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2월 2004-12-01   1350

‘무시되지 않는 비주류의 길’

총선, 탄핵, 파병, 국가보안법. 돌이켜 보면 올해만큼 정신없이 보낸 해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큰 정치, 사회적 현안이 연이어 발생하고,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참여연대가 있었습니다. 각각의 사안마다 평가가 필요하겠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숨 돌릴 틈도 없이 현안들에 대응하느라 내부적으로도 많은 부담이 생겼고, 더구나 이들 사안이 정치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내·외부적 논란도 많았습니다. 참여연대가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지지하고 성원하신 분들도 계셨지만 2000년 총선시민연대부터 제기된 정권의 홍위병 논란 또한 더욱 거세졌습니다. 또 입장을 세우고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 것은 불가피하더라도 참여연대가 정치적 이슈에 너무 깊이 개입해,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국민들의 시민운동 지지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습니다. 이들 사안의 성격상 전체 시민사회운동단체들과 연대하는 사업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다 보니 독자적인 사업이 위축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모두 일리 있는 우려와 지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도 올 한해 늘 고민했던 문제입니다. 매번 어려운 선택과 결정을 해야 했고, 특히 탄핵무효운동 당시에는 이 운동이 단기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시민운동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주변에 토로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의 순간 반대의 경우를 생각했습니다. 이들 현안이 제기됐을 때 참여연대가 애매한 입장을 취하거나, 명목상 이름만 걸고 2선에 있었다면 또 다른 비판에 직면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다른 사안이긴 하지만 의약분업 당시 참여연대가 의사의 공적 중 하나가 됐던 것처럼 재벌개혁, 사회복지, 조세개혁 등 참여연대 사업 중 상당 부분이 정치적, 사회적 반대와 공격, 기득권적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이 더욱 노골화되고 거세진 것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정파간 정치적 대립이야 늘 있었던 일이지만 최근의 양상은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합니다. IMF 경제위기 이후 심화된 빈부격차는 사회, 경제적 양극화를 가속시키고 있고, 여기에 이념적, 세대적 대립과 갈등 역시 날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 시민운동은 스스로의 선택 이전에 입장을 분명히 할 것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지지 받는 탈계급적, 탈이념적, 탈정치적 시민운동이라는 90년대 시민운동의 허상이 현실에서 깨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 사안은 물론 경제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시민사회 내부의 찬반 입장은 앞으로 더욱 분명해 질 것입니다. 특히 사회, 경제적 영역은 정부나 정당 보다 시민사회 내부의 기득권적 저항에 더욱 강하게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비판을 피하려면 이들 이슈들을 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은 길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서 사회, 경제적 민주화와 개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참여연대 10주년을 맞이해 향후 참여연대 10년 운동의 방향을 세우기 위한 희망과비전위원회의 논의를 통해서도, 우리는 참여민주주의 확대 심화와 권력감시 전문화, 더불어 빈부격차 해소 등 사회경제적 개혁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활동을 참여연대의 향후 중장기 운동과제로 설정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운동은 권력감시운동과는 달리 시민사회 내부적인 정치적, 이념적, 계층적 반대와 공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수구냉전적, 사회경제적 기득권에 기초한 저항이라면 오히려 그것은 참여연대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음을 반영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창립 10주년 기념 행사에서도 밝혔듯이 참여연대는 무시되지 않는 비주류의 길을 갈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무시되는 자족적인 운동이 되지 않도록 경계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운동적 성과에 빠져 혹은 주류 사회의 견인력에 빨려 들어가 주류화되는 것을 경계할 것입니다. 무시되지 않는 비주류의 위치는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참여연대 창립 당시 설정했던 운동적·정책적 과제의 상당 부분이 이제 제도화됐거나 제도정당의 정책적 의제가 됨으로써 우리 사회의 주류적 영역으로 전환됐습니다. 정당을 포함한 주류사회의 개혁성에 참여연대의 개혁성이 포섭되는 순간 참여연대는 주류사회의 일부로 편입됨으로써 운동성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개혁이 진행됨에 따라 참여연대는 더 개혁적으로, 더 구조적인 문제로 나아가야 주류화를 피하고 변화를 추동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균형입니다. 너무 앞서나가면 과거 운동이 범했던 것처럼 국민으로부터 고립될 수 있습니다. 운동집단이 흔히 빠지는 운동적 선명성에 대한 유혹을 경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속도보다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내기 위한 다방면에 걸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동안 참여연대가 제기한 사안 중 지금은 너무나 상식처럼 되어 있는 많은 것들이 창립 당시만 하더라도 매우 생경한 것들이었지만 참여연대는 주장의 정당성에 머무르지 않고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운동의 접근법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도 작은권리 등 시민들의 생활상의 문제나 의정.사법감시 등 권력감시 영역, 정보공개 등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사업 등은 여전히 참여연대의 중요한 운동영역입니다.

10년이라는, 어찌 보면 짧은 기간 동안 참여연대는 엄청난 운동적 성과를 이뤄냈고, 이에 기반해 사회적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많은 희생과 헌신이 있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영광의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동안 참여연대가 가는 길에는 늘 사회적으로 명암이 엇갈릴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려운 고비들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참여연대 구성원 내부 합의와 공감대를 넓혀가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참여연대가 나아갈 수 있도록 회원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애정을 기대합니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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