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3월 2004-02-17   1810

“부안주민들은 전문가나 관료들보다 현명하다”

[인터뷰] 부안주민투표 실무 총괄한 하승수 변호사

우리나라 최초의 주민투표가 지난 2월 14일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이루어졌다. 방폐장 유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정부-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를 상대로 한 7개월간의 힘겨운 싸움은 방폐장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로 한 고비를 넘은 상태다.

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충돌을 해소하기 위해 부안주민들은 주민투표를 제안했고 그에 따라 시민사회종교계학계로 구성된 독자적인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이하 주민투표관리위)’가 꾸려졌다. 그렇게 지난 14일 투표를 실시, 72.04%의 투표율과 91.83%의 반대율를 보여줬다. 주민투표관리위 사무처장을 맡아 이 투표과정의 실무를 총괄한 하승수 변호사를 만났다. <편집자 주>

▲ 하승수 변호사주민투표 후 부안은 어떤 분위기인가.

“물론 기뻐하는 분위기다. 부안주민들 대다수는 일단 홀가분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이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투표결과에 대해 입장을 내지 않은 상황이라 일말의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든 7개월을 넘게 끌어온 문제를 일단락 지은 것이니 다들 선거 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정부의 지원 없이도 해냈다는 부안주민들의 자신감과 자부심이 많이 느껴진다.”

어떻게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처장을 맡게 되었나.

“부안방폐장 갈등을 보면서, 저런 경우엔 주민투표가 해법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민투표는 사실 정부가 먼저 제안했고 주민들은 작년 10월까지도 반대했었다. 대화 끝에 주민들이 투표로 해결가닥을 잡았는데 이번에는 정부가 미적거렸다. 그렇게 실행이 안되는 상황이 계속되어갔다. 개인적으로는 주민투표와 주민참여에 관심이 많았기도 했고, 마침 사무처장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방폐장 건설반대 주민들이 시민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독자적 주민투표관리위가 구성되고 나도 일하게 되었다.”

부안에 얼마나 머물렀나. 숙소는 어떻게 했나.

“1월 23일에 내려가서 2월 16일에 올라왔으니 한달 조금 안되게 머물렀다. 빈 집에다 짐을 풀긴 했지만 이틀은 사무실 소파에서 자고 하루는 그 집에서 자고 그랬다. 주민투표 일을 맡은 남자활동가들은 거의 그렇게 지냈다. 투표가 임박해서는 그나마도 못 들어가고 주민투표관리위 사무실에서 슬리핑백을 펴고 잤다.”

얼굴이 많이 수척하다. 고생한 게 얼굴에 다 드러난다.

“살빠질 좋을 기회였는데.(웃음). 별로 고생 안했다. 부안주민들의 노력에 감동해서 힘든줄 모르기도 했고, 또 일은 다 부안주민들이 한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선거가 임박한 몇일은 사무실에서 나갈 수가 없어서 못 그랬지만, 그 전에는 잘 먹었다. 부안음식이 예술이다. 태어나서 가장 잘 먹은 것 같다.(웃음)”

▲ 부안은 온통 '방폐장 반대'와 '주민투표'를 상징하는 노란 물결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가게에는 선거안내문과 핵폐기장 반대 깃발이 걸려있다.

정부가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행정부 수반인 고건 총리는 방폐장 대상지역인 위도에서 투표를 못했다는 것을 들어 투표결과의 대표성에 의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어느 지역보다 위도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려고 노력했다. 부안주민관리위 활동가가 2주동안 상주하기도 했다. 찬성측은 토론회에 참여한다고 해놓고는 스스로 번복하고 그랬다. 아무튼 위도에서 투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찬성쪽이 투표장을 물리력으로 점거했고, 투표는 무산됐다. 투표를 무산시킨 찬성측 행동의 배후에 누가 있겠나. 한수원이나 부안군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보기 힘들다. 또한 이러한 노력 과정에서 수수방관한 정부가 이제와서 위도에서 투표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또한 주민투표법이 제정되기 전이라 법적구속력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법적효력은 법원에서 따질 일이지 행정부가 판단할 것이 아니다. 행정부는 주민의사를 존중해야하는 것 아닌가. 부안주민들은 법적효력이 없는 줄 알면서 투표한 것이다. 법적구속력 없다는 것은 주민투표 홍보자료에도 있었다. 왜 그랬겠나. 그만큼 주민의사가 전달이 안돼서 그런 것이다. 주민들이 그러더라. ‘정부가 우리 주민의사를 완전히 무시해서 그걸 알려주기 위해 하려는 것’이라고 말이다. 총리는 법적효력 운운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의사를 알고 부안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방안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정부가 뭘 하겠다는 대책을 내놔야지, 법적효력에 집착하는 것은 정부가 할 처사가 아니다.”

흔히 비교되는 일본주민투표의 경우, 투표율 40% 정도였는데도 주민대다수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사회적으로 무리가 없었다. 부안주민투표는 그것을 훨씬 선회함에도 정부가 주민대표의사로 받지 않고 있다.

“그 경우와 이번 부안주민투표는 비교가 안된다. 일본의 경우는 일주일간 투표를 했는데도 50%가 안됐다. 부안은 단 하루였는데 투표율이 70%가 넘는다. 세계에 이런 예가 없을 것이다. 정부가 시행한 것이 아니다 뿐이지 투표율도 대통령 선거에 근접하는 정도다. 투표소 설치, 운동기간도 대선이나 총선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투표소 관리도 변호사 입회하에 했고 개표도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전담했다. 단지 정부가 안했다는 것 뿐인데, 그것도 정부가 안하려고 한 것을 주민들이 스스로 한 것 아닌가. 안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안 받는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정부의 권위, 행정의 일관성인데…(한숨) 잘못해 놓고 그걸 밀어붙이는게 권위를 세우는 것인가. 부안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게 있다.”

주민 간의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갈등이 왜 그토록 심화됐나.

“순수하게 주민들의 뜻이 다른 정도라면 주민간 갈등이 이토록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갈등의 진원지는 정부와 한수원이다. 이들은 찬성측 주민들에게 한수원은 자금을, 부안군은 공무원 등의 공권력을 지원하며 반대측 주민을 눌러왔다. 반대측이 보기에 찬성자들은 주민이 아니라 권력과 돈의 편인 것이다. 거기에 찬성측은 유인물을 통해 반대하는 인사들은 쇄뇌당한 것이라고 비방했다. 지자체, 정부, 한수원이 나서서 대립을 부추겼다. 동네가 좁으니까 서로 다 안다. 어딜 갔다왔고 얼마를 받았는지 다 안다. 그러니까 더 해결이 안되는 면도 있다.”

특히 위도와 타 지역간의 갈등이 심각한 것 같다. 투표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위도는 찬성측이 더 많지 않은가.

“그렇긴 하다. 모두 경제적인 이유다. 위도주민들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직접적인 보상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법적 근거는 없다. 정부는 보상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고, 위도 주민은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위도상황은 아주 심각하다. 위도주민들은 아예 생업인 양식을 안해버렸다. 상당수 주민이 현재 소득이 없다고 한다. 방폐장이 안되면 대안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 빨리 방폐장 건이 결론이 나야한다. 정부제안처럼 9월에 투표해 10월이 넘어 결정하면 그때까지 생업을 포기한 위도주민들은 심각한 경제적 곤경에 처할 것이 분명하다. 시간을 끌수록 부안, 특히 위도의 상황은 심각해질 것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위도주민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위도와 격포가 사이가 나쁘다. 위도는 뭍으로 나오려면 꼭 격포를 지나야 하는데 이들간 갈등이 심각하니…(한숨) 비극이다.”

방폐장 건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생업인 양식을 포기하다니,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

“위도주민도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영광온천에서 나오는 온폐수 때문에 어장이 망가졌고, 거기에 새만금 공사로 인해 뻘이 흘러들어와 어장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런 피해에 빚은 쌓여가고 결국엔 보상금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위도에서 주민갈등이 심각한데, 지난 10월 이후 반대하는 주민들 때문에 찬성측도 보상을 못 받는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소문의 발원지는 한수원이나 정부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작 정부는 보상문제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는데 말이다.”

▲ 전교조 소속 교사 100여 명이 개표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민간 갈등해소를 위한 실마리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순수하게 주민들간에 의견이 다른 것이면 토론이 가능한데, 정부가 개입되서 토론이 안되는거다. 이제 주민투표까지 해 주민의사를 전달한만큼, 정부는 방폐장 건설 백지화를 선언하고 지금 유치신청한 것은 무효다라고 하면 된다. 다시 유치신청하려면 주민들이 논의해서 결정하라고 하고 말이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정부와 한수원이 개입되서 주민간 갈등이 심해지고 해결이 안된 것이다.

주민들은 정말 전문가나 관료보다 현명하다. 사심이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중심이 되서 자치활동을 해 나간다면 문제가 해결될텐데, 정부와 한수원 그리고 언론도 문제다. 특히 언론은 사소한 충돌은 크게 보도하면서 정작 갈등의 맥락과 근본 원인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또 하나, 방폐장이 백지화되면 정부는 책임을 면하게 되는 것인가. 위도와 부안주민에 대해 정부가 피해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따져봐야한다. 여기에 부안주민이 위도주민을 챙기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부안이 위도를 도와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제 주민들은 지역공동체회복과 자치운동을 하겠다고 한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지금 상황에서 정부와의 충돌도, 갈등의 심화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희망을 중심으로 뭉쳐야할 것 같다. 이제 부안은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쪽으로 가야한다. 여기에 시민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 붕괴되버린 경제와 공동체를 회복하려면 스스로의 노력뿐 아니라 외부의 도움, 즉 시민사회의 도움이 절박하다.”

부안은 물론 새만금 등 정부의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정부와 지역주민, 지역주민간 갈등이 반복해서 양산되고 있다. 원인과 해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부안 방폐장유치 논리는 부안의 내발적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국책사업유치만이 살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안만이 아니라 모든 농어촌은 다 핵폐기장, 원전을 지어서 살아야한다는 것 아닌가. 과연 내발적 발전은 불가능한가. 자체 발전방안을 찾는 것이 시급한 문제다.”

이번 부안주민투표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사회를 누가 움직이나. 부안사태를 이렇게 악화시킨 이들이 누군가. 바로 관료들이다. 최종의사결정권은 물론 대통령, 의회 등에 있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결국 이들이 잘못된 결정을 하게 만든다. 부안사태의 실질적 책임자는 산업자원부, 한수원, 총리실 등 관료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책임도 지지않고 여전히 실질적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런 관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투명성과 주민참여다. 한국사회는 대의민주주의는 80년대 이후로 어느 정도 자리잡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아직 이루지 못했다.

이번 부안주민투표는 관료중심제, 중앙집중적인 의사결정구조를 ‘주민이 참여하는 형태의 의사결정구조’로 바꿔낸 중요한 시도다. 투표를 정부가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의견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시도가 현재의 왜곡된 의사결정구조를 바꿔낼 것이다. 관료주의적인 힘에 주민들이 대항해 직접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해 보인 것이다.”

▲ 부안주민투표 참관인, 사무원을 자처하고 전국에서 모여든 6-700여 명의 자원활동가들

부안주민투표를 위해 한국의 시민사회노동종교계도 함께 움직였다. 전국에서 많은 이들이 선거참관인, 선거관리인을 자처하고 모여들었고, 결과적으로 부안주민이 주인공이고 시민사회가 조연인 거대한 주민선거축제를 성공시켰다. 시민사회의 성장과 연대도 인상깊다.

“전국에서 6-700여 명이 모여들었다. 부안주민들이 대단히 감사하고 있다. 앞으로 타 지역에 도울 일이 있으면 지원하러 가겠다는 주민들이 많다. 이번 경험으로 부안주민들은 사회의식이 놀랍도록 성숙됐다. 그러나 힘든 투쟁과정에서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전국에서 연대를 위해 모여든 이들을 보고 주민들은 크게 감동했고 고무됐다. 시민사회도 이번같은 전국과 지역의 연대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주민투표까지 성공시킨 뒷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주민투표 전에 많은 토론회가 있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비롯한 주민 대부분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추운 겨울 난방도 안되는 학교 강당에서 하는데도 말이다. 부안주민들은 할말이 많았고 분노했다. 한마디로 정부와 전라북도 도지사와 부안군수가 주민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방폐장 관련한 한 토론회에서 전라북도 행정도지사가 ‘부안주민들이 핵에 대해 뭘 아느냐’며 관료가 가진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부안주민들은 분노했고 엄청나게 공부했다. 국책사업의 판단이 주민에게 있느냐 관료에게 있느냐는 근본적인 대립이기도 했다. 투표라는 거대한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부안주민들의 자존심과 자긍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 투표하는 부안주민한국사회 최초의 주민투표를 진행해서,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부안에 머물렀던 기간 중 감동받은 일은 없었나

“감동은 거의 매일 받았다. 부안주민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은데 와서 스스로 일했다. 어떤 선생님은 매일 저녁 부안주민선관위에 와서 청소를 하고 가거나 어떤 젊은이들은 선거인명부를 작성하느라 일주일 내내 밤을 새우기도 했다. 다들 스스로 자처한 일이었다.

기표소와 투표함을 빌릴 수가 없어 주민들이 직접 만들었다. 선거인 명부를 확인해 줄 수 없고 해서 모두 전화를 하고 일일이 확인해가며 명부를 만들었다. 5만원, 10만원 이렇게 주고 가는 분들, 빵을 사가지고 와서 격려해주는 분들. 군단위는 물론 면단위에서도 이렇게 주민참여가 활성화된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지역자치의 가능성을 봤다고 생각한다. 희망이었다.”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

“주민투표관리위원회는 정부에게 입장을 전달하는 것으로 마무리할 것이다. 주민투표 결과를 정부가 존중하도록 촉구도 해야 한다.

궁긍적으로는 부안지역을 대안적 모델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민참여단체가 주민자치활동을, 환경단체가 생태환경적 모델을, 문화단체가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지역문화 활성화를, 이렇게 시민사회의 다양한 지원을 통해 정부정책 실패로 상처입은 지역이 회복하고 대안적 모델로 가길 바란다. 그런 선례를 만들면 좋겠다. 동강댐 건설을 백지화 시켜놓고 동강은 망가지지 않았나. 이제는 시민사회가 대안까지 같이 고민하는 단계로 가야한다고 본다.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동참하고 싶다.”

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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