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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08월
  • 2009.08.01
  • 1419
  • 첨부 5

<참여사회>8월호 '이제훈이 만난 사람'


   바람의 섬, 제주에 평화의 바람 일으키다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글    이제훈   <한겨레> 통일외교팀장
사진 김영광   사진가



제주도에서는 곧 김태환 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된다. 지금으로선 소환투표일은 8월 26일이 유력하고, 늦어져도 9월 2일까지는 소환투표가 진행될 예정이다. 광역자치단체장을 대상으로 한 주민소환투표는 2007년 5월 이 제도 시행 뒤 처음이다. 이는 제주도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한달 여만에 주민 7만 6,904명 서명


제주도 선관위는 7월 15일 “주민소환투표청구 서명부를 심사·확인한 결과 유효 서명인 수가 5만 1,044명으로, 주민소환투표 청구 요건인 4만 1,649명을 넘어서 투표 청구가 적법하다고 인정된다”며, 이런 내용을 담은 청구 요지를 공표했다.

이에 앞서 ‘김태환지사주민소환운동본부’는 6월 29일 7만 6,904명의 서명이 담긴 서명부를 제주도 선관위에 제출한 바 있다. 제주도 선관위는 7만 6,904명의 서명 가운데 무효 서명인 수가 2만 5,860명(주소 불명확 1만 4,937명, 청구권 없음 6,560명, 이중 서명 3,337명, 서명 불명확 543명, 기타 483명)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제주도민은 56만 여 명이고, 투표권자는 41만 6,490명이다. 그러니 애초 서명자 7만 6,904명을 기준으로 하면, 제주도 전체 유권자의 18% 남짓이 도지사 소환 투표에 동의한 셈이다. 선관위가 유효한 것으로 판단한 5만 1,044명을 기준으로 하면 12% 남짓 된다. ‘김태환지사주민소환운동본부’가 서명을 받기 시작한 날이 5월 14일이니 소환운동본부의 열정과 헌신뿐만 아니라 제주도민들의 뜨거운 호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횡 일삼는 도지사, 주민의 심판대에 오르다

사상 초유의 광역자치단체장 소환투표에까지 이르게 된 직접적 원인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인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로 한 결정이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과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김태환 제주지사는 지난 4월 27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제주해군기지(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과 관련한 기본협약서’를 체결한 바 있다. 2014년까지 15만 톤 규모의 크루즈선박 2척과 함께 이지스함급의 함정 등 20여 척이 동시 접안할 수 있는 항만시설과 부대시설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세계 평화의 섬’제주에 대형 해군기지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의 대대적인 도지사 소환 열기가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반대 의견 때문만은 아니다. 제주참여환경연대 등 35개 단체가 연대한 소환운동본부가 지난 5월 6일 발표한 ‘도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잠깐 보자. “…우리는 김태환 도지사의 그간 도정운영을 ‘전횡’이라고 규정합니다. 도지사가 있으면 의회가 있는데도, 주민의 대의기관인 도의회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통제될 수 없는 권력’의 표본입니다….” 하여 “특별자치가 도지사의 권력만 더 높이 세워주고 주민의 권리, 주민의 삶은 철저히 버려지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주민의 심판으로 제왕적 도지사 퇴출”을 추진하는 소환운동에 나섰다는 것이다.

헌재 판단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한 말씀’

제주도민의 도지사 소환운동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씀 하셨다’. 그런데 방향이 엉뚱했다. 이 대통령은 7월 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지역투자 박람회’에 참석해 “오늘 이 자리에 제주도지사가 주민소환 때문에 안 오신 것 같은데 국책사업을 집행하는 지사를 주민소환하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책사업은 주민소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취지로 들린다. 헌데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최종 해석권을 지닌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다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26일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이 소환 청구사유를 명문화하지 않았더라도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합헌결정을 내리며 이렇게 밝혔다. “…주민소환제는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행위, 대표자에 대한 신임을 묻는 것으로 그 속성은 재선거와 같다. 선거와 마찬가지로 사유를 묻지 않는 것이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며, 비민주적, 독선적인 정책추진 등을 광범위하게 통제한다는 주민소환제의 필요성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그 청구사유에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 …” 이 대통령이 헌재의 이런 판단에 대해 뭐라 말할지 궁금하다.

도입부가 너무 길었다. 인터뷰에 앞선 밑자리 깔기로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이번엔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을 모셨다. 고 처장은 ‘김태환지사주민소환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이자 주민소환투표 청구인 대표다. 또 ‘제주군사기지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이다. 한마디로 도지사 소환운동의 핵심이자 제주 지역 운동의 핵심이다. 이 인터뷰가 지역운동과 주민자치운동, 곧 풀뿌리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사회의 감수성을 좀 더 풍부하게 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인터뷰는 7월 23일 낮 참여연대 3층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링거 꽂고 병실 돌아다니며 서명 받기도


소환투표일은 정해졌나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예상키로는 8월 26일이 가장 유력하다. 제주 선관위가 8월 5일, 6일쯤 발의하면 도지사의 직무가 정지되고, 그날부터 20일간 소환투표와 관련한 운동을 할 수 있다.

요즘은 뭐하고 있나?

소환투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경찰이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해군기지 토지측량을 방해해 업무방해행위 등의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경찰서로 몰려가 ‘보복수사’라고 항의했다). 지난 21일엔 제주도의회가 영리병원 도입안을 통과시켰다. (이명박 정부도 추진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영리병원 도입은 국민건강보험체제를 무력화시킬 의료민영화 정책의 핵심으로 인식돼 보건의료계는 물론 정치권과 시민사회 진영의 격한 반대에 부닥쳐 있는 뜨거운 감자다). 일이 많다.


소환투표에 대한 도민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뜨거웠던 것 같은데, 그 배경을 어떻게 보나.

주민소환투표 청구 서명운동을 처음 시작할 땐 정해진 시간 안에 청구 요건(4만 1,649명, 투표권자의 10%)을 충족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거라 판단했다. 한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놀라웠다. 시민들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서명운동에 동의했는데, 특히 20~30대는 전폭적이었다. 도지사의 도정 리더십에 대한 염증이 광범함을 알 수 있었다. 해군기지, 영리병원,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내국인 대상 카지노 허용 등 민감한 갈등 사안들이 김태환 지사 재임 기간에 모두 터졌다. 모두 오랜 세월 논란을 벌여온 문제들이지만 단 한 번도 지역사회의 합의로 해결된 적이 없다.

소환투표 청구 서명운동 과정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이 특히 열심이었다. 전체 서명의 절반에 가까운 3만 5천 명 정도를 강정마을 주민들이 받았다. 서명을 많이 받은 1~3순위가 모두 강정마을 주민분들이다. 심지어 어떤 강정마을 아주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링거를 꽂고도 병원을 돌아다니며 서명을 받기도 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그렇게 열성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강정마을은 어떤 곳인가.

서귀포 서남쪽 바닷가 마을인데, 제주에서 일조량이 가장 풍부하다. 또 한자로 물 강(江) 물 정(汀)을 쓸 정도로 수량이 풍부해 서귀포 일대 식수원의 70% 정도를 공급한다. 제주도는 하천이 다 건천인데, 강정은 거의 유일하게 상시적으로 물이 흐르는 하천이 있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논농사가 가능할 정도로 토양도 비옥하다. 이런 이유 등으로 감귤과 화훼 농사가 잘 된다. 또 강정 앞바다는 바닷속 연산호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문화재보호지역이다. 강정 사람들은 아직도 자연의 혜택으로 살아간다. 군은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후보지로 선정하며, 강정마을이 인근지역에서 가장 낙후해 기지 건설로 지역이 개발돼 경제적 이득을 많이 얻을 것이라 했는데, 그런 말이 강정 사람들한테 상처가 됐다. 강정사람들은 해군기지뿐만 아니라 어떤 개발 시설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공무원 중심의 개발 만능주의와 주민 자치의 실종



김 지사는 왜 해군기지, 영리병원, 한라산 케이블카, 내국인 관광객 대상 카지노 등 논란이 심한 개발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나.

한마디로 기득권층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제주도가 겉으론 국제자유도시, 외자유치, 전략산업 육성 등 거창한 소리를 하지만, 실제론 작동양상이 전근대적이다. 1차원적 연고망에 따른 기득권 논리가 강하게 작용한다. 또 지역사회의 특성이기도 한데, 제주도는 공무원사회라고 할 정도로 공무원이 주도한다. 공무원의 엘리트 의식이 강하다. 제주도는 공무원이 7천 명 정도 되고 한해 예산이 2조 7천억 원 정도 되는데, 제주도 경제구조가 관공서 경제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도지사와 공무원들이 모든 의제를 독점하고 주민의 참여와 자치는 실종된다. 그들은 도민들을 늘 동원대상으로 여긴다.  

 최근 10년 전 신문을 뒤져봤는데, 그때 기사와 지금 기사가 거의 똑같더라. 영리병원, 카지노 등. 제주사회의 공론문화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것 같아 자괴감을 느꼈다.


세계 평화의 섬과 군사기지는 모순


제주도는 법률로 규정된 ‘세계 평화의 섬’이기도 한데, 해군기지는 이와 충돌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정부에 물었더니, 평화의 섬과 해군기지는 충돌하지 않는다는 말뿐이다. 왜 그런지는 설명이 없다. 평화의 섬에 주변국을 자극하는 군사기지를 설치하는 게 어떻게 모순되지 않는다는 건지…. 해군기지 건설 반대는 결코 님비주의가 아니다. 4·3 등 역사적 배경을 볼 때 제주는 평화의 공간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소환투표의 성립요건은 어떻게 되나? 소환투표를 통해 지사를 소환할 수 있다고 보나.

소환투표가 법적으로 유효하려면 투표권자의 1/3이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각종 재보궐선거의 선례를 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 2005년 시군통합 문제로 김태환 지사가 주민투표를 발의하고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투표를 독려했는데도 투표율이 36%였다. 현실적으로 투표 성립 요건 충족은 어렵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강정마을 사람들이나 소환운동본부나 서명을 시작할 때, 도지사 소환이 이뤄지더라도 바로 해군기지 건설 추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량정책을 펼친 도지사에게는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고유기는, 1969년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껏 살면서 육지생활 경험은 4주뿐이다. 군 입대 뒤 포항훈련소에서 4주간 교육받을 때다. 공교롭게도 군 생활도 섬인 백령도에서 해병대로 했다. 대학 생활도 제주에서 했다.

제주참여환경연대의 전신인‘제주도개발특별법반대범도민회’에서 1997년부터 상근 활동가로 일했고, 1999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이 단체의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격렬하고 긴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의 와중에 힘들 때마다 “해군기지가 들어온다고 제주 평화의 섬을 포기할 건가, 해군기지를 막아냈다고 제주가 평화의 섬이 되나”라는 도법 스님의 말씀을 되새긴다. 고유기 사무처장은 “제주를 다 평화의 섬으로 만들진 못하더라도 강정마을만은 꼭 평화마을로 만들고 싶다”고 거듭 다짐했다. 해군기지 문제로 주민들이 받은 상처가 “3대는 이어질 것”이라는 강정마을에 들어가 상처를 치유하며 평화마을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어 한다.

영리병원 도입 반대운동을 하며 의료 생협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비판을 넘어 대안을 벼리는 것이다. 제주참여환경연대의 한 회원은 그를 두고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제주도의 보석같은 존재”라며 존경의 뜻을 표했는데, 정작 그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씩 웃고 만다. ‘제주 사람 고유기’가 부여잡고 있는 꿈은  ‘누구나 자연과 벗하며 행복할 수 있는 제주’를 일궈가는 것이다. 그 꿈을 그는 제주참여환경연대 누리집 대문에 이렇게 적어놨다.
“제주도에 오면, 어린이도, 노인도, 여성도, 장애인도, 가난한 사람도, 외국인도…, 누구든지 자연과 벗하며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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