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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간호 05월
  • 1995.05.01
  • 374
현직 의원이 본 지방자치
거리의 내음새가 계절이 바뀌어 감을 알려주고 있다. 4년 지방의회 의원에 대한 체험 수기를 청탁 받고는 다음 선거 준비로 요즘 한참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과정이라 시간도 없고 필력도 없어 무척 망설였다. 덕분에 모처럼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어 생각나는 몇 가지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친구들의 모금으로 선거운동 시작

우선 생각나는 것은 입문과정이다. 무소속으로 남구 3지구에 출마해 보라는 갑작스런 제의가 선거 40일 전에 들어왔다. 또 그곳은 내가 살아 본 적도, 어떤 연고도 없는 지역이었다.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어 친구들과 상의했다.

친구들 의견은 “ 이 기회가 네 인생에서의 의미는 네가 판단해라. 그러나 출마한다면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이번에 떨어지면 다시 출마하지 마라. 선거 때마다 들썩거리면 우리는 친구 하나 잃어버린다. 둘째, 돈 쓰지 마라. 돈을 쓰면 본전 생각나서 사심 없이 지역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원칙을 져버리게 된다. 선거 자금의 최소한의 비용은 우리가 모금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맙게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사무실을 얻는 것을 시작으로 선거조직, 홍보물 제작, 여론 조사 등 정신없이 40일 간을 보냈고 주위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운좋게 당선되었다. 선거 비용은 3,500만원 정도 들었고(법적비용 3,650만원) 모금은 4,000만원이 좀 넘었다.

기쁨은 잠시였고 6개월쯤 되면서 의원직 사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심각한 고비를 맞이했으나 주위의 격려와 도움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기업가 출신이 80%를 차지하는 의원구성

의회 의원 구성이 되고 보니 전체 27명 중 여당이 20명, 야당이 4명, 무소속 3명으로 여당이 76%이고, 직업별로는 상·공업, 금융업, 건축업을 하는 기업가 출신이 80%를 넘고, 성별로 여성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연령만큼은 30대에서 60대까지 고르게 분포되었다. 이렇듯 대표성의 엄청난 편중 문제를 보며 원론적으로 볼 때 지방의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지역의 각계 각층의 의견이 골고루 수렴되는 것인데, 의회 운영에서 앞으로 많은 문제의 어려움을 가져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수파인 여당의 의회 운영의 독주는 어쩔 수 없었고 의회가 기득권 층을 대변한다는 비난도 면할 수 없었다. 집행부를 견제하는 측면에서는 처음 생긴 의회의 위상을 높이고 의원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예산도 많이 삭감하고 여·야 한 목소리를 낸 적도 있으나 일정한 선을 넘어서는 부분에서는 스스로가 의회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서며 지방자치의 한계를 드러내 수준 이하로 많은 지탄을 받았다.

2년에 걸친 노력끝에 상임위원회 분위기 쇄신

이런 여건 속에서 무소속 의원으로서 깊은 정신적인 갈등으로 무척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생각 끝에 본래 의회가 본 회의 중심주의가 아니라 상임위원회 중심주의인 점에 착안하여 상임위원회 운영만큼은 좀 더 발전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실질적으로 의회 운영에서 일방적인 독주를 제어하고자 노력 끝에 상임위원회 의결 방식을 다수결에서 전원 합의제로 바꿔 나갔다. 여·야 구분 없이 의원 하나 하나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주고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며 전원 합의에 이르도록 내부 분위기를 바꾸는 데 2년 걸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양보를 많이 하지 않을 수 없었고, 특히 위원장과 간사의 역할이 중요했다. 일단 분위기가 잡히고 보니 처음엔 시간이 많이 걸렸고 여당 의원들의 불평 불만이 많았으나, 점차 사전 협의하에 효율적으로 운영함에 따라 시간도 많이 절약되고, 특히 대집행부 관계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아닌 한 목소리로 통일되게 나감으로써 많은 부분을 무리 없이 관철시킬 수 있었고, 나중엔 의회에서 볼 때 문제될 만한 것이 있으면 사전에 자발적으로 와서 상의와 양해를 구하는 전통을 세우게 되었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의회 생활에서 가장 큰 성과와 보람이었다고 생각되며 어쩌면 지방자치의 꽃인 상임위원회 활동의 모델케이스라 해도 손색이 없지 않나 생각되며, 위원장을 비롯한 우리 위원회 여러 위원 분들께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협조해 준 것에 감사 드리고 싶다. 그리고 다른 위원들도 자기 의견이 위원회 의견으로 채택되면 집중적으로 집행부를 공략하여 반영되기 시작하자 위원회 참석률이 좋아지고 서로의 인간 관계가 돈독해지고 회의가 낭비 없이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 복지, 환경, 보건, 교육 등 위원회 관할 사항에 대해 인천 시민들에 부끄럽지 않은 제도 개선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민원처리는 무소속의 또 다른 고충

또 의원으로서 존재이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민원처리 부분이다. 실제로 가장 애를 먹었던 부분의 하나이기도 하다. 힘없는 억울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었을 때 가장 뿌듯한 보람을 느낌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무소속인 나로서는 전화로 해결할 수 있는 단순 민원은 별로 만난 적이 없다. 민원인이 정당 지구당 사무실을 거치고 해결이 안되면 마지막으로 나에게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대부분 본인 잘못이 내재되어 있는데 나에게 설명할 때에는 무조건 억울한 피해자로서 정당 사무실을 거쳐온 부분을 빼고, 얘기를 시작하면 평균 3시간 정도 걸린다. 안 들을 수도 없고 바쁜 시간이라 중간에 요점 정리를 하고자 하면 그게 아니라면서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비서나 보좌관이 없는 나로서는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 문제일수록 해결하는데 무척 시간이 걸리고 또 해결될 때까지 매일 전화가 온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본인 잘못이 있을 때 그것을 이해시키는 일이다. 대부분 막무가내인 경우로 그냥 몇 시간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집단 민원일 경우 시청 앞에서 뜨거운 뙤약볕에 고생하시는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내가 문제 해결을 장담할 수 없는 입장에서 그만두라고도 못하는 난감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경우 항상 강경파가 분위기를 잡아가는데, 시와 시민의 중간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어려움에 처해 현 지방자치 상황에서의 의회 의원으로서의 한계를 느낀 경우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민원 처리하면서 느낀 결론은 지금은 행정부도 웬만한 경우, 부당한 일 처리는 하지 않고 문제 거리를 만들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어차피 주민 편에서 대변을 할 수밖에 없지만 민원 접수 단계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두고두고 욕을 먹고, 잘 안 되면 고생만 하고 욕먹는 경우가 생겨도 말 한마디 못하기도 한다.

2대 지방의회는 좀 더 활발한 의정활동을 기대한다.

특별위원회 운영 문제, 행정 감사의 문제, 전문위원실 운영 문제 등 초대 의원으로서 겪었던 부분으로서 무언가 정리하여 넘어갈 부분은 많지만 끝없는 넋두리일 것 같아 이만 줄인다.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면 주마등 같이 많은 감회가 교차하지만 우선 무엇하나 깊이 있게 접근하지 못하고 그냥 흘려 보낸 아쉬움이 남아 있다. 지방행정에 대한전문성도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도 생활 주변에 대한 정리도 무엇하나 발전적으로 성과 있게 매듭 지어지는 기분이 안든다.

4년 전 목표했던 많은 부분이 그저 피상적으로 막연했기 때문에 스스로 퇴색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처음 겪은 시행착오들을 교훈으로 삼아 좀더 구체적인 목표 하에 열심히 자기 관리를 해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의회 생활이란 자기 개인보다 주변 여건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도 중요하다. 지금은 4년 전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에 비해 상당 부분은 변화가 있었다. 그래도 많은 시행착오와 악조건 속에서도 내일을 위한 기틀을 조성해 나갔다는 데 의의가 있었으며, 다음 2대 지방의회가 보다 활발한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다고 본다.
한영환(인천 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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