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3월 2006-03-01   1278

물 속에 잠긴 내 고향

수몰민은 누구일까? 태어난 곳이 물에 잠긴 처지이니 나도 수몰민이라 할 수 있겠지만 도시에서 살다 내려왔으니 아무래도 진짜 수몰민이라 하기에는 영 마땅치 않다. 지금도 그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댐 건설의 폭력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몰민의 아픔을 달래는 2002년 수몰마을문화제를 진행하면서 평생 살아온 고향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의 뼈아픈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수몰민은 고향에서 쫓겨나는 고통과 고향집을 팔아먹은 죄의식으로 복잡한 상처를 지니게 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수몰민은 정다운 이웃들, 눈 뜨면 늘 보이던 앞산, 오래된 골목길의 풍경, 한여름 시원한 정자나무 그늘 같은 마을 공동체의 문화를 박탈당하고 꿈속에서나 겨우 동무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모든 물건이 돈으로 환산되면서 보상금 문제로 형제들과 이웃 사이에 말 못할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이제 수몰민은 도회지 아들네로 이사 갔다 다시 고향 근처로 내려와 살거나 혹은 딸네서 죽어 주검으로 고향 산천에 묻히는 슬픈 존재로 남게 되었다.

장흥댐은 전남 서·남부 8개 시·군에 생활 및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탐진강 중·하류 지역의 홍수 피해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1997년 착공하여 2004년 완공됐다. 댐 건설로 장흥군 유치면, 부산면, 강진 옴천면 지역 679세대 2,200여 명이 수몰민이 되어 이주하기에 이르렀다. 절반 정도가 도시로 뿔뿔이 흩어졌고 나머지 절반은 가까운 읍내로 이주했거나 댐 근교에 마을을 만들어 새롭게 정착했다. 물에 잠기지 않은 산간지역도 댐 건설 여파로 떠나는 집이 더러 있어 마을이 한산하다.

황망히 고향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고향 사람들이 모일 상징적인 장소에 표지석(망향비)을 세우기 위해 몰라보게 늙어버린 노인이 되어 다시 고향을 찾고 있다. 들어보니 건강했던 사람들도 고향을 떠나 객지를 떠돌게 되면 허망하게 빨리 죽는다고 한다. 고향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 무너지면서 병들어 일찍 죽는 것이다. 농사지을 터가 모두 물 속에 잠겨버린 뒤 젊은 축에 드는 사람들은 새로운 사업에 손을 댔다가 망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누구는 술로 세월을 보내고 누구는 감옥에 들어가는 일도 생겼다.

모르는 사람들은 수몰민들이 보상 많이 받아서 도시에 나가 잘 산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것도 땅을 많이 소유했던 일부 사람들의 얘기일 뿐, 대부분 사람들은 보상금을 도회지의 자식들에게 다 나눠주고 시난고난 얹혀 사는 신세다. 하물며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오갈 데 없는 노인네들이 머무는 복지시설까지 댐 주변에 생겨난 형편이다.

이렇듯, 마을과 공동체 문화, 사람살이의 인정까지 수장해버린 댐 건설 로 수몰민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문충선장흥댐 수몰민, 장흥문화마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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