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1월 2004-01-01   1178

[기획] <시민사회 활성화 과제와 전망> “많은 시민단체들, 아직 소득공제 대상도 아닙니다”

정부주도 무리한 육성보다 시민사회 활성화 가로막는 걸림돌부터 제거해야


소득공제 못 받는 참여연대

올 들어 참여연대에 회원으로 가입한 K씨는 연말정산에서 소득공제를 받으려고 서류를 챙기는 도중 참여연대에 내는 회비도 공제 대상이 되는지 궁금해졌다. 직접 전화로 물어본 K씨에게 그러나 참여연대 관계자가 답변해 준 내용은 “죄송합니다. 아직 참여연대는 소득공제 대상단체가 아닙니다”라는 것이었다. K씨는 깜짝 놀랐다. 종교단체에 내는 기부금, 사회복지시설이나 단체에 내는 기부금은 무조건 소득공제가 되고, 그 밖의 여러 비영리단체에 내는 기부금도 소득공제가 되는데, 왜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참여연대에 내는 회비는 안 되는 걸까?

이는 K씨 뿐 아니라 많은 시민단체 회원들이 갖는 의문이다. 소득공제 문제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려는 시민들이 부딪혀야 하는 의문들은 숱하게 많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려는데 왜 이리 까다로운 요구사항들이 많은지…. 좋은 일에 쓰기 위해 모금을 하려면 모금 행위 자체를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말로는 시민사회, 시민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법 제도는 시민들의 선한 의지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전한 시민사회가 활성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2004년도에는 시민사회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는 몇 가지 장애요소들이 반드시 정비되어야 한다.

기부금품모집규제법 폐지해야

먼저 시민사회의 모금문화, 기부문화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는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이 폐지되거나 대폭 개정되어야 한다. 6.25때 만들어진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은 당시에 우익단체들의 반강제적인 모금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그런데 이 법이 ‘금지법’에서 ‘규제법’으로 이름만 바뀐 채 지금까지 이어져오면서 시민사회의 기부문화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 기부금품모집규제법에 의하면, 모금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중앙정부나 시.도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허가요건이 제한되어 있고 절차가 까다로워 실제로는 모금허가 신청 건수가 극히 적은 실정이다. 또한 모금을 하는 단체가 쓸 수 있는 비용을 모금액의 2%로 제한해 놓고, 그 이상을 사용하면 형사처벌 하고 있다.

그러나 기부문화가 활성화된 선진국의 예를 보면 모금비용의 20% 내외를 쓰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지금의 법조항은 불가능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은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입법례를 찾기 힘든 악법이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정부가 이렇게 모금 자체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규제를 하면서도, 정작 모금한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 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감독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좋은 일에 쓴다고 모은 기부금을 유용하거나 횡령하는 사건들이 신문지상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이런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은 폐지되거나, 기부금품을 모집하는 주체가 사전에 신고를 하게 하는 신고제도로 전환되어야 한다. 또한 모집비용 등에 관한 규제도 없애야 한다. 불필요한 통제는 없애되, 사후관리는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부금 사용이 투명해져야만 건전한 기부문화 활성화도 가능한 것이다.

조세지원 여부는 공익성을 기준으로 결정

연말이면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는 회원들에게 “아직 우리 단체에 내는 기부금이나 회비에 대해서는 연말정산 시에 공제혜택을 받지 못합니다”라는 안내를 해야 한다. 사회기여 여부와는 무관하게, 세법이 ‘법인(法人)이 아닌 시민단체’의 경우에는 세제혜택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법인으로 등록되어 있는 시민단체에 낸 기부금에 대해서도 무조건 공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재정경제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시민단체들에 회비나 기부금을 내는 사람들이 전혀 공제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단체들이 회비나 기부금으로 재정을 충당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에는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공익적인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기부자에 대해서는 폭넓게 세제지원을 해 주고 있으며, 이는 시민단체가 법인이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법인화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결사체가 스스로 선택할 문제일 뿐, 국가가 법제도를 통해 불합리한 차별을 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처럼 법인화하지 않은 시민단체의 공익성이 법인보다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비영리법인 중에서도 친목도모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가 있는 반면, 법인은 아니지만 시민단체처럼 사회일반의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도 있다. 국가가 비영리조직에게 조세지원을 해 줄 당위성은 바로 비영리조직이 하는 활동의 공익성 때문이다. 즉 법인인지 아닌지에 관계없이 공익성 기준으로 기부자에 대한 조세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공익성이 인정되는 비영리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기부자에 대해서는 소득공제를 해 주는 것이 마땅하고, 이를 위해 관련 세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시민사회 발전 장애요소 제거가 우선

비영리법인 설립 과정에서 행정관청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는 공익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세력이나 사람은 음성적인 로비를 통해 쉽게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는 반면, 진정으로 사회공익을 위해 기여하고자 하는 세력이나 사람은 비영리법인 설립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설립허가 절차가 공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담당공무원들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되는 경우들도 허다하다.

따라서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비영리법인을 쉽게 설립할 수 있도록 비영리법인 설립요건을 정식.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일본에서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변화다. 일본에서 제정된 ‘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에서는 비영리법인(이하 NPO법인) 설립절차를 간소화해서, 많은 NPO법인들이 설립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이런 NPO법인들은 복지, 환경,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비영리활동들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비영리공익단체들에 대한 공공요금(우편요금, 전화요금, 인터넷 요금) 감면 등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일들은 하나둘이 아니다. 건전한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해서는 우선 정부가 관변단체에 주는 각종 특혜를 없애고, 시민사회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정부도 국무총리 산하에 자문기구로 시민사회발전위원회를 발족시켜 이러한 과제들에 대한 검토를 시작한다고 한다. 앞으로 발전위원회에서 좋은 결과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그러나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시민사회를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요소들을 제거’하는 일임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시민사회는 정부가 육성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시민사회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승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