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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17년 05월
  • 2017.05.02
  • 3152

특집 4 _ 노인은 없다

 

세대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

 

 

글. 민선영 20대 / 맹행일 70대

 

 

 

청년의 이야기
시선이 갈 곳을 잃는다. 굽어 있던 허리와 목이 빳빳하게 세워진다. 양쪽 어깨가 사이좋게 모이기 시작한다. 두 손은 가지런히 배꼽 위에 자리를 잡는다. 웃어른을 만났을 때의 내 모습이다. 머릿속은 이미 엉망진창이다. ‘인사는 어떻게 드릴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너무 웃으면 실없다고 생각하실 텐데’, ‘그렇다고 표정이 굳으면 안 돼’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이미 ‘이 자리는 어떻게 정리하고 도망가지?’ 하는 궁리로 이어진다. 이때 누군가의 적절한 개입으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러지 못했을 때, 의도치 않았던 대화는 일상적인 안부로 시작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안부가 불편하다. 나의 요즘이 어떤가를 나누는 자리가 아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해야 하는 대화가 불편하다. 잔소리에도 생애주기가 있다. 10대에는 어느 대학에 갈 것인지, 20대에는 어디에 취직을 했는지, 30대에는 결혼은 언제 하고 아이는 언제 낳을 것인지 등이 그렇다. 자연스러운 생애를 살지 않는 자에게 이런 생애주기적 질문을 던지는 순간, 질문은 안부가 아닌 잔소리가 된다.


이 생애주기적 잔소리에는 억겁의 시간이 담겨 있다. 우리 엄마,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의 세월이 담겨 있다. 어느 순간부터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이 당연해지고,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교에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고, 그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려 토끼 같은 자식들과 보통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삶. 어쩌면 당신들의 삶이 그랬을 것이다. 하물며 당신은 그렇게 살지 못했더라도 저 자연스러워 보이는 삶이 행복해보였을 것이다. 행복하지 못한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에서 잔소리가 나오는 게 아닐까.


그러나 행복의 기준이 많이 달라졌다. 아니, 삶의 기준이 많이 달라졌다. 입시도, 취직도, 결혼도, 출산도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하기 힘들다. 그동안 제 나이가 되면 당연하게 할 줄 알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아졌다. 그래도 나는 엄마, 아빠만큼은 살아야겠다 싶어서 부단히 애도 써봤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희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세대는 내일의 행복이 아닌 지금의 행복을 우선해서 사는 최초의 세대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청년들을 좋게 말하면 개인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기적인 세대라고 말한다. 더 이상 웃어른의 지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예의 없는 세대라고도 말한다. 때로는 이기적이고 남 얘기 듣지 않고 살아야 살만한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삶이 많이 불편했다고 토로하고 싶기도 하다. 곤란한 일이 닥쳤을 땐 속 편하게 해답을 구하고 싶다고, 웃어른의 삶 이야기를 들으며 기분 좋은 내 미래를 상상하고 싶다고.


그 어느 때보다 서먹한 청년과 중년, 노년이 된 요즘. 피하고 싶은 대화가 아닌 이어나가고 싶은 대화를 위해서 첫 질문을 바꿔보자. ‘하고 싶은 공부는 무엇이니’,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니’ 같은 질문을 하자. 그동안 역할놀이를 하며 살아왔던 우리도 멀쩡한 연기를 하느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솔직한 진심을 털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나이에 맞는 역할에 대한 강요가 아닌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묻는 것에서 서로의 존재에 대한 애정이 생겨난다. 질문이 서툴러도 좋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방법을 서투르게나마 익혀갈 때부터 시작된다고 믿으니까.

 

월간 참여사회 2017년 5월호(통권 245호)

노인의 이야기
올해 76세인 나는 일제강점기에 충청도 아산의 한적한 마을에서 자랐다. 농업이 거의 유일한 산업이었고, 가난한 살림 때문에 옷은 기워 입고 밥 굶는 것이 일상이었다. 못살아도 공동체 문화가 있어 인심은 푸근했다. 한국전쟁 때 고향으로 피난 온 피난민들을 마을 주민이 따뜻하게 돌봐주었고, 우리 6남매도 마을 어른들의 배려로 탈 없이 자랐다. 누나들은 구로공단에서 저임금을 받아 동생 학자금으로 보내주었다. 남자들은 두레를 조직하여 농사일을 같이 하고,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치렀다. 어린이들의 놀이도 자치기나 소꿉놀이 같은 집단 놀이가 주류였다. 서당의 훈장이나 마을의 어른은 전승되어온 향약을 기초로 마을 일을 처리하니 마을에는 범죄가 없고 풍기가 단정했다. 큰댁에 모신 사당에 조상님께 정해진 예를 드렸다. 


요즘은 어떤가. 불과 반세기 만에 농업국가가 산업국가로 탈바꿈하여 농업의 비중이 2~3%에 불과하다. 세계 경제규모 11위의 잘 사는 나라가 되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다. 멀쩡한 옷을 버리고 유행이라고 찢어서 입기도 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이나 멀쩡한 가구 같은 가정용품도 버려진다.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젊은 남녀가 진한 애정표현을 예사로 하고, 기르기 어렵다고 아이는 아예 낳으려고 하지 않는다. 평균 수명은 40세에서 80세로 급속히 늘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체제는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로 바뀌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보급률은 세계 최고다.


이집트 피라미드 안의 유물에도 세대 차이를 한탄하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한 시대를 같이 사는 사람들이 나이에 따라 어떤 문화나 가치관의 차이를 보이는 것을 세대 차이라고 한다면, 그 차이는 나이 자체보다 경험이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경험한 조부모 세대, 군사독재와 산업화를 경험한 부모 세대, 그리고 풍요와 정보화를 누리고 있는 젊은이 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국제결혼이 일반화되었고, 국내 거주 외국인이 170만 명에 이른다. 한 세대가 과거 수세기에 해당하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으니, ‘쌍둥이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한국사의 첫 왕조 고조선은 기원전 108년에 중국 한나라에게 망하고 그 땅에 한사군이 설치된다. 그 결과 철기 사용을 비롯한 선진 문화가 유입되어 급격한 사회 변화가 일어나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범죄가 늘어나 고조선의 형법인 범금8조가 60여 조로 늘었다고 한다. 한 사회가 통합을 이루려면 사회 갈등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세대 차이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가 아닌 나의 소견으로는 ‘역지사지’와 ‘시민단체 활성화를 통한 공동체문화 회복’이 중요할 듯하다. 


먼저 나이 든 어른들이 혼자 사는 젊은이들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경공업은 전부 해외로 이전하고 남아있는 공장에서는 로봇이 상품을 생산한다. 눈높이를 낮추어 취직하고 아기를 낳고 싶어도 못하는 처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가난발생 원인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노인들은 노력부족이라는 응답이 50%로 나온 반면, 젊은이들은 사회구조라고 답한 비율이 65%나 된다고 한다. 60~70년대와 달리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옛날에는 이웃집 부엌에 숟가락 개수도 알고 살았다는데, 요즘은 한 아파트 주민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눈을 마주치면 외면한다. 많은 노인들이 ‘못 살아도 그때가 좋았다’라고 회고하는 것은 그때의 인간관계를 떠올리며 하는 얘기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공동체문화를 무력하게 만들고 개인의 각자도생을 강요한다. 오직 힘만이 정의가 되는 이 사회에 대한 우리의 손쉬운 대응은 관변단체가 아닌 건전한 시민단체에 가입하는 것이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 노인은 젊어지고 젊은이는 성숙하게 된다. 그리고 덤으로 보람 있고 활기차게 사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특집. 노인은 없다 2017-5월호 월간 참여사회
1. '태극기 노인'의 탄생 
2. 가난한 노인들의 나라
3. 노인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나
4. 세대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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