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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08월
  • 2009.08.01
  • 994


김지현 회원

홍진을 씻어낼 빗줄기,
사회를 바꿀 한 걸음


이경휴 수필가,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중략)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김남주 ‘자유’ 중에서


장맛비를 ‘초록비’라 했다. 눈에 낀 홍진紅塵(번거로운 세상)마저 씻어주는 비라고 했는데 요즘의 장맛비는 물폭탄 수준이다. 국지성 호우·게릴라성 폭우라는 신조어들이 익숙한 일상이다. 장대비로 경상도가 내려앉고 전라도가 속수무책으로 쓸린 탓으로 전국이 긴장하고 있지만 빗줄기는 신출귀몰하게 강풍까지 몰고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늘 반복되는 타령이 올해도 어김없이 뉴스를 타고 보도된다. 천재가 아닌 인재였다고.

인터뷰가 예정되어있던 날은 서울에도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진종일 앞이 분간되지 않을 정도였다. 번개, 천둥소리까지 가세한 자연의 위력은 만물의 영장을 무력하게 했다. 150mm의 비에도 허둥지둥하면서 강을 ‘살린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게 얼마나 오만불손한가. 빗줄기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었다.

오후 늦게 빗줄기는 멎은 자리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만해 한용운의 시가 절로 떠오르는 푸른 하늘의 얼굴이었다.

김지현(27세) 회원. 미디어법 대응모임 총무, 수석 자원활동가답게 ‘똑’소리가 나는 인상이다. 아담한 체격에 금방 찬물에 세수한 듯한 얼굴, 단발머리에 T셔츠와 반바지. 수수한 차림이 금방 학교에서 돌아온 학생이다. 교육대학원 졸업 후 임용고사 준비 중인 취업 준비생이라 많이 바쁠 텐데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참여연대 자원활동가로 뛰어들었다.


“나 보다는 우리를 고민, 하루하루가 활기차요”

“어릴 때부터 활자로 된 것이면 무엇이든 읽어댔죠. 국문학을 전공한 것도 읽기의 연장선으로 생각했어요. 대학원 졸업 후에는 책 읽으며 고민했던 것의 방향이 좀 달라지더라고요.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하게 되고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한 고민이 시민운동에 대한 관심이냐고 되물었고, 질문은 자연스럽게 회원 가입 동기로 이어졌다.

“여러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보았어요. 책읽기를 넘어 내가 실천하고 행동할 수 있는 분야가 어디 있는지 탐색했죠. 참여연대 사이트의 ‘활기차’가 눈에 번쩍 띄었어요. 회원의 회비만으로 운영되는 시민단체라 믿음이 갔고 활기차에 올라와 있는 글들도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어요. 바로 회원 가입을 했지요, 2월에. 그러다가 회비만 내는 회원보다는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이 되려고 4월에 자원활동을 신청했어요.”

김지현 회원의 목소리는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처럼 맑아 절로 집중하게 되었다. 간간이 경쾌하게 흩어지는 웃음소리에는 장난기 어린 소녀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수석’이라는 수식어까지 달고 있는 자원활동가로서 그녀의 모습은 어떨까.

“회원이 되었으니 그 단체에 도움을 주어야 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자원활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나왔어요. 90년대 진행했던 참여사회아카데미의 강의가 녹음된 테이프를 MP3 파일로 변환하는 작업을 했어요. 아직 다 마무리 짓지 못했는데 지난 4월부터 미디어법에 대한 논란과 논의가 시작되자 그 법안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어요. 마침 참여연대 담당부서에서도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미디어법 대응 회원모임이 만들어졌죠. 나이가 어린 탓에 총무까지 맡게 되었어요.”

어디 나이라는 숫자만으로 총무 자리를 맡길 수 있으랴.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지 않는가. 분명 그늘 많이 드리우는 나무로 자라 곤고한 사람들의 쉼터로 자리를 내줄 듯해 맡긴 자리이리라.

그런 그이기에 이젠 학창시절처럼 책으로만 세상을 만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머리보다는 발로, 나보다는 우리가 되어 이곳저곳을 다닌다. 각종 행사에는 어김없이 앞장서고, 거리 캠페인, 미디어법 관련 모임에서는 단연 주인공이다. 지난 7월 11일 광주전남지역 회원한마당에도 얼굴을 내밀고 신선한 목소리를 냈다. 시민운동의 시작은 이렇게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걸 몸소 느끼는 그는 하루하루가 활기차다. 혹시 본업(?)이 될 교직은 접는 게 아닐까 할 정도의 열정이다.

“지금은 많이 갈등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는 국어라는 교과에 매력을 느꼈었거든요.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이 교사라고 생각했죠. 부모님도 권했고 저도 안정적인 직업이라 주저함이 없었는데 요즘은 단지 직업을 얻기 위한 공부는 쓸데없을 것 같다는 회의가 들어요. 참여연대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죠. 저는 이제야 시민운동에 눈을 떴는데, 참여연대 활동가 분들은 지금의 저보다 어렸을 때 이미 많은 관심을 가지고 행동해 오셨을 거라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발그레한 표정이다.


“목포에서 한 뭉치 엽서 받았을 땐 감동”

그는 이미 참여연대 안팎에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온몸으로 배우고, 또 반대하는 많은 사회 이슈들 중에서도 요즘 가장 큰 논쟁거리인 미디어법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단연 ‘미디어 악법 추진 경고 옐로카드 엽서 캠페인’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왔다. 이 캠페인을 통해 지난 6월 23일부터 2주간 국민여론 수렴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모였다. 전국적으로 펼쳐진 행사였다. 7월 9일, 1500여 장의 옐로카드를 느티나무 강당에 펼쳐놓고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 후에 그 엽서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소속 한나라당의원 16인에게 발송되었다. 관련 기자회견은 미디어법 대응모임 회원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했고 행사의 취지, 진행과정, 시민들의 반응을 소개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행사의 좌장 역할을 한 그에게 준비 과정의 어려움이나 느낌에 대해 한마디 부탁하자, 들뜬 목소리로 그 순간을 재구성했다.

 “어려움이라뇨?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어요. 멀리 목포에 계시는 회원이 등기로 보낸 한 뭉치의 엽서는 말 그대로 감동이었어요. 전국 곳곳에서 단 시간에 이렇게 많은 엽서가 당도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물론 거리에 나가 엽서를 내밀 땐 연세 드신 분들은 야단을 치며 화도 내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과정에 불과했죠. 참여연대 활동가들도 많이 도와주셨기에 서로 다투듯 반짝반짝한 아이디어를 쏟아 낼 수 있었어요. 그야말로 신바람이 났죠. 옐로카드를 책상 위에 다 깔았을 때의 성취감이란…. 이미 악법이 폐지된 느낌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7월 22일 오후, 국회의원석 중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해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대리투표, 재투표 논란이 불거지면서 원천무효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여당은 문제될 게 없다며 입을 닫았다. 여당은 왜 이렇게 이 법안에 목을 매는 것일까. 서두에 나온 김남주 시인의 시구를 다시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제대로 된 공청회나 국민여론 수렴 없이 앵무새처럼 뱉어댄다. ‘방송을 다양하게 해서 국민들에게 좀 더 다양하고 공정한 정보를 드림으로써 자유주의의 근간을 만들자. 이것이 미디어법이다.’ 한 수 더 떠서 대통령은 정치논리로 풀지 말고 경제논리로 풀라고 훈수를 든다. 기술이 융합되면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기에 젊은이들에게 당장 2만 여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일자리 창출론을 내세운다. 물론 국책연구기관(KISDI)의 근거 없이 부풀린 장밋빛 포장을 그대로 인용한 결과이다. 엉터리 연구 결과를 근거로 거대 신문사와 재벌 기업이 합법적으로 언론을 장악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꼴이다. 결국 신문·방송 겸영은 상업언론의 이윤 극대화에 유용한 도구로 전락할 게 불 보듯 훤한데도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거짓 근거를 끌어 대며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모순적인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기 자신에게 세뇌 당한 모양새이다.


“참여연대, 알면 알수록 더 참여하고 싶어”

미디어법과 관련된 대화가 이어졌다. 미디어 악법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전과 후의 심경이 어땠는지 궁금했다.

“처음엔 그 법안을 잘 모르니까 공부하는 셈치고 참여했지요. 고려대 법학과 박경신 교수(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님이 그 내용을 하나하나 집어주시면서 장·단점을 말씀해 주셨는데, 물론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더 많죠. 여당은 이를 정권 연장 도구로 삼아 정권 교체가 불가능한 시대로 몰아가려고 법안처리를 강행하려 한다는 점도 알았어요. 알고 나니 큰 문제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런데 단지 공부로만 끝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치와 생활은 하나라고 하면서도 행동은 따로 놀잖아요. 참여연대 회원이 된 이상 이제는 행동과 실천이 우선이죠.”

명료하게 요점 정리하듯 말을 맺으며 다시 덧붙인다.

“우리 사회를 바꾸고자하는 의지가 배가 되었어요. 참여연대는 알면 알수록 더 참여하고 싶은 곳이 되어버렸어요. 아예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기도 하고…. 물론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지만 지금은 의욕 충만 상태예요.”

연신 밝고 환한 얼굴이다. 그야말로 장마 끝에 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 한 자락이었다.


회원과의 접점 찾기가 참여연대의 과제

상당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한 의욕 충만 상태라 그런지 화법은 달인 수준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정해진 시간이 다 되었기에 마무리 질문을 던졌다. 시민단체의 필요성,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 참여연대에 대한 비판 등 어느 주제든 좋으니 자유롭게 발언해 달라고 하니, 그는 애정 어린 비판을 택했다.

“회원과의 결속력이 문제죠. 인터넷게시판 활기차에 미디어법을 지키기위한 ‘국민목소리 100인 지킴이’를 모집한다고 올렸는데 예상 외로 참여율이 저조하더라고요. 그렇다면 6개월 동안 8만 서울 시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서울광장 조례계정 캠페인도 마찬가지겠죠. 진짜 연대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회원들이 무엇을 바라고 어떤 프로그램으로 동참을 유도해야 하나,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또 어떤 정책이나 사업에 대해 전문가, 실행위원의 의견만 따를 게 아니라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겨레21>같은 경우는 독자편집위원을 모집해 기사 모니터도 하던데, 참여연대도 활동 평가나 회원의견수렴 창구를 만들면 좋겠어요.”

개인의 사회 참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김지현 회원은 유독 ‘참여, 관심, 조직, 한계성, 가치, 개인의 안전망, 동력, 감시, 연대…’ 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자주 언급된 이 단어들을 중심으로 시민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아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여럿이 연대해 참여하는 사회는 밝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긴 장마 끝에 쏟아지는 불볕이 풍성한 가을을 기약하듯, 지금 우리는 빗속에 서서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함께 비를 맞아주고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 비는 쉬이 그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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