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4월 2013-04-05   3490

[역사] 과거 속 북한 땅과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과거 속 북한 땅과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일러스트 박정진

 

평화가 목마른 계절이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되자마자 북으로부터 날아든 전쟁 불사라는 결기에 찬 외침이 따스한 봄날을 얼어붙게 한다. 이렇게 남북의 권력이 분단을 빌미로 적대적 공존을 꾀하며 분단의 장벽을 쌓아 올렸던 긴 세월 동안 군사분계선 이북의 땅과 그 곳에 사는 사람에 대한 기억상실증이 점차 깊어지고 있다. 분단 의식의 골이 무척이나 깊다.

 

 

한강 유역에 고구려 박물관을 짓는다?

 

고구려 역사의 중심 공간은 중국 동북지방(만주)과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 지역이다. 만일 고구려 박물관을 짓는다면 다수의 유적과 유물이 존재하는 그곳 어딘가에 세워야 한다. 지금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고구려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 개관을 목적으로 아차산의 고구려 유적 인근에 세울 예정이다. 중국의 동북 공정에 대응하고 남북한 통일 시대에 대비하려면 고구려 문화재를 전담하여 연구하고 전시할 박물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또한 국립경주박물관이 신라, 국립부여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이 백제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니, 이참에 고구려 박물관을 세워 삼국시대를 상징하는 박물관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고구려 박물관을 채울 만한 유적이나 유물이 충분하지 않다는 반론에도 불구하고, 세계 박물관계의 새로운 추세라는 가상박물관Virtual Museum을 가미하면서까지 기어이 추진할 모양새다.

 

한강 유역에 국립으로 고구려 박물관을 세운다는 발상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적 정통성을 잇는 유일한 계승자임을 선포하는 정치 행위다. 한반도를 공간으로 한 민족사를 한국사라 이름하고 그로부터 남북통일의 당위성을 끌어내오던 역사 상식에 반하는, 말하자면 분단의식에서 발원한 퍼포먼스인 것이다. 

 

 

남한 경상도인만이 한국인의 조상?

 

최근 가장 각광받는 역사 분야가 바로 생활문화사다. 특히 조선시대 생활문화의 역사가 다각도에서 조명 받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를 지역 기반으로 하던 조선시대의 생활문화사 안에 북한 지역과 사람의 과거는 없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통상적인 질문을 좀 더 진실에 부합하는 표현으로 바꾸면 이렇다. ‘오늘날 남한 지역 조상들은 조선시대에 어떻게 살았을까’ 생활문화사에서 북한의 땅과 사람이 사라진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북한 지역은 접근 불가하니 유물, 유적 답사는 물론 구술조차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생활문화사도 분단의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 홍경래의 난이 일어날 만큼 조선시대에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는 극심한 차별을 받던 지역이라 기록 자료가 상대적으로 빈곤하다.

 

문제는 우리가 생활문화사를 쓰고 읽으며 그것이 반쪽짜리 복원에 그칠 수 있다는 한계를 의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분단이 이제는 의식을 넘어 무의식의 세계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조선시대의 역사적 정통성 역시 남한 지역에 둥지를 튼 대한민국이 계승한 것으로 보는 분단 의식이 우리 안에 깊이 내재화되고 있는 것이다. 

 

생활문화사에는 남북만이 아니라 동서간 지역 차별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경상도의 경우, 일찍부터 고문서 수집에 나서 양반들의 개인 문서가 발굴되어 각광을 받았고 생활문화사 복원의 핵심 자료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전라도의 경우는 이제야 체계적인 고문서 수집을 위한 기관 설립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확히 말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 생활문화사는 오늘날 남한 경상도인의 조상의 삶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해마다 3월 1일이 되면 전국적으로 3.1운동을 기념하거나 재현하는 행사가 펼쳐진다.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치루는 행사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1919년 3월 1일 한반도 전체가 독립만세의 함성으로 가득했던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3.1운동 당시 선도적으로 시위에 나서고 그로 인한 피해가 컸던 지역은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즉 북한 지역이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동시에 만세 시위를 벌인 개성, 평양, 진남포, 안주, 선천, 의주, 원산, 함흥 등은 모두 북한 지역에 위치한 도시들이다. 그날 이후에도 3.1운동을 주도한 천도교인과 기독교인 대부분이 살고 있던 북한 지역에서 대규모의 조직적이고도 격렬한 시위가 빈번히 일어났다. 그렇게 북한 지역을 휩쓴 만세 시위의 물결이 3월 중순을 넘어가면서 차츰 남한 지역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던 것이다.  

 

북한 지역 3.1운동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남한 지역에서 지자체가 나서 발굴한 낱낱의 시위 흔적들이 ‘경쟁적으로’ 부각되면서 3.1운동을 선도한 북한 지역과 북한 사람의 궤적은 왜소화시키거나 망각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의도하지 않는 왜곡은 3.1운동으로부터 발원하는 민족운동 정통성의 계승자 역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라는 분단 의식의 공고화로 귀결되고 만다.   

 

 

우리 안의 분단 의식은 과거 한반도라는 공간 안에서 함께 살면서 역사의 날실과 씨실을 엮어왔던 반쪽, 북한 땅과 북한 사람을 역사 안에서 지우는 행위, 즉 의도하지 않는 왜곡을 낳고 있다. 이는 곧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사적 전망을 포기하고 오늘날의 대한민국만을 역사적 정통성의 계승자로 인정하는 셈인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노래하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우린 지금 정말 통일을 바라고 있는 걸까? 

 

 

김정인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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