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8월 2004-08-01   1226

[회원마당] 미장원에서 마르코 폴로와 콜럼부스를 만나다

얼마 전에 미장원에 갔다가 일본에 김치를 수출하게 된 이야기를 TV로 봤습니다. 일본 유통회사의 까다로운 식품 위생규정에 맞추기 위해 공정을 개선하고, 수출 통관 시간 동안 김치 맛이 변하지 않게 하려고 포장용기를 새로 개발하고, 과정 하나하나를 수출에 적합한 것으로 바꾸기 위해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라마와 인터뷰의 교차 편집으로 엮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사람은 일본에서 거래처를 뚫기 위해 6개월을 바쳐 밤낮없이 식품회사에 찾아가 김치를 홍보하고 상대방의 요구조건을 체크했던 한 젊은 대리였습니다.

넓은 세상에 나가, 전 세계를 상대로 자기가 만든 물건을 팔고 싶어 하는 그런 꿈 많은 대리들 이야기를 좋아해요.

문득, 어릴 때 TV 방송으로 봤던 〈마르코 폴로〉 미니시리즈가 떠올랐습니다. 그걸 봤을 때가 10살 때였던가, 정말 잘 찍은 미니시리즈였지요. 마르코 폴로는 10대에 고향인 베네치아를 떠나 실크로드를 따라 원나라로 가서는 젊은 시절을 모두 거기서 보냈다고 하지요. 그 미니시리즈에서 만난 마르코 폴로에게서는 원나라에 대한 우월감이나 열등감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삼촌과 함께 장사를 하려고 원나라에 갔고, 베네치아 물건을 중동 것으로, 다시 중동 것을 원나라 것으로 바꾸어서 돈을 버는 데 목적을 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베네치아와 원나라는 가는 데에만 몇 년이 걸리는 거리였으므로 그는 금방 돌아오지 않고 오래 머무르지요. 그러다 보니 외국인이지만 원나라를 장사의 대상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생활의 일부로 보게 되고 정이 든 것 같았습니다. 그 시대의 지배층인 몽고인들도 마르코 폴로를 원나라 서쪽 변방에 사는 색목인(色目人)과 다름없이 생각해서 신뢰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황제인 쿠빌라이가 직접 마르코 폴로를 챙겨주었으니 베네치아에서는 그저 소상인인 마르코 폴로는 그런 점에서도 원나라가 참 좋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백년이 흐른 뒤, 그가 쓴 『동방견문록』은 크리스토퍼 콜럼부스 같은 사람들에게는 황금이 어디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밖에 안 읽혔지요. 콜럼부스는 그저 황금을 차지하겠다는 일념으로 배를 탑니다. 그 이후, 서인도제도를 차지한 스페인 인들에게 마야나 잉카는 그저 황금을 빼앗아 올 만한 새로운 점령지에 불과했지요. 콜럼부스 이후 오랜 시간, 범선을 탄 군인-상인들이 떼거지로 유럽 밖으로 나가 학살하는 역사가 오래 이어졌습니다.

‘마르코 폴로’는 어떨 때 ‘크리스토퍼 콜럼부스’로 변하는 걸까요. 넓은 세상으로 나가 김치를 팔고 싶은 김치 회사 대리는 어떨 때 돈만 벌 수 있다면 종업원이나 부하 직원의 인격을 무시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체불하고, 쓰레기통에 담긴 단무지 짜투래기를 만두 공장에 팔게 되는 걸까요.

전 새로운 걸 보고 싶고, 세상에 나가 대단한 일을 하고 싶고, 돈 벌어 폼 나게 살고 싶은 욕망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전 세상의 ‘마르코 폴로들’을 좋아해요. 그들의 창의력과 추진력, 적응력을 좋아해요. 그래서 때때로 그들이 ‘크리스토퍼 콜럼부스’로 바뀌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저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젊은 ‘마르코 폴로’들이 ‘콜럼부스’로 변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 둘의 차이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요.

자기가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출세할 수 있도록 한, 사회와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웃에 대한 존중감이 그 둘의 차이가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이제 그 존중감을 소비자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후진국을 포함해서 우리가 진출한 해외국가의 법규를 준수하고,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정문영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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