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09월 2018-09-01   1695

[특집] 저출산과 개인화에 대하여

특집2_출산율 0명, 왜?

저출산과
개인화에 대하여

 

글.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월간 참여사회 2018년 9월호 (통권 258호)

 

결혼과 출산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된 이유

저출산 문제를 개인화의 맥락에서 해석하면 두 가지 주장이 가능하다. 첫째, 가족이나 친족 같은 혈연집단보다 자신(self)이라는 개체적 자아를 우선시하고 결혼이나 출산을 ‘선택’의 문제로 상대화하는 의식이 낳은 산물이다. 둘째, 가족이나 공동체라는 울타리에서 튕겨져 나와 홀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불안정한 개인들이 결혼도 출산도 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전자의 경우 자발적 선택이라면 후자는 비자발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화(Individualization) 현상은 여러 사회학자들이 다루어 왔지만, 대표적인 것은 울리히 벡의 설명이다. 그는 근대사회의 특징으로 가족이나 종교 등 전통적 집단으로부터 개인들이 자신을 분리하고 주체로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는다. 이어 후기근대에 들어서면 복지국가가 약화되는 위험사회의 징후 속에서 개인들이 스스로 자기 삶을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고 본다. 결국 근대사회에서 인간은 개인으로서 자신의 생애궤적을 그려나갈 수 있는 자유를 얻었지만, 20세기 후반 복지체제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언제라도 빈곤에 처할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스스로 자신의 전기(傳記)를 써내려가야 하는’ 삶의 조건은 학자에 따라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기든스는 전통적인 권위에서 벗어나 개인이 스스로 자기 삶의 양식을 선택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반면 바우만은 사회적 보호라는 울타리 밖에 내던져진 삶을 ‘쓰레기가 되는 삶’이라고 비판한다. 

 

저출산은 이런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한다. 누구나 성인이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당연시하던 사회에서 벗어나 이제 결혼이나 출산을 의무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의 생애과정은 ‘학업-취업-결혼-출산-양육-은퇴’의 과정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학교를 도중에 그만두기도 하고 안정된 직장을 얻지 못하거나 결혼할 만한 경제적 심리적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기도 한다. 사실혼이든 법적 혼인이든 배우자가 있어도 아이를 낳기 어려운 상태일 수 있다. 또 이혼이나 별거 등으로 아이를 부모가 키우지 못하는 경우도 늘어난다. 

 

인간의 삶이 그야말로 유동적인 상태가 되는 상황, 고용불안정과 그로 인한 삶의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사회에서 마음 편히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조건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소수일 수 있다. 때문에 무자녀가족에 대한 연구들은 젊은 세대가 자녀를 갖지 않는 이유가 가족에 대한 무거운 책임의식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혼자 살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개인화되어가는 삶의 양식을 수용하고 있음을 뜻한다. 앞서 살펴본 두 가지 해석의 맥락에서 이 문제를 짚어보면,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자발적 비출산’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를 선택한 이들이다. 여기에는 부모로서 져야 할 책임의 무게나 자기 삶에 대한 기대로 인해 출산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데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뒤따른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출산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압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혹은 두 명의 커플이 한 명의 자녀만을 갖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찾아 사회적인 요소가 있다면 해결하는 것이 저출산 대책의 중요한 해법이 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여성의 조건이다. 가족사회학에서조차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한국 가족의 가부장적 관습들, 남성중심주의, 거의 아노미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고부관계 등 결혼이 가져오는 가족관계의 변화와 규범적 의무는 여성에게 결혼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만들어 왔다. 또 맞벌이가 당연시되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일과 양육을 전담하지만 그것이 되레 그들을 직장에서 밀려나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현실을 여성들은 늘 목격하고 있다. 그 결과 여성들은 남성과 나란히 노동시장에서 자기 삶의 전기를 써나가야 하는 시대에 결혼도 출산도 걸림돌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저출산 대책을 바로잡기 위한 첫 걸음은 여성의 관점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비자발적 비출산’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수없이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소득이 부족하고 함께 살 집이 없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는 조건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핍에 처한 수많은 젊은이들의 삶을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가 노력해 왔지만, 이것 역시 성공적이지 않았다. 왜일까? 필자는 그 이유가 아직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상 그 어떤 정부가 청년세대의 삶을 안정시키는 문제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은 적이 있었던가? 또 청년들로 하여금 정치적 주체가 되게 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경청한 적이 있던가? 때문에 가부장적 가족관계와 연공서열의 사회체계 속에서 청년들은 사회경제적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에 놓여 왔고 ‘열정페이’나 ‘노오력’을 강요받았다. 

 

오늘 많은 젊은이들은 ‘개인’으로서 자기 삶을 꾸려가는 것도 힘에 부치다. 따라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비혼이나 비출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저출산이든 개인화든 청년들의 잘못이 아니다. 책임은 우리들 기성세대에 있다.  

 

 

 

특집. 출산율 0명, 왜? 2018년 9월호 월간참여사회 

1. 출산율 0명이 말하는 것들 

2. 저출산과 개인화에 대하여 

3. 국가는 어떻게 여성의 자궁을 통제하는가 

4. 저출산 해법, 성평등한 복지국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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