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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09월
  • 2009.09.01
  • 827




성찰과 각오 새출발


박영선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또 한 사람이 갔습니다. 어떤 이는 티 없이 맑은 하늘마저 서러웠던 듯,
“날이 궂었다면 나았을까”라며 탄식했습니다. 지난 2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이래,
국상을 세 번이나 치른 셈이네요. 저 밑바닥에서 배어나오는 슬픔이 한동안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망자에 대한 슬픔의 끝에서 역설적으로 희망을 보았답니다.
희망이란 말, 참 구태의연하기만해서 평소 입에 올리기조차 꺼려했던 말인데…….
속으로 울음을 삼키며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모습에서
발견한 성숙한 열망은 희망이란 말 외에 다른 것으로 옮기기가 어려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 쏟아냈던 눈물이 분노와 결기, 그리고 무엇보다 애정과 원망의 감정 때문에
매우 뜨거웠다면 이번 죽음에서 시민들이 흘린 눈물은 고인이 남긴 마지막 유지였던
‘화해’와 ‘용서’ 의 메시지가 그대로 녹아있는 듯 따스한 눈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전직 대통령을 ‘선생님’으로 폄훼하며
국장을 트집 잡던 소인배들의 무도함에도 불구하고
고인이 평화롭게 영면할 수 있겠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김 선생, 우리 집 꼬마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제가 고인의 유지를 너무 안이하게 받아들이고 있단 걸 깨달았어요.
아이와의 대화를 거듭 복기하다보니 ‘화해’와 ‘용서’란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더군요.
저에게 큰 숙제를 남긴 얘길 해드릴게요. 추모기간 동안 아이와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을 다룬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고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버젓이 화면에 등장하는 게 이해가 통 안 되는 모양이에요.
질문을 퍼붓더라고요.
이미 아이는 80년 광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어느 정도 있었거든요.
너무 일찍 의식화교육을 시킨 거 아니냐구요?
김 선생이 아이를 키우던 때와 많이 다르답니다.
요즘엔 어린이가 읽기 쉽게 나온 현대사 책들이 많이 출판되어 있어요.
덕분에 책을 좀 넓게 읽는 아이들은 현대사에 관해 얻어들은 풍월이 꽤 된답니다.
특히 강풀이나 최규석 등의 만화가 한 몫 톡톡히 했겠지요.
아이의 질문에는 주장이 섞여 있었는데,
그 요체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투옥하고 고문했던 사람이 어떻게 최고 형벌을 받지 않고,
세상에 시위하듯 골프장 출입까지 하며 평온하게 일상을 보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 선고를 받고 ‘정치 보복을 하지 말라’고 했단 말로 대충 무마가 되려니 했지요.
하지만 아이의 질문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은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습니다.
마침내 제가 답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지요.
바로 ‘고백 없는 화해’, 나아가 ‘처벌 없는 정의’의 문제에 다다르고 만 것입니다. ‘누가 용서했느냐’는 문제도 우리 아이가 끈질기게 물고 넘어진 의문이었습니다.

생전에도 복잡다단한 정치적 계산으로 저를 혼란에 빠뜨렸던 고인은 마지막까지 쉽지 않은 과제를 던진 셈이지요. 비록 우리 꼬마는 이십 여 년 전의 과거사를 통해 진정한 화해가 무엇인지 물었지만, 곰곰이 돌아보니 화해와 용서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제가 정면에서 마주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흘러가는구나 하며 지나쳐버렸던,
그래서 결국 너무 쉽게 고인의 유지를 해석하며 나 홀로 평온함을 느끼고 있단 때늦은 반성이 들었습니다.
진정성은 온 데 간 데 없고 교묘한 정치적 계산으로만 모든 일을 없던 걸로,
지난 걸로 여겨버리는 정치권과 그리 다를 바 없던 것이었지요.
한 사람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기는 만무하겠지만,
그래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진정한 화해와 용서로 가는 길에 대한
진실한 성찰이 필요하다 싶은데, 이미 때를 놓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네요.    

요즈음 여러 곳에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단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릇 어떤 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때가 있는데,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물실호기(勿失好機 )라고 하나요. 참여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15주년을 맞는 참여연대 얘기를 빼놓고 편지를 맺을 수 없겠네요. 
요즈음 제가 열다섯이란 숫자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런지, 참여연대가 마치 파과기(破瓜期)를 맞은 사춘기 소녀 같단 생각이 들더군요.
파과기는 사춘기 소녀가 자신을 여성, 나아가 모성을 가진 여성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수립하는 단계이지요.
그 이전의 시간이 주변의 무조건적인 배려와 돌봄으로 이루어졌다면
이제 스스로 미지의 삶을 개척해야 하는 나침반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성숙의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 보다 엄중하게 그간의 활동을 되돌아보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덕목을 벼려야할 것입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퇴보해버리는 가혹한 세상의 이치에는 예외가 없어 참여연대는 어느 때보다도 깊이 있게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 소개할 참여사회연구소의 변신이 대표적인데, 한번 주목해주세요.

참여연대가 건강하게 청년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주시길 간청하며,
9월 15일, 세종홀에서 뵙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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