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SD 참가기 – 코펜하겐에서 본 국가와 시민사회

코펜하겐에서 본 국가와 시민사회

코펜하겐에서 3월6-12일에 열린 「사회발전 세계 정상회의(World Summit for Social Development) 」는 186개국에 이르는 국가의 대표들과 110여개국의 정상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민간사회단체들과 이들이 풀어놓는 세계적인 시민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버스로 약 15분 거리에 떨어진 정부대표 회의장 벨라센터와, 민간기구(NGO) 들의 회의장인 홀벤 해군기지는 외형부터가 대조적이었다. 쾌적하고 넓은 국제회의장에 정장하고 넥타이를 맨 정부대표들 2천명이 서류가방을 들고 유유히 움직이는 벨라센터와 대조적으로 홀벤기지는 폐기된 공장건물이나 나치 수용소 같은 낡고 허술한 창고 같은 곳에서 1만5천여명의 전세계 민간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장터처럼 북적대는 곳이었다. 화장실이 모자라 바깥에 이동화장실을 긴급히 만들어놓은 것이 보였고 전시장, 식당, 공연장도 모두 허술했다.

한 나라 안에서 볼 수 있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대조가 이곳 유엔의 사회발전회의장인 코펜하겐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벨라센터의 본회의장엔 각각의 수석대표와 정상들의 연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되었는데, 7분간으로 제한된 시간에 국가대표들은 사회발전에 대한 정책과 업적을 선전하기에 바빴다. 빈곤과 실업, 사회통합에 대한 원론적 수준의 강조와 주장들이 많아 계속 앉아서 같은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방청석과 대표석들이 텅 비는 적이 많았다. 말의 잔치에 불과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온갖 종류의 민간단체운동과 사회문제들이 전시되는 홀벤의 NGO 포럼에는 그야말로 시장과 같은 활기가 있었고 생동감이 넘쳤다. 마치 여의도 의사당에서 남대문시장으로 옮긴 것 같은 인상이다. 빈곤, 환경, 교육, 어린이, 여성, 질병, 노인, 원주민, 인종차별, 외국인, 피난민,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온갖 부분의 사람의 현실과 이를 해결해 보려는 민간사회운동 단체들의 활약상과 간행물, 선전물 등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수십개의 세미나 방에서는 동시에 10여개 이상의 프로그램이 개최되어 단체별, 지역별, 분야별 토론회와 강연회가 6백여차례 실시되었다.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는 정부대표들의 회의가 민간기구들의 포럼이 내놓는 제안들과 요구사항들을 얼마만큼 수용하고 호응하느냐는 것이 성패의 관건이었다. 마치 국가가 시민사회의 요구를 얼마나 수용하며 실천하느냐의 문제와 같았다. 그래서 민간단체 포럼을 통해 전세계적인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그 힘을 보여주는 것이 중대한 과제였다.

이번 대회의 창안자였으며 준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던 칠레의 유엔대사 주앙 소마비아(juan Somavia)는 민간단체들의 열정적 활동과 생동감에 넘친 참여가 정상회의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격찬했다. 정상회의의 준비과정은 민간기구들의 참여와 영향의 증대과정이었다고 유엔 당국자는 말했다. 1차에서 3차까지 준비회의를 뉴욕에서 하는 동안 참여한 민간단체는 등록된 것만 1차의 76개에서, 2차 285개, 3차에는 2500여개로 증가되었다.

특히 2차준비회의에서 민간단체 포럼이 제안한 내용들은 “모든 국가들이6개 인권조약과 노동기구조약에 조인할 것, 사회구조 개혁정책, WTO체제의 사회적 감시, 저소득 국가에 대한 외채탕감, 공식개발원조(ODA).를 2천년까지 GNP의 0.7%로 할 것을 OECD 국가에 의무화 할 것, 그리고 이중 50%를 사회발전에 충당할 것, 군사비와 무기거래 감축, 사회발전에 민간기구의 참여확대” 등12개 조항의 매우 진보적인 것이었다. 정부대표들이 이번에 결의한 실천 계획은 여기에 휠씬 못미치는 것이며, 그나마도 당위적 주장과 권고사항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 방향과 방안은 이미 민간기구의 포럼에서 제안한 것들을 채택하는 데 불과했다.

제3세계의 빈국들은 이번에 외채탕감이 결의될 것을 기대했는데 권유사항에 그쳐 실망했다. 회의를 주최한 덴마크 정부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회의 벽두에 니카라과, 짐바브웨, 앙골라, 볼리비아, 가나 등 여섯나라에게 외채 10억크로네(약 1억6천6백만불)를 탕감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덴마크의 일방적 조처에 찬사를 보내기보다는 오히려 강한 반발을 표명했다. 상징적 의미밖에 없는 적은 액수에 불과한데도 신진국들은 빚을 못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원조액을 높인다지만 사실상 개발원조액은 외채에서 받는 이자에 비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 소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내용들이 민간포럼에서 밝혀지고 있었다.

세계적인 빈곤과 질병을 구제하고 빈국들의 사회발전을 이룩하는 데 있어서 민간사회단체나 운동들의 역할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가난한자, 소외된 자들을 돕는 일은 정부보다 이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회발전사업이나 복지단체같은 민간기구들이 더 잘할 수 있음은 국제적으로도 공인된 것 같다. 또 인간안보와 발전, 지속가능한 발전문제도 정부나 기업보다 민간기구들이 더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음도 사실이다.

그래서 여러 정부대표나 국제기구대표의 연설에서 민간기구(NGO)의 역할을 강조하고 칭찬하는 문구는 빠지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 부인 힐러리 클린턴도 연설에서 정부는 빈곤층의 인권과 안전 교육 문제의 해결에 가급적 많은 권력과 자원을 민간기구들에 넘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위대한 사회운동과 발전이, 예를 들어 노예해방, 여성의 권리신장, 민권운동이 모두 종교 사회단체들에 의해 추진되지 않았느냐고 했다. 정부는 민간기구들이 정부사업을 감시하게 하고 압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해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여기에 비해 한국정부대표의 연설이 민간기구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이 정부의 정책만 자랑하고 만 것은 참 유감이었다.

우리 정부의 보고서나 연설에는 세계의 빈곤문제나 사회발전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와 문제의식이 결여되었다. 더구나 후진국들에게 우리의 경제성장을 배워 빈곤문제를 해결하라고 파급(trickle down) 이론을 강조한 것은 세계적인 문제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데 연유한 것 같다. 많은 세계적 지도자와 정치가들이 경제성장이 사회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주장을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반대의 지론을 편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 라이저 총무는 경제성장이 빈부격차를 가져왔으며 성장을 위한 성장은 암세포의 전략과 같이 파멸을 가져온다고 경고했다. 가난한자에게 부스러기를 떨어뜨리는 파급(trickle down) 정책으로는 결코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하며 세계적 시민사회가 강화되어 정부의 정책과 발상을 전환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점에서 한국의 민간단체로 참여한 인간사회발전 포럼은 나름대로 세계적 시민사회에 한몫을 했다고 생각된다. 우리 참여연대가 주관한 “급속한 경제성장이 가져오는 사회적 문제에 관한 워크숍은 후진국들에 한국의 성장 모델을 본받으라는 정부의 주장과는 다른 멧세지를 전달하였다. 저임금, 인권탄압, 노동3권 제약, 환경파괴 등 사회발전의 역기능을 수반한 급속한 경제성장의 문제를 진솔하게 지적하며 반성하게 했다는 것이 오히려 세계적 사회발전에 한 기여가 되지 않았을까 자부해 본다.

민간사회단체들은 물론 많은 약점도 가지고 있고 조직력이 약하며, 일관되지 못하고, 경우데 따라 정부나 재벌의 노리개감으로 전락하는 NGO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시민사회의 요구와 의사를 표출시키며 반영하는 불가결의 요소임을 이번 코펜하겐에서도 절실히 느낄수 있었다.

이삼열(숭실대 철학과 /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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