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7월 2010-07-01   5392

동화 읽기- 현실 속 ‘종이 봉지 공주’를 기다리며




종이 봉지 공주


『종이 봉지 공주』, 로버트 문치 글, 마이클 마첸코 그림, 김태희 옮김/ 비룡소




주진우
『참여사회』 편집위원, 평화박물관 사무처장


동화속 공주는 계략에 빠져 잠들었다가 백마 타고 온 왕자의 키스로 깨어나거나, 온갖 고통과 수모를 당하다가 왕자와 결혼한다. 공주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동화들은 아이들에게 실현되지 않을, 그리고 타락하고야 말 꿈을 대신 꾸어준다. 타락은 뭔가? 불가능한 그것을 기어이 실현하려고 할 때 발생한다. 외모와 학벌 같은 조건들을 갖추고 금마(金馬)탄 왕자를 기다리는 일 말이다. 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로망만이 문제는 아니다. 그러한 로망을 내면화하도록 만들어져 온 오랜 사회적 관습과 그것을 계속 재생산하는 문화가 문제라는 건, 너무 많이 얘기 되어서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동화속 공주 얘기는 지금도 다수의 TV 멜로드라마들로 반복 변주된다. 공주가 아니라 서민이나 무수리로 출발하고, 과정에서 덜 수동적인 캐릭터로 변신을 꾀하지만 결국은 언제 ‘왕자’(남자)와 맺어질 것인가가 많은 시청자의 관심 대상이 된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면서 동시에 풍부한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여성상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한탄 아닌 한탄을 하다가 의외의 곳에서 매력적인 여자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종이 봉지 공주』는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다. 이야기도 그림도 심각하지 않고 유쾌하다. 왕자와 공주 이야기이지만 이상하다. 공주는 첫 장면에서만 그나마 공주다운 옷을 입고 있지만, 그 다음부터 끝 장면까지 머리카락은 불에 그을리고 몸은 재가 거뭇하게 묻은 채, 종이 봉지만 겨우 걸친 모습으로 등장한다. 반면에 왕자는 몸에 달라붙는 세련되고 고급스런 운동복에 테니스 라켓을 든 모습으로 차라리 재벌 2세에 가까운 외모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



왕자와 결혼할 예정인 공주 아이가 있다. 어느 날 용이 나타나서 성을 불태우고는 왕자를 잡아간다. 옷까지 타버린 공주는 길거리에서 종이봉지를 주워 입고 왕자를 잡아간 용을 찾아 나선다. 공주는 용의 만용을 이용해 지쳐 잠들게 하고 왕자를 구한다. 그러나 막상 왕자는 공주의 지저분한 꼴을 보고 타박을 하며 예쁜 옷을 입고 오라고 말한다. 공주는 “넌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야!”라고 외치며 왕자를 떠난다.

얼마나 통쾌한가. 이 책이 주는 통쾌함은 온갖 못된 짓을 하던 악당을 몰아내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전복적 상상력에서 온다. 악당(용)을 물리치는 것은 남자 아이가 아니라 여자 아이이다. 물리치는 방법도 남성-용의 힘과 과시욕을 역이용하는 여성의 지혜이다. 어려움을 이겨내고도 종이봉지 공주는 남자와 결혼하지 않는다. 공주가 혼자 두 팔을 벌리고 춤을 추며 용의 성을 나서는 마지막 장면에서 쾌감은 절정에 달한다.


가부장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한 성역할에 대한 비판은 우리 사회에 강력하고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혹은 몇 세대 정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TV의 한 개그 프로그램이 찌질하게 풍자하는 것처럼 ‘남성인권보장위원회’가 진짜 생길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하는 남성들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컸을 때 이 이야기는 특별히 통쾌하지도 전복적이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 아이들(특히 여자아이들)이 자라날 환경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성을 폐허로 만들 사나운 용이 있어서가 아니라, ‘공주다운’ 옷을 입고 왕자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좀 나아지고 있고 심지어 관계의 권력관계가 역전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하나의 착시이고, 어디선가 그 착시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 오늘 날 ‘공주다운 옷’은 외모와 커리어로 치환되어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이들에게 청혼하는 ‘왕자’들은 오늘날 돈과 권력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결혼정보회사를 중심으로 하는 ‘결혼 시장’에서의 ‘거래 조건’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본다면, 오늘날 왕자-공주 역할은 더욱 체계적이고 빈틈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전복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자기실현을 제쳐두고 고정된 성역할에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혀야 하는 많은 이들에게 주는 통쾌한 위안 하나로도 말이다. 그러나 난 정말 마음이 아프다. 동화(동화읽기)가 끝나고 책 바깥으로 나온 여자아이들은 자라면서 만나는 세상으로부터 매 순간 배반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성역할에 ‘똥침’을 날리기란 동화책속 이야기보다 훨씬 어렵다. 성역할에서의 ‘쿨’함은 일종의 트렌드가 된지 꽤 되었지만 그것은 여전히 철없는 젊은 날의 멋부림일 뿐 삶의 태도로까지 되기에는 너무나 위험하다, 고 생각하게 된다. 현실에서 ‘쿨함=나쁜 여자’가 되는 상황을 참아내기도 쉽지 않다.




결국 두 가지 문제가 남는다. 하나는 ‘행복’의 문제이다. ‘종이 봉지 공주’가 조롱하는 기존의 성역할 관습은 ‘여성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행복해지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현실의 해답이었기 때문이다. 이 지면에서 ‘행복론’을 더 전개할 여유는 없지만, 한 가지는 얘기하고 싶다. 통쾌함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지만, ‘공주’가 되기 위해 전전긍긍하면서 사는 것도 결코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 ‘주체적인 존재’로 살면서 풍부한 인간관계를 염원하는 일, 행복은 그 언저리에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좀 예민한 문제이다. 그러면 현실을 누가 바꿀 것인가. 물론 여성과 남성이 함께 바꿔야 한다는 게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내 주변의 남성들의 반응에는 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좋은 책이군, 한마디 하고는 당최 말이 없는 것이다. 내가 얘기를 들어본 사람 중에서 구체적인 반응을 보인 유일한 남자는 우리 아이이다. “내가 왕자라면 난 그래도 ’종이 봉주 공주‘와 결혼할거야.”라고 얘기했지만, 컴퓨터 게임을 막 시작하려는 순간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다지 열광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여성들이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과는 확연히 비교가 된다. 남자 아이들은 여전히 ’막강한 전투력‘으로 악당을 물리치는 대리만족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책은 내가 일하는 평화박물관이 진행하는 ‘어린이 평화책 순회 전시회’에서 선정한 평화책 가운데 하나이다. 이 전시회에는 36개의 서랍에 평화책 내용과 관련된 소품들이 들어가 있어서 아이들이 꺼내보고 만져보고 할 수 있는 서랍장이 책과 함께 전시된다. 그 중 한 서랍에 종이 쇼핑백으로 만든 종이 옷이 들어가 있다. 이 옷을 입고 사진 찍는 아이들의 웃음이 환하다. 부디 전시장 밖에서도 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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