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4월 2013-04-05   3727

[통인] 탐라 화가 강요배, 은하수를 붙잡다

 

탐라 화가 강요배,
은하수를 붙잡다

 

송윤정     

사진 이길훈

 

동백꽃 지고 유채꽃 피는 제주에서 강요배 화백을 만났다. 그는 제주의 자연, 제주 사람, 그리고 제주4.3항쟁을 그리는 제주의 화가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 이는 서울에서 이십 년을 보내고 나이 마흔에 귀향하여 올해로 스물두 해째 살고 있다. 인터뷰는 화가의 작업실, 귀덕화사歸德畵舍에서 이루어졌다. 제주 한림읍 귀덕리의 걸출한 풍광 속에 담쟁이 덩굴에 덮여 고즈넉이 자리 잡은 그의 작업 공간은 단출했다.  

 

강요배 화백

 

귀덕화사에서 시간을 얼마나 보내세요? 

아침에 출근하고, 밤에는 집에 가서 자고. 시골이라 저녁이나 밤에 캄캄하잖아요. 그럼 사람도 맞춰 가게 돼요. 자연스럽게. 

 

손님들이 많이 오나요? 

뭐 그런 정도는 안 돼요. 나 혼자만 그냥 이렇게 있고. 바둑 두는 친구나 가끔 오죠. 나이 들고 그러면 맨날 같이 어울리고 그런 거 못 해. 시골이고. 여기까진 올 생각을 잘 안 해.

 

사람들 많이 못 오게 하려고 여기 터를 잡으신 것도?

예. 그런 것도 있어요. 나도 저 가까이 살 때는 매일 어울리다시피 했는데. 참 사람이란 게, 그렇게 해서 되기도 하지만은, 오히려 서로 왕래하면 예술 작품이 안 나올 수 있어요. 혼자 놀아야 돼. 너무 그 안에 말려들면은요, 그 안에 자기 고집, 독립성, 끼 같은 것도 잃어버려요. 

 

제주에서 나고 자라셨던데, 제주에서 보낸 유년 시절이 어떠셨어요? 

굉장히 강렬한 기억이예요. 그 당시 제주의 집은 거의 아주 옛날 사진에나 나오는 초가집이었어요. 자연이 있는 그대로 보이고 바람도 더 강하게 느껴졌어요. 관덕정 중심으로 2km 반경 안에 제주시가 딱 들어있고, 그 밖에는 전선도 없는 시골이었어요. 고1 때까지도 호롱불 밑에서 공부했어요. 여기도 지금 유채밭이 있지만 이거는 게임도 안 돼. 전 벌판이 유채였어. 상상해보세요. 그 노오란 거에 반은 보리밭. 

 

화백의 마음속에는 이미 그림이 첩첩이 들어 있었다. 그것들은 화백의 손을 지나 강렬한 색감, 그리고 거친 붓질로 화폭에 옮겨진다.  

 

풍경을 우려내다

 

그런데 어떻게 20년이나 서울에 계셨어요? 

대학을 가야하니까 물 건너 간 건데, 매연, 소음, 만원 버스, 공사판……, 서울이 안 맞았고, 제주에는 멋이 있고. 그냥 내려와버렸어요. 아, 20년이란 세월은 학교와 군대 마치니 7, 8년 지나가고, 교사 생활 6년 하고. 그리고 이것저것 하면서 생활의 기초를 잡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어요. 

 

화가가 멸치와 고추장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권한다. 보통 사람 인터뷰어로서는 예술가에게 평소 묻기 힘든 것들을 맘껏 쏟아내기 좋은 기회였다. 

 

최근에 어떤 작업을 하세요? 

요새는 주로 이렇게 자연 풍경 같은 걸 주로 다루죠. 

 

어떻게 작업하시는지 궁금해요.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를 어떻게 결정하시나요? 

자연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더라도,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자기가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중요한 그 느낌만 가지고 있지, 설사 자기 고향이라도 아직 소화가 덜 된 상태거든요. 지금도 하고 있는데 앞으로 10여 년 동안은 자연 자체를 탐사하면서 공부하는 과정이에요. 이런 걸 계속 하다보면, 보이는 걸 넘어서는 중요한 부분들을 뽑아내게 돼요. 본 것을 마음속에 넣어놨다가, 3년이고 7년이고 지난 다음에 적당할 때 끄집어내서 다시 해보곤 해요. 새롭게 풍경을 우려낸다고나 할까? 그거 뭐 10여 년 정도 하면은요, ‘아, 이거는 큰 문제가 아니다’ 대략 이치를 알게 되거든요? 세부적인 것보다는 풍경을 이루는 어떤 중요한 거, 그거를 취하게 되고요.

 

그림 그릴 때 행복하세요? 그러니까 창작하는 기쁨 같은 거랄지? 

그걸 어떻게 말해야 되지?……. 뭔가 구상을 하고 ‘아, 이거 해볼만하다’ 하는 의욕이 생기면 (작품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하죠. 그런데 다 예상대로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면 당황을 좀 하죠. 생각보다 어려울 때도 있고. 그럴 때는 낭패감 같은 것도 느끼고. 그러다가 어느 정도 ‘아, 괜찮다!’는 상태가 되면 그걸로 (작품) 하나를 만든 것이고요. 그런데 최상의 것은 안 나와요. 항상 마음에는 안 차요. 그렇다 해도 내가 막걸리도 마시고 사랑하는 사람하고 이야기도 하고 독서도 하고 여러 가지로 시간을 보내는데, 작품을 하는 것이 제일 보람돼요. 무엇보다도요. 그것이 누적되다보면 ‘내가 허깨비는 아니로구나’ 하는 증명을 스스로에게 해줘요. 작품이 내 삶의 가장 강력한 증거 자료가 되는 것이죠. 

 

화백께서는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답하는 과정이라고 봐요. ‘예술은 사회에 꼭 기여해야 한다’든가 이런 거보다도요. 오히려 그냥 자기 혼자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확인하고, 그걸 제대로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봐요. 그것도 어렵거든요, 사람한테는. 그런데 나를 알려면 나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게 저에겐 고향의 역사였어요. 

 

강요배 작, 젖먹이
강요배 작, 젖먹이

 

제주 4.3항쟁과 <동백꽃 지다> 연작

 

화백은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제주4.3사건을 주제로 50점의 그림을 그렸다. <동백꽃 지다> 연작이 그것이다. 이들 연작은 제주4.3사건을 겪은 이들의 증언과 이를 토대로 한 화백의 그림을 엮어 시간 순으로 전개되는 한 권의 책으로 1998년 출간되었다. 

 

4.3사건에 대한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서른여덟 살에 몸이 안 좋아서 치료하면서 ‘내가 우선순위로 작업을 해야 될 것이 뭔가’를 고민했어요. 첫 번째가 4.3사건이었어요. 자신이 없어서 자꾸 미뤄뒀던 건데, ‘만약에 시간이 없다면 그걸 언제 자신감 가져서 할 건가’, 그래서 좀 무리하게 시작한 거예요. 근데 그런 것들도 집요한 증언 채록 작업들, 그런 지루한 편린적인 것들이 있고나서 화려한 예술의 옷을 입고 나올 수 있어요. 기초 지식 없이 사실도 아닌 걸 엮으면 허황된 얘기가 돼버릴 수도 있어요. 당시가 4.3사건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증언집이 막 나오기 시작할 때예요. 1987년부터 2~3년 동안 자료를 통해 나름대로 전개 과정을 정리한 다음에 장면들을 나눠서 그렸어요. 저 혼자 한 게 아니라 자료들을 참고해서 그림으로 그렸다 뿐이죠. 사실 그림 50컷으로 무슨 얘길 할 수 있겠어요? 충분히 제대로 됐다고 말할 순 없죠. 그러니까 이렇게 정의하면 좋아요. <동백꽃 지다>는 강요배가 자기 고향의 역사를 공부한 결과를 보고한 보고서예요. 한 개인으로서, 내 고향 출신으로서, 내 눈에 보인 만큼만, 내가 이해한 만큼만 그렸어요. 

 

화백은 겸손하고 또 자신의 작업에 엄격했다. 『동백꽃 지다』 출판본의 머리말에서 그는 “아직도 나는 4.3을 채 모른다. 내 상상력은 체험의 진실성 앞에 무릎을 구부린다”고 썼다.

 

4.3을 주제로 한 작업을 하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쳐 작업을 마무리한 뒤 귀향하셨다고 들었어요. 

호흡을 잔잔하게 계속 가져갈 수가 없었어요. 이런 그림을 그리려면 마음속으로 그 사람이 돼봐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면 상당히 괴로워요. 울적해지기도 하고……. 그런 마음고생이 남았던 거죠. 

 

요즘 제주 젊은 사람들이 4.3에 대해서 관심이 있을까요? 

없을 걸요? 꼭 하라는 법도 없어요. 나도 서른여덟 살 때부터 했어요. 그런데 어느 정도 인생을 살다보면 사회와 역사에 눈이 뜨이고,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자연히 궁금해지는 시기가 있어요. 

동백꽃 지다에서 강 화백님은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 그리고 잔혹하게 폭압하는 사람들 모두를 그리셨어요. 그런 상황을 보면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 의문이 가지 않을까요? 

참 어렵고, 어렵네요……. 사람을,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면 안 된다고 봐요. 그것이 설사 악마라고 보일지라도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이 없을까, 계속 노력을 해야 된다고 봐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그 잔혹성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예요. 인간이 어떻게까지 될 수 있는지……, 쉽게 해석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에는 아우슈비츠 고문생존자들이나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전범 재판 기록 같은 걸 통해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의 여러 가지 입장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모두에게 이유가 있고 삶이 있더라고요. 그 사람들(가해자들)은 나름대로 다 당당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찌 보면 불쌍한 걸 수도 있어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순간 자기 파괴가 일어나니까……. 가해 체험이나 피해 체험이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체험을 했던 사람들은 그것을 명확히 해명해내지 못 해요. 상처 때문에. 생각하기도 싫고, 그냥 저주하고 증오하죠. 반면, 체험을 안 한 사람들은 (체험을 안했기 때문에) 그려낼 수가 없고. 인간을 이해하는데 미지의 영역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제주말에 담긴 풍경

 

답을 마친 화가는 조금 쉬었다 하자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마음이 무거워졌을 그에게 제주말(제주 방언)을 몇 가지 알려달라 청했다. 제주말에 대한 그의 애정은 그림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각별했다. 화가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마치 캔버스에 붓을 놀리듯 제주의 언어에 깃든 시각적 이미지들을 현란하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언어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그럼요. 내 그림 중에 제주말로만 한 것도 있고. 예를 들면 <뒈싸진 바당>은 굳이 해석하자면 ‘뒤집힌 바다’라는 뜻인데, 이런 거는 제주도만의 독특한 언어예요. 태풍이나 큰 바람이 불면 바다가 그냥 허~옇게 되는데 이거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가 없으니까 그림 제목을 그냥 <뒈싸진 바당>이라고 했죠. 뱅듸는 달 뜨는 언덕(월평   月坪)이라는 뜻인데, 그게 마을 이름이 됐어요. 이거 풍경이 하나 나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이 풍경에 제목을 뭐라고 붙여야 됩니까. ‘뱅듸’라고 하는게 아주 정확한 거죠. 

 

화가는 ‘말을 가만히 음미하다 보면 새로운 풍경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옛날 어른들이 했던 말은 상당히 그 미학적이야. 그러니까 시선이 다르잖아요, 우리하고. 랜드마크를 보는 방법이 달라요. ‘한라산’ 하면은 그 ‘한’은 ‘은하수 한’ 자거든요? ‘라’는 ‘손 벌려서 붙잡는다’는 거고. 은하수를 손으로 이렇~게 잡는 산이라는 거지. 완전히 환타지지. 하하하! 7, 8년 전일인데, 거기(한라산)에 텐트를 치고 밤을 샜어요. 새벽에 고원에서 달이 탁~ 별이 쏴악~ 거기서 스케치도 하고……. 그러니까 말이, 한자말도 그렇고 순우리말도 그렇고 여러 가지 음미해볼만한 거예요. 

 

강요배 화백

 

2011년 6월 제주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강정마을회를 위한 기금 마련 전시회’에 ‘달 실은 배’라는 작품을 출품하셨던 걸로 아는데,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부가 접근하는 방법이 잘못됐어요. 강정마을 주민들 뿐 아니라 도민들한테, 나라 사람들한테 설명이 제대로 안 되잖아요. 우리 어릴 때 제주시 산지항(제주항)에 제1부두부터 제7부두까지 만날 해군이니 크루즈니 정박해 있었어요. 근데 거길 놔두고 왜 하필 강정에 해야 된다는 건지, 그것도 충분히 설명이 안되고. 또 반민주적인 방법으로 마을 사람들을 갈라놓고……. 그렇게 하는 거는 옳지 않은 거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계획 같은 것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좀 더 단순하고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해요. 자유라는 건 예술 속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수월하게 되는 그런 건데, 어렵네요. 좀 더 쉽고 편하게, 중요한 부분들은 좀 드러나고 좀 더 간단명료해졌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표현이. 이제 인생 후반부를 살아야 될 판인데, 여전히 해나가는 과정이예요. 

 

 

귀덕화사 앞마당은 유채의 노랗고 푸른 빛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느 핸가 물이 범람하더니 그 뒤로 봄이면 유채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단다. 유채꽃처럼 강렬한 그의 그림들은 자연과 인간사의 이치에 도달하기 위한 화가 자신의  오랜 사색이 우러나고 넘쳐난 결과물일 터다. 그의 작품으로부터 은하수를 손으로 붙잡는 듯 자유롭고도 명료한, 강렬하고도 편안한 감동이 전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시 소개

강요배 화백의 개인전이 3월 27일부터 4월 21일까지,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작가가 제주 귀덕리에 정주하며 심혈을 기울인 근 5년간의 작품들과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드로잉 10여 점을 전시한다. 제주의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현실과 청풍월해의 장면 장면을 불러들여 신화·전설·역사를 되묻고 다시 그 내부에 쌓인 수천수만의 삶의 호흡과 결을 어루만지는 화백의 세계를 만날 기회다. 

 

송윤정 

참여연대 간사, 참여사회 편집자, 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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