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5월 1999-05-01   1252

미술가 서동화의 아름다운 비행

손수 만든 비행기로 하늘을 날다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인터체인지에서 이천 방향으로 11킬로미터. 수광 저수지쪽으로 2.3킬로미터.’ 자신이 손수 만든 비행기로 하늘을 나는 조각가라는 설명만 듣고 건 전화에서 그가 들려준 ‘정확한’ 설명에 빙그레 웃음이 머금어졌다. ‘한 서너 시쯤 만나자’거나 ‘두서너 개만 들고 오라’는 식의 어법에 익숙한 우리들의 관념에 그의 딱 떨어지는 안내가 신선하고 낯설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만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룬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정작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실제로 노력해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좀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어린 시절, 높은 나무 위나 축대 같은 곳에서 땅을 향해 뛰어내리면서 짧은 순간이나마 창공을 나는 짜릿한 쾌감을 맛보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그 무모한 도전은 견고한 땅바닥에 몸을 부딪치면서 고통스러운 결론에 도달하곤 했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일은 쉽지 않다.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잠시도 숨돌릴 틈없이 개인의 의식을 난도질하며 각박하게 생존의 현장으로 내모는 난폭한 현실은 우리를 ‘날고 싶다’는 식의 낭만적인 꿈을 계속 품고 있게 용납하지도 않을 것이다. 미술가 서동화가 어렵사리 자기 손으로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난 것은 우리들의 시들어버린 꿈을 대리 충족시켜준 시원하고 신나는 작업이었다.

이천시 마장면에 있는 그의 작업실 미래조형연구소 마당에는 ‘아름다운 비행’을 했을 두 대의 비행기가 사뿐히 내려앉아 있다. 비행기말고도 마당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연결된 네 가닥 빨랫줄 레일에 각기 도르래로 묶인 네 마리의 진돗개가 그 최소한의 구속을 기꺼워하며 뛰노는 모습도 눈길을 끈다. 붓과 필기구가 빽빽하게 꽂혀 있는 테이블 한켠의 수동식 펌프나 난로로 거듭난 수명이 다한 제트엔진을 보면서 ‘생활주변, 삶의 현장 전체가 무궁무진한 창작의 소재를 제공한다’는 그의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스스로 만든 비행기로 하늘을 난 것도 이런 발랄하고 자유로운 사고의 귀결이었으리라.

30년만에 이룬 꿈

그는 1967년 배재중학교 공작반 시절에 모형비행기를 만들면서 품었던 날고 싶다는 꿈을 30년만에 기어이 이뤄내고야 만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하늘을 나는 일을 포함해 나름의 방식으로 삶과 세상의 의미를 묻는 예술활동을 집요하고 치밀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 방식은 2년, 3년씩 걸려 직접 만든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이기도 하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갯벌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아 무분별한 간척사업이 부당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식이기도 하다.

하늘을 날기까지 그는 수백 권의 관련서적을 탐독하고 인터넷도 없던 90년대 초반부터 해외에서 어렵게 정보를 구해 재료를 수집했다. 자체 조달이 가능한 부품은 청계천을 뒤지거나 직접 가공해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96년 8월, 그는 자기 손으로 만든 비행기로 하늘을 날았다. 그 비행은 우리나라 최초로 개인이 만든 비행기가 하늘을 난 것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1967년 배재중학교 공작반 시절에 모형비행기를 만들면서 가슴속에 품었던 꿈을 30년만에 이룩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날기 위한 자신의 노력 모두를 자신의 ‘작품’으로 여긴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97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석하라는 조직위원회의 권유에 대해 개막 당일 자신의 비행기로 그 상공을 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것을 출품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과 행위로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발언하고 개입하는 것을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방식과 어법은 철저히 ‘자기 식’을 고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예술가인 자신은 거리에서의 외침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에 의문을 던지는 방식이 옳다는 것.

때마침 그의 작업실은 방문한 전날 국회에서 한나라당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었다. 그 뉴스에 대해 그는 싸늘하게 냉소했다.

“범죄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놓고는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시대의 황폐하고 오염된 현실을 실감했어요. 그걸 바라보면서 자라나는 세대들이 겪게될 가치관의 혼란을 생각해보세요. 산업폐기물이나 공기, 식수의 오염만을 환경오염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부패한 정신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아요. 이제 참여연대 같은 시민운동단체, 환경단체들이 이런 정신적인 쓰레기, 추악하고 더러운 정치적 행태를 일소하는 데 앞장서주었으면 합니다.” 그는 환경문제에 나름대로 관심이 높다. 97년 대만에서 북한에 핵폐기물을 수출하려고 했을때는 주한 대만대표부에 자신의 작품을 기증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사진으로만 본 그 작품은 원통형의 매끄러운 금속제 통들이 여럿 늘어서 있고 그 중 하나는 거칠게 뜯겨져 내용물이 드러나 있는 설치물이었다. 사진에는 ‘작업중 생긴 폐기물’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항의와 조소의 뜻이 담긴 그 작품의 인수를 대만 대표부는 물론 거절했다. 또한 시화호 상공을 날며 매립될 위기에 처한 아름다운 갯벌 사진을 촬영해 3,000만 평의 매립대상지 중 일부만이라도 자연상태로 보존하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지만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환경단체와 함께 새만금간척지 상공을 비행하며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갯벌을 무작정 매립해 공단과 농토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기에 비행했던 것인데, 환경단체의 반대논리가 그다지 치밀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맞서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분석과 설득력 있는 대안제시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말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쓰레기같은 정신을 양산하는 오염된 환경

비행기를 만들기 전에 그는 태양열자동차를 만들기도 했다. 모터와 솔라셀 등 부품을 스스로 조달해 가며 태양에너지만으로도 시속 40킬로미터까지 달리는 진짜 자동차를 만든 적이 있다.

“석유 메이저들이 석유를 계속 팔아먹으려고 이미 십 수 년 전에 기술개발이 끝난 대체동력의 상용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자료를 읽고 화가 치밀었습니다. 나는 일개 예술가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저항하고 싶었습니다.” 직접 태양열자동차를 만든 동기 역시 ‘왜 나는 하늘을 날 수 없는가?’하는 의문에서 출발한 비행기 자작만큼이나 순수하고 무모(?)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게 된 태양열자동차로 호주에서 개최되는 국제경주대회에 나가려고 했지만 같은 해 일본고등학생들이 자동차메이커들의 지원을 받아 만든 차에 비해 너무 성능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꿈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선진국에 비해 걸핏하면 ‘공부 안하고 엉뚱한 짓만 한다’는 지청구를 듣기 일쑤인 우리 청소년들의 현실이 너무 대비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범죄를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해괴한 논리로 쓰레기 같은 의식을 유포하는 것도 다 그런 틀에 박힌 교육환경 탓이 아니겠습니까? 꿈을 이루기 위해 합리적으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노력하면 결국 하늘을 날거나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일반화된 건강한 사회라면 정치인들의 이상한 행태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을텐데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주저없이 실천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싸움의 대상은, 꿈을 짓누르는 틀에 박힌 관념이며 비합리적인 후진 생각들이다. 그리고 그의 비행기처럼 그가 날아가 도달하고 싶은 지점은, ‘상식과 합리’가 통하는 세상이다.

김성희 본지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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