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9월 2009-09-01   1178

[이제훈이 만난 사람] 전환적 도전에 지혜로운 참여의 응전으로



전환적 도전에 지혜로운 참여의 응전으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회 부위원장


글 이제훈 <한겨레> 통일외교팀장
사진 김영광 사진가


1994년 9월10일. 참여연대가 세상에 나온 날이다. 그러니 2009년 9월10일은 참여연대 창립 15돌이 되는 날이다. 9월15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참여연대 후원의 밤 행사가 열린다. “날자, 민주주의야”라는 외침과 함께.

하여 이번엔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를 모셨다. 조희연 교수는 참여연대 15년을 늘 함께 해왔다. 94년 1대 사무처장(비상근)을 시작으로, 협동사무처장, 집행위원장, 운영위원장 등을 맡았다. 지금은 정책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이다. 그러니 말 그대로 참여연대의 산증인인 셈이다. 조 교수는 학자로서 오랜 세월 사회운동을 주목해온 이 분야 전문 연구자이기도 하다. 참여자이자 관찰자로서 조 교수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참여연대의 지난 15년을 성찰적으로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늠해보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참여연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공모델”

인터뷰는 8월17일 낮 참여연대 5층 소회의실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참여연대 창립 15돌을 염두에 두고, 참여연대와 시민운동 등에 초점을 맞췄다.

“참여연대는 1만 명의 넘는 회원이 참여한 한국의 대표적 시민단체다. 이건 한국적 성공 모델만은 아니다.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100% 재정자립을 이루고, 동시에 정부와 기업에 이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단체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참여연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모델이다.”

그는 참여연대가 지난 15년간 이룬 성과를 높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바로 그 ‘성공의 위기’를 지적했다. 지난 일보다는 ‘앞으로 할 일’을 말하고 싶은 게다.

“참여연대는 1990년대 중반에 출현했지만 1987년 6월 항쟁의 정신을 가장 잘 답지하고 이를 조직적 성과로 만들어내며 다양한 사업을 펼쳐 한국 최고의 단체로 떠올랐다. 한마디로 ‘87체제’의 적자다. 참여연대는 87체제라는 독특한 시대 질서 위에서 성공했다. 그게 지금 일정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2008년 체제’의 성립이 그 상징이다. 과거의 개발독재적 보수정권과 구별되는 신보수-신우익 정권이 출현한 것이다. 참여연대의 성공을 가능케 한 컨텍스트(주된 맥락)의 전환이다. 전환적 도전, 전환적 위기다. 그러므로 ‘성공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전환적 도전에 제대로 응전하지 못하면 참여연대의 영향력은 축소될 수 있다.”

조 교수의 지적은, 단순무식하게 요약하자면, ‘세상이 달라졌으니 참여연대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왜,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지금부터 들어보자.


권력감시운동 80%와 국민 정치적 역할20%

참여연대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나. 지속과 변화의 측면에서 짚어주기 바란다.

권력감시운동이 정체성의 핵심이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94년 창립 땐 다多정체성이었다. 당시 참여연대는 국민적 인권운동, 대안적 시민운동, 정책적 시민운동, 진보적 시민운동, 친노동적 시민운동을 지향했다. 하지만 그때도 핵심은 권력감시운동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변화하며 권력감시운동의 대상도 점차 확대됐다. 15년 전 협의의 권력감시운동이 점차 광의의 권력감시운동으로, 시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않는 다양한 권력에 대한 감시운동으로 확장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와 함께 국민정치적 역할 같은 것이 있었다.


참여연대 15년 성공의 배경을 평가한다면?

권력감시운동이 대상으로 하는 권력의 성격, 운동에 참여하고 지지하는 국민의 성격, 조직 주체의 성격 등 세 측면에서 짚어볼 수 있다. 셋 모두에서 행운이 있었다. 대상 측면에서 보면, 개발독재적 멍에를 진 약점 많은 권력이라 문제제기형 운동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었고, 국민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대중 측면에서도 참여연대형 운동에 목말라하는 이가 많아, 선도적 단체에 회원 뿐 아니라 국민적 지지가 광범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적 주체적 조건이다. 출범 초기 그동안 활용되지 않은 풍부한 인적 자원이 있었다. 참여연대 창립에는 크게 세 그룹이 결합했다. 첫째 박원순, 안경환, 차병직, 조용환 변호사 등 비판적 법학자 그룹이다. 둘째, 유팔무, 김동춘 등 비판적 사회과학자들이다. 셋째 김기식, 김민영, 이태호 등 학생운동 출신으로 사회운동으로 전화를 모색한 유능한 운동가 집단이다. 인적, 의제 풀에서 주목을 받게 돼 있었다. 이 세 측면에 변화가 오면 우리에게 도전으로 나타난다.


참여연대의 핵심 정체성을 ‘권력감시운동’으로 규정하면서도, 참여연대의 또 다른 구실로 ‘국민정치적 역할’을 거론했다. 구체적으로 뭘 뜻하는 것인가.

참여연대는 권력을 감시하는 미국의 퍼블릭 시티즌이나 콩그레스 와치 등과 같은 특정화한 권력감시단체일뿐만 아니라 국민적 의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민정치적 역할도 있었다.
참여연대의 구실에 기본적으로 두 측면이 있는 것이다. 고유의 권력감시운동과 국민정치적 역할이다. 이 가운데 권력감시가 더 중요하다. 이게 약화하면 참여연대가 제 구실을 하기가 어렵다. 권력감시운동 80%, 국민정치적 역할 20% 정도로 배합해야 한다. 이 균형감을 잃으면 조중동 등을 비롯한 보수세력의 공격을 받게 된다. 그동안 참여연대의 전통적인 국민정치적 역할은 제도 내부의 협소한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균열을 일으키며 동의를 획득해나가는 것이었다. 2000년 낙천낙선운동이 그랬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참여연대의 국민정치적 역할이 거리의 투쟁으로 협소화하는 경향이 있다. 민중운동단체와 연대하면서도 그와 차별화되는 활동영역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찰이 필요하다.      


변화된 권력, 대중, 조직주체에 맞는 한국형 사회운동을 권력감시의 측면에서 참여연대의 창립부터 지금까지를 ‘1단계 권력감시운동’으로 규정하고, 이제부터는 참여연대가 ‘2단계 권력감시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곧 ‘권력감시운동의 2단계 내실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 설명을 부탁한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우선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시작하자. 권력감시운동은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다. 권력은 그 속성상 자기절대화와 자기은폐, 부패의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권력감시운동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감시하고 맞짱 뜨는 사회권력운동이다. 자율적인 사회권력의 발현 운동이다.

과도한 단순화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차이점과 도전 과제들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제 권력감시운동의 1단계와 2단계를 몇 가지 측면에서 비교해보자. 우선 감시대상으로서 권력의 변화가 있다. 그간 권력감시운동의 효과로 권력이 일정하게 고도화하고 세련된 측면이 있다. 절차적 합리성을 맞추며 고도의 부패, 고도의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등록금 후불제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침해를 지방정부가 조정하도록 했다. 민주정부 10년간 못한 일이다. 또 시민단체의 위협 속에서 삼성 등 재벌들이 시민단체를 능가하는 사회기여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민사회 안에 재벌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부분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해 고도의 감시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대중의 능력의 변화다. 전에는 대중들이 ‘후원적 시민’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시민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고자 한다. 2002년 대선을 거치며 노사모 같은 정치참여적 대중이 출현했고, 2008년에 촛불시민들이 있었다. 이들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참여를 원한다. 이에 절적히 대응하지 못하면 참여연대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직접민주주의형 권력감시운동’ 또는 ‘직접민주주의형 시민운동’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당장은 안 될 수 있겠지만 검찰총장과 감사원장 직선제 같은 것을 상상해볼 수 있다. 그리고 교장 직선제가 중요하다. 많은 이들이 교사들에 의한 교장 직선제를 얘기하지만, 나는 지역 주민도 참여하는 직선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장 직선제만 해도 교육계 문제의 상당 부분을 풀 수 있다.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교장직선제는 ‘19세기적 교장과 21세기적 학생이 공존하는 학교’의 현실을 바꾸는 첩경의 하나가 될 수 있고, 사회민주화의 핵심 의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요컨대 대중의 참여 요구와 참여연대의 활동을 결합하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

조직 주체의 측면에서도 변화가 있다. 창립 초기엔 준비된, 자발적 대기 인력 풀이 광범했다. 지금은 헤드 헌팅을 해서라도 전문가들과 인재를 발굴해야 한다. 외부 전문가에 의존하던 데서 벗어나 ‘내부 전문 감시 역량’을 어떻게 강화할지 고민해야 한다. 권력감시형태도 ‘문제제기형 감시’에서 ‘심층취재형 감시’로 전환해야 한다. 권력감시영역도 기존의 국내 의제 중심에서 아시아와 글로벌 의제들로 확대해야 해야 한다. 이를 국제연대로 볼 것이 아니라, 적어도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미니멈을 만들어가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 참여연대쯤 되면 유엔 개혁 문제도 다뤄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안의 보편성’에 기반을 둔 한국형 보편 모델의 창출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2단계 권력감시 운동에는 ‘사회적 영역에서의 비민주적 권력에 대한 감시운동’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가 되리라 본다. 사회민주화센터 같은 것을 하나 만들어서, 이번에 문제가 된 ‘동방신기’ 문제 같은 것도 다루고, 장자연 사건 같은 것도 다루고, 교회권력, 다양한 일상 생활 속의 비민주성을 쟁점화하는 노력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비판적 지지 시대 끝나… 새로운 연합정치모델 요구”

인터뷰를 한 다음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한국현대사의 거목이었던 김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한 조 교수의 의견을 추가로 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포스트-지역주의적 정치질서, 포스트-김대중 정치를 향한 거대한 각축기가 오리라 생각한다. 특히 반독재 야당과 진보적 사회운동의 관계에서 ‘비판적 지지시대’의 종결, 민주당의 단일한 정치적 리더십 시대의 종결을 의미한다. 김대중을 상징적 중심으로 하는 반독재 야당이 저항운동, 진보적 사회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던 시대가 저무는 것이고, 이는 포스트-비판적 지지 시대의 새로운 정당-사회운동 관계 모델의 개발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당분간 ‘연합정치’시대 혹은 ‘정치연합’ 시대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헤게모니 정치집단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보수세력에 대항하는 연합적 리더십을 당분간 유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다. 여기서 나는 ‘김상곤 모델’을 생각하게 된다. 비판적 지지시대가 종결된 상황에서,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장외 급진세력까지를 아우르는 ‘윈-윈 형 정치연합’을 2010년 지자체, 2012년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실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서울, 인천, 경기 등 광역지자체선거에서 여러 정당들이 참여하는 ‘오픈 프라이머리’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진보정당이 들러리서는 과거의 민주연합 전철을 밟지 않는 새로운 연합정치모델을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진보정당이 반독재 개혁중도정당을 압도하는 유럽형 정당모델이 현실화될 수도 있고, 보수정당과 개혁중도정당만이 각축하는 미국형 정당질서로 갈 수도 있고, 심지어는 보수정당이 압도하는 일본의 55년 체제형 정당모델(자민당 장기집권체제)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럽형 정당 모델로까지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시민사회운동의 역할이 크다.”


조희연
1956년 10월 전북 정읍에서 났다. 전주 풍남국민학교와 전주북중학교를 나왔다. 그리곤 서울로 거처를 옮겨 중앙고를 다녔고, 1975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1년 남짓 옥살이를 했다. 박정희의 사망으로 복학해 1980년 졸업했다. 서울대 대학원 사회학과에 들어가려 했으나, 전두환 정권의 탄압으로 결국 연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했다. 사회운동 연구 전공자이기도 했지만, 지금껏 사회운동, 학술운동, 학문연구를 병행해 왔다. ‘조희연과 옷깃만 스쳐도 일거리가 생긴다’는 푸념 아닌 푸념이 만연할 정도로, 열정적인 조직가이자 실천가로 지내왔다. 덕분에 학계의 마당발로 통한다. 학술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와 비판사회학회 회장, 성공회대 인권평화연구소장을 지냈고, 현재 성공회대 통합대학원장과 민주주의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나이 쉰을 넘기며 삶의 패턴을 바꾸고 있다”고 했다. 실천활동과 거리를 좀 두고 이론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5년간 학자로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평하며 쑥스러운 듯 엷게 웃었다. 사회운동가스쿨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학자로서 (급진)민주주의 총서와 박정희 시대를 총괄하는 박정희 총서를 펴낼 계획을 가다듬고 있다. 한국의 현대사회운동사를 2권짜리로 정리할 생각도 있다. 짬이 나면 등산도 한다. “요즘은 이명박 시대에 부응해 자전거 타기도 하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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