고 할까, 가라앉는 배라고 할까. 솔직히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니까.”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민주당의 뜬금없는 ‘국민의 뜻’ 해석에 그는 고개를 젓는다. 불쌍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아직도 사태파악을 못하고 범국민적인 촛불시위를 친노세력으로 애써 축소하려는 시도에 대해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촛불시위로 드러난 범국민적인 탄핵반대 외침을 노무현과 그 일당들로 축소시켜려는 태도가 정말 불쾌합니다. 그들은 이걸 국민 전체의 분노로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해요. 일개 개인 만화가 나부랑이도 이렇고 남녀노소 국민전체의 분노가 이렇게 깊다는 것부터 알아야 해요. 다들 보다보다보니 너무하는 군 하면서 거리로 나간 것 아닌가요. 그동안 쌓였던 분노가 폭발한 것이죠.”

그러나 국민들은 절망과 충격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역사상 수많은 고비에서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 왔던 국민들이 이번에도 스스로 일어선 것이다. 다시 ‘넥타이 부대’가 등장했다. 강성수 만화가 역시 이제 희망을 꿈꾼다.

“넥타이 부대는 현대의 ‘농민’아닌가요. 그 당시에는 평민이 농민이었으니까. 지금 시대의 농민은 넥타이 부대죠. 그들이 일어난 거잖아요.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니까 다들 거리로 나온거죠. 앞으로 달라질 거라고 봐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지금 시기에는 그런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봐요. 얼마나 구체적인 어법입니까. 중간 해설 없이도 보통 국민들이면 누구든 바로 알아들을 수 있잖아요. 그러한 구체적 대화에 비신사적으로 나온 저 양반들(한-민당)이 문제죠. 신사적으로 대화를 해서 부족한 부분은 풀면 되는 것 아닌가요. 다음에는 더 국민들에게 친절한 대통령이 나와야 할 겁니다.

국회도 마찬가지예요. 17대 국회가 시발점이 될 거라고 봐요. 앞으로 4년이 너무나 기대됩니다. 친일진상규명법으로부터 시작되겠죠. 너무나 말도 안 되는 놈들이 애국지사로 행세하고 독재자인 박정희 기념관을 만들자는 등등 이런 꼴, 안 봐도 될 거라 기대합니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이 사태를 가져온 뿌리다.

“탄핵은 무수히 많은 결과들 중 하나일 뿐이죠. 탄핵사태 하나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도대체 어떤 구조였길래 이런 황당한 결과가 나왔는지를 들여다 봐야죠. 국민들의 분노도 그동안 쌓여있던 것에 대한 폭발인 면도 있어요. 정치적으로 많은 억압이 있었잖아요. 그러한 억압의 뿌리를 추적해 봐야하는데, 지금은 탄핵과 관련된 것밖에 해석을 못하고 있죠. 물론 지금 상황이 워낙 급박하니까 그런 점도 있죠. 그래서 이 상황들이 지나고 나면 쫙 추적을 해봐야 합니다.”

강풀닷컴을 통해 연재되는 ‘탄핵반대 릴레이카툰’은 원래는 하루에 1편씩 올리자며 시작했으나, 만화가들의 뜨거운 참여로 하루에 2편씩 연재되고 있다. 독립적인 작업풍토를 가진 만화계에서는 이례적인 사태.

“다들 만화가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거예요. (웃음). 만화가라기보다는 국민으로 화가 나 있는 상황이라, 떨리는 손을 종이에 대기만 하면 바로 그림이 나오는 상황인거죠. 출퇴근 시간이 있는 직장인들은 촛불시위에 참석하는 것으로 자기발언을 하고 있잖아요. 마감이다 뭐다 작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만화가들은 만화라는 언어로 터지는 가슴을 표현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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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탄핵반대 릴레이카툰이 그냥 ‘만화도 나오네’하는 정도로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단순히 입장을 전달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러한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맥락과 이면까지 풍자할 수 있는 ‘촌철살인’ 릴레이카툰이 되기를 희망한다.

“’만화를 보니까 글쎄 이런 면도 있어’하고 나올 수 있도록 조금 더 밀도있게 그렸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신문만평을 보세요. 물론 사태를 왜곡하는 만평도 있지만, 대체로 핵심을 다루려고 하죠. 그런데 어떤 만평은 사건의 핵심은 물론 그에 대한 여러가지 시선과 뿌리까지 기분좋게 건드리기도 하거든요. 만화는 그림과 드라마라는 두가지 힘을 모두 가질 수 있으니, 그에 걸맞는 다양한 시도가 있을 겁니다.”

관련기사 : [릴레이카툰⑤] 병렬이는 즐겁다

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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