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11월 2020-11-01   660

[읽자] 하루하루 살다 보니 봄여름가을 지나 겨울이 코앞에

하루하루 살다 보니
봄여름가을 지나 겨울이 코앞에

 

매년 이맘때면 지난 열 장의 달력을 돌아보는 방향과 남은 두 장의 달력을 내다보는 방향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지난 올해가 손에 잡히지 않아 무엇을 했나 살펴보고 싶은 마음과 그보다는 남은 두 달을 채우려 무엇이라도 찾아보려는 마음이겠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달, 계절, 한 해처럼 마디가 바뀌는 지점에 이르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 한 번쯤 멈춰 설 수 있으니 화가 되는 욕심은 아니겠으나, 이를 삶에 녹여내 다음 마디로 나아가려면 맞춤한 거울이 필요할 터, 오늘 만나는 그림책들이 투명하게 나를 비추고 눈부신 반짝임을 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관성은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 아닐까. 안정감을 주고 예측 가능성을 높여 일상을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너무 익숙해져 어디까지가 관성의 힘이 미치는 영역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관성의 힘 자체를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기 쉽다는 점인데, 그러다 보면 주변이 달라지거나 새로운 마음이 생겨나도 이를 관성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겨 무참히 지나치게 되고, 우리의 삶은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럼에도 점차 자라나 블레즈씨를 곰의 모습으로 만들고 마는 변화의 힘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 오늘 아침 무엇이 달랐는지, 그 작은 차이가 어디로 향하며 나를 이끌어갈지, 잠시 자리에서 벗어나 세심히 돌아보는 시간이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11월호 (통권 280호)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 글 라파엘 프리에 | 그림 줄리앙 마르티니에르 | 책공작소 

잠에서 깬 블레즈씨가 평소와 달리 이상하다고 느낀 건,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으려고 할 때였다. 하지만 회사에 가야 하니까 블레즈씨는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블레즈씨는 장화 속에 감춘 걱정거리를 잊기 위해 일에 더욱 집중했다. 블레즈씨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블레즈씨는 곰처럼 변해버린 두 발을이불 밖으로 내놓고 잠이 들었다. 내일이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오길 바라면서.

 

떨어진 계절은 서로 만나지 못하지만

봄여름가을겨울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터라 봄과 가을이, 여름과 겨울이 서로 마주할 수 없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서로의 계절을 나누려는 마음은 봄과 가을이 주고받는 편지에 담겨 우정을 이룬다. 어쩌면 사계절을 모두 지나며 살아가는 인간 생명이 계절끼리 주고받는 편지의 전달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한 계절을 살아가는 마음과 시선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여름의 푸르름을 새하얀 겨울에 전하려면, 겨울의 짜릿한 시원함을 후텁지근한 여름에 전하려면, 우리는 마주하는 순간순간을 만끽하며 잊지 않도록 잘 담아두어야 할 테니 말이다. 오늘에 충실할 이유가 오늘에만 있지 않음을, 계절의 흐름에서 문득 깨닫는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11월호 (통권 280호)  

 

가을에게, 봄에게 | 글 사이토 린, 우키마루 | 그림 요시다 히사노리 | 미디어창비 

나는 봄. 내가 잠에서 깨면 추위도 차츰 물러갑니다. 살금살금 일어난 나는 겨울에게 찾아가 인사를 건넵니다. 

“이제 바꿀 때가 왔어.” 겨울은 늘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아, 1년 만이네. 봄이 왔구나.” 그로부터 몇 달이 흘러 점점 해가 길어질 무렵, 여름이 찾아옵니다. 

“아아, 슬슬 바꿀 때야.” 나는 늘 이렇게 맞이합니다. 

“앗, 1년 만이네. 여름이 왔어.” 그러고는 다음 해까지 다시 잠이 듭니다. 

그런데 그때, 여름의 말이 들렸습니다. “좋아, 가을이 올 때까지 힘내자.” 

가을? 그러고 보니 나는 가을을 만난 적이 없네.

 

누구도 마지막을 알 수 없기에 

가만히 앉아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다며 스스로 흡족할 죽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늙은 산양. 그 도전과 행보를 들여다보면 그가 죽음을 향하는지 삶을 향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가 택하는 곳은 죽기 좋은 곳이기도 하겠지만 실상 삶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 곳일 테니 말이다. 한 걸음 나아가 그 방향이 어느 쪽이든, 그가 찾게 될 해답이 무엇이든, 살아 움직이며 자신이 바라는 바를 탐색하는 모습 자체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희망하는 게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가능성일 테니 말이다. 요즘 부쩍 인생 다 산 사람처럼 은퇴 외에 답이 없다는 넋두리를 되뇌곤 하는데, 일단 흡족할 은퇴하기 좋은 곳과 때부터 찾아봐야지 싶다. 그러다 보면 또 생겨나는 이야기가 있겠지, 기대하며. 

 

월간참여사회 2020년 11월호 (통권 280호)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 글 고정순 | 만만한책방

난 곧 죽게 될 거야. 하지만 가만히 앉아 죽을 수는 없지. 

“어이, 잘 있게. 나는 죽기 딱 좋은 곳을 찾아 떠나네.”


글. 박태근 알라딘MD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MD로 일했습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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