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9월 2020-08-28   2567

[통인뉴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차 종합계획,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개선’에 그쳐

 

글. 김경희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빈곤, 질병, 장애, 노후, 실업, 돌봄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고 각종 사회보장과 복지제도를 통해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IMF 위기 직후 1999년, 한국 사회 최초이자 최후의 사회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는 65세 이상 노인, 18세 미만 아동, 근로능력유무 등 인구학적 기준과 대상을 폐지하고 모든 시민의 인간답게 살 권리 보장을 목표로 제정되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또다시 유례없는 경제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서 “예기치 않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 속에서 불평등이 다시 악화되고 있다”며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을 반드시 깨겠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의 위기를 불평등을 줄이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부터 일찍이 생존을 걱정해야 했던 빈곤층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높은 장벽 ‘부양의무자기준’

현행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의 수급자가 되려면 그 사람이 속한 가구의 소득이나 재산 기준 외에도, 1촌의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인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을 받을 수 없다는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이때 부양의무자가구의 소득기준은 ‘부양능력 있음’, ‘부양능력 미약’, ‘부양능력 없음’으로 나뉘는데, ‘부양능력 없음’을 인정받는 것은 기준중위소득의 100% 이하일 때 가능합니다. 올해 기준중위소득은 4인 가구 기준 4,749,174원, 1인 가구 기준 월 1,757,194원입니다. 만약 부양의무자가구 1인이 현행 최저임금 8,350원 기준으로 주 40시간 일해도, 월 임금 1,795,310원으로 부양능력이 있다고 판정되는 것입니다. 

 

부양의무자기준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정 때부터 문제되어 왔습니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수급이 필요한 사람에게 부양의무자의 부양기피사유서 등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권리행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됐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본인이 수급자격을 갖추고 있어도 부양의무자기준 등으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빈곤층 규모가 2018년 48만 가구, 개인으로는 73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물론 과거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기준 범위와 소득 및 재산 기준이 완화된 것은 맞습니다. 2015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맞춤형 급여로 개편되면서 교육급여에서 처음으로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었고, 이어 2018년 10월 주거급여의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모든 부양의무자기준이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은, 중증장애인이나 기초연금을 수급하는 소득하위 70% 노인 등 인구학적 기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데 그쳐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는 빈곤층의 기초생활과 기초의료 보장을 위해 2020년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이하 ‘2차 종합계획’)에서 생계급여 및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기준을 완전히 폐지할 것을 요구해왔습니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하겠다던 약속과 선언 끝에는….

그러던 지난 8월 10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의 기초생활보장제도 운영 방향과 내용을 담은 2차 종합계획을 의결했습니다. 그 안에는 2023년까지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고소득, 고자산가 제외)한다는 계획이 담겨있었습니다. 이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시행 20년,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고 발생 7년 만에 얻어낸 값진 결과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이 남아있고, 개선 내용도 1차 종합계획에서 밝힌 수준에 그쳐, 시민사회단체들은 미흡한 조치라고 평가합니다.

 

혹자는, 어찌 됐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약속은 지킨 게 아니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2017년 당시 예비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시민사회 주최 토론회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고, 같은 해 ‘부양의무자기준폐지행동’이 19대 대통령선거 후보별 입장을 질의했을 때도 “생존권 보장책임을 개별 가족에게 전가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궁극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재차 입장을 밝혔습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또한 당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광화문농성장에 방문하여 2차 종합계획에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을 완전 폐지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약속과 선언만 무한히 반복되었음에도 “공약 파기”라는 지적에 박능후 장관은 “의료급여에 있어 부양의무자기준의 폐지는 언급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안 해도 유사혜택 있어 괜찮다?

2차 종합계획 발표 이후 보건복지부는 언론을 통해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기준이 남아있지만, ‘중증질환 및 희귀·중증난치질환자 산정특례’, ‘건강보험 차상위계층 본인부담 경감 지원’이나 ‘재난적의료비지원’ 등 유사한 혜택이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중증질환 및 희귀·중증난치질환자 산정특례’ 대상은 중증 및 희귀난치성질환자로 제한되어 있고, ‘차상위계층 본인부담 경감 지원’ 또한 희귀난치·중증질환자, 만성질환자, 18세 미만 아동만 해당됩니다. 심지어 ‘차상위계층 본인부담 경감 지원’은 소득인정액이 기준중위소득 50%에 미달하여 선정기준에 부합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부양의무자기준이 있어,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어야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감당할 소득이나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만 부양의무자로 남게 되는데, 이들의 문제는 건강보험으로 풀 수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해명도 적절치 않습니다.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만 월 5만 원 이하의 건강보험료조차 납부하기 어려운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 발생 문제가 있습니다. 결손처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때뿐이고 보험료를 재체납, 장기체납하는 문제가 계속 발생하게 됩니다. 보험료를 체납한 사람들이 당장 병원을 이용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연체액과 의료비 독촉 및 고지, 납부 독려를 받다보니 아파도 아예 병원 이용을 하지 않는 사람이 21%에 달한다고 합니다. 결국 빈곤한 사람들은 의료급여에서도 건강보험에서도 적절한 의료보장을 받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국민의 기본권 실현을 위해 부양의무자기준 전면 폐지 해야

 

“(…) 아이는 커가고 드는 돈은 더 많아지는데 어느 날 구청에서 연락을 받았고 무슨 일인가 하니 (이혼한) 남편의 소득이 높아져 아이의 차상위본인부담경감이 해지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정을 설명하였고 구청에 가서 서류를 써서 다행히 아이의 차상위본인부담경감이 해지되진 않았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너무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친정아버지와는 단지 통화를 한다는 이유로 부양의무자가 되어 수급자가 될 수 없었고 아이는 얼굴은커녕 목소리조차 들어본 적 없는 아빠의 소득 때문에 의료지원을 받지 못할 뻔 했습니다. (…)”

–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한 수기공모전> 대상 수상작에서 발췌

출처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국가가 마땅히 시민의 기초생활과 기초의료를 보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에게 온전히 책임을 전가하는 불합리한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매일 밤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가난하다는 이유로 몸이 아파 좌절하고, 죽음에 떠밀리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부는 모든 국민의 기본권을 실현하고 차별 없이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약속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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