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의 앞날을 생각한다.

지방자치의 앞날을 생각한다.

우리의 지방자치 역사는 매우 일천하다. 이제 시작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시작에는 흥분과 설레임이 있게 마련이다. 당연히 자그마한 일에도 찬사와 비판의 목소리가 동시에 쏟아진다. 뒤돌아 보건대, 지난 몇 년간의 비장자치 경험은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희망과 격려의 목소리를 압도하여 나타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비록 지방의회만 직선된 반쪽 지방자치였지만, 이제는 짧은 경험을 겸허하게 반추하여 다가올 완전한 의미의 지방자치 시대에 대비할 시기이다.

개념의 혼돈이 부정론 심어

먼저 우리는 지방자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여야 하는가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지방자치에 관하여 많은 논의가 있어 왔지만 아직까지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언론이나 관계 전문가까지도 혼탁한 개념 정의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모두들 지방자치를 이야기하여 왔지만 정부 당국과 국민 모두를 포함한 합일된 의견 조정이 불분명한 상태이다. ‘세계화와 지방화’라는 구호의 난무 속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왜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은 상태이다. 기준과 목표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고 있으니 보다 중요한 사안들은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보다 덜 본질적인 선정적인 사안들이 언론 매체를 통하여 지방자치의 부정적 면을 확대 재생산해 놓고 있다. 이와 같은 지방자치 개념 정의의 혼돈은 자연스레 일반 국민의 뇌리 속에 부지불식간에 지방자치 시기상조론이나 주정론을 심어 놓았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 이러한 혼란이 아직까지도 부지불식간에 자리잡고 있으냐 하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지방자치 제도가 본질적으로 갖는 내재적인 상대성 때문이고, 둘째는 이러한 상대성을 정치권이 교묘하게 정치적 목적의 전략적 수단으로 사용하여 왔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민주주의와 주민복지

첫번째 문제를 살펴보자.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완전한 의미의 지방자치나 중앙집권은 없다. 왜냐하면 완전한 의미의 지방자치는 국가의 자기부정이고 완전한 의미의 중앙집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는 그 속성상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방자치가 무정형의 상황 변이적 논리에만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니다. 논자의 수만큼이나 많은 ‘민주주의’의 정의가 가능할 수 있지만 그래도 민주주의라면 그 본질적 무엇이 있어야 하듯, 비록 상대적 개념이지만 적어도 지방자치가 지방자치다우려면 꼭 지켜져야 할 그 무엇이 있다. 항간의 여러 논의를 정리해 보건대 그 무엇은 두 가지로 집약될 수 있는 듯하다. 하나는 ‘민주주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주민복지’ 이다. 즉, 지방자치란 가장 민주적이고 동시에 가장 효율적으로 지역 주민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정치제도인 것이다. 앞으로 의회와 자치단체가 모두 구성되어 온전한 자치제가 실현되면 더욱 많은 지방자치의 어려움이 나타날 것이다. 이럴 때면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소모적 논쟁보다는 ‘민주주의와 주민복지’라는 기본 명제로 되돌아가서 모두 겸허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어떠한 식의 민주주의를 어떠한 주민을 위하여 어떻게 운용하여야 하는가의 방법론적인 측면은 충분히 이론의 여지가 있다. 왜곡이 없는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되 소수의 의견이 존중되면 이러한 방법론적 어려움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위로부터의 우회전략이 지방자치 실시로

두번째 문제를 살펴보자. 지방자치는 본질적으로 상대적인 측면이 있는 동시에 정치적 성격이 매우 농후하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순수한 주민 복지 행정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오염시킨다”는 그럴싸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면 이러한 ‘몰정치의 정치’적 반론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어느 한 지역이라는 미시적 수준의 지방자치를 보자. 경기도내 일원의 지역적 부패 권력 구조가 빚어내는 각종 현안들은 속칭 이야기되는 ‘토호 비리’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얻느냐?” 하는 지방 정치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지방자치라는 제도를 통하여 보다 합법화되고 구조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큰 문제는 지방자치 제도의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보다 거시적인 정치적 왜곡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자치의 경험이 일천한 개발도상국의 경우 이러한 경향은 더욱 확연하다. 지방자치의 역사가 오래된 서구 제국의 경우 중앙과 지방의 권력 배분은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통제라는 메커니즘을 통하여 확립된 것이다. 즉, ‘아래로부터의’ 지방자치관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개도국의 경우 지방자치는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위로부터’ 시도된 경우가 허다하다. 즉, 시민사회의 대 국가 권력 통제가 아닌 집권층의 정치, 행정적 필요성에 의한 지방 분권화 정책이 시도되었다는 사실이다. 출발점은 물론 극도의 중앙집권적 행정구조 개혁과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정책 수단 개발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이들 국가군(특히 남미의 경우)에 재민주화의 바람이 불면서 지방자치의 거시적 성격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발전 행정적 지방분권 논의가 민주화 일환으로서의 지방분권 논의로 성격이 변모되기 시작하였다. 기존의 군부 잔존 세력이나 새로이 탄생된 민선 정부는 개혁과 민주화의 기치하에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전국적 규모의 지방 분권화 정책을 시도하였다. 아르헨티나, 페루, 멕시코, 브라질 등의 나라가 그 좋은 예이다. 이들 국가군의 지방 분권화 정책 결과를 민주화 및 개혁과의 연계하에서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예상되는 결과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분권화를 통한 민주화 및 개혁이라기보다는 중앙 집권의 강화를 위한 우회 전략의 일환으로서의 지방 분권 및 정치적 정당성 획득 수단으로서의 지방분권 정책이라는 의구심이 짙게 드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자치 뒤에 숨은 정치적 의도 살펴야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여 우리의 경우에 적용시켜 보자. 50년대 말엽부터의 짧았던 지방자치 역사가 남긴 교훈은 무엇이었던가? 답변은 너무나 명확하다. 집권당의 정치적 애로 타개책으로서의 지방자치는 경계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80년대 말엽들어 6.29 시민 항쟁의 결과로서 새로이 제기된 근간의 지방자치를 돌이켜 보아도 비슷한 결론이 나온다. 물론 지난 40년간 한국사회는 세계에서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여 왔다. 따라서, 정치 경제 및 사회 구조적 변화가 지방 분권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틀리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탈정치적 반론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법의 개정 과정이나 짧은 지방자치의 실제적 운용 실태 및 간간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지방자치 선거 연기론 등 많은 사안들이 행정 효율성 및 정책의 일관성이라는 합리화하에 정치적 의도를 숨기고 제기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논의가 결코 ‘형식적으로는 지방자치의 모양새를 갖추었으니 정치적으로 부담되는 선거를 포함한 본질적 문제는 뒤로 미루자’는 숨겨진 논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입에 쓰면 뱉고 달면 심키는 식의 원칙 없는 지방자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막아내야 한다. 쓰건 달건 몸에 좋으면 삼켜야 한다. 무엇이 몸에 좋은가는 위에서 논의된 바와 같은 ‘민주주의’와 민주복지 증진’의 두 원칙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지방자치 앞날에는 많은 문제들이 산적하여 있다. 지역 이기주의, 지역개발의 활성화로 인한 무분별한 환경 파괴의 가능성, 지방 재정 자립의 문제, 허약한 지방의 인력 자원 등등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곁가지를 다치고 큰 줄기를 찾아서 우리의 지방자치 앞날을 생각해 보면 두 가지 주된 요소를 찾아낼 수 잇다. 하나는 중앙-지방간 관계의 정립이다. 목하 중앙과 지방의 연계는 정당과 행정 조직의 이중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어떻게 자원과 권한을 배분할 것인가는 국민 여론에 의하여도 결정될 것이지만 역시 중앙의 의지, 특히 집권 정치 세력의 의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한국적 실정 하에서 아직도 중앙 집권 세력의 민주화는 지방의 민주화 더 나아가 한국의 민주화의 선행 조건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지역적 시민사회의 문제이다. 지방자치가 구체적으로 피부에 와 닿게 실현되는 삶의 장소인 지역사회의 민주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부분에서는 중앙의 의지에 더하여 지역 주민의 운동적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러나 돌이켜 보건대 우리의 지역 사회는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지방 유지로 통칭되는 지방의 보수적 파워 엘리트가 관변 단체 및 정당의 지구당 조직, 지방 언론, 그리고 행정 기관과 연합하여 한편으로는 지역 주민 위에 군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후원자 수혜자 관계로 지역 주민을 얽어매어 놓고 있다.

지방자치의식의 전환 필요

이런 맥락에서 6.27 지방 선거의 중요성이 인지되어야 한다. 선거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선거 후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그 중요성은 두 가지다, 첫째는 지역적 시민사회가 주어진 선거의 결과를 어떻게 운용하는가의 문제이고, 둘째는 정치적 반대세력의 지방적 수준 집권이 정부 여당에 의하여 민주적 게임의 규칙하에서 어느 정도까지 용인되는가의 문제이다. 벌써부터 정부 여당이 지방 선거에서 파생 가능한 정치적 부머랭 효과를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결론적으로 한국 지방자치의 앞날은 한편으로는 중앙의 의지에 의하여 큰 틀을 잡아 나아갈 것으로 보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시민사회의 활기찬 운동적 노력 여하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잠정적 겨론 하에서 우리는 어떠한 과제를 도출할 수 있는가? 지방자치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는 무조건 선일 수만은 없다. 어떠한 종류의 지방자치인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지방자치를 위로부터 주어진 결과물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지방자치는 우리가 모두 힘을 합하여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깊이 인식하자. 비록 모순되는 면이 많이 내재되어 있고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지만 지방자치의 당위성 논쟁은 쓸데없는 에너지의 낭비일 뿐이다. 우리의 지방자치 앞날에 어려움이 도래할 때마다 원칙으로 돌아가 머리를 맞대고 중지를 구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위로부터의’ 개혁에 ‘밑으로부터의’ 개혁이 첨가될 때만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고 지방자치는 그 좋은 제도적 방편임을 이야기할 때이다.

강명구(아주대 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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