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8월 2009-08-01   1053

칼럼_망각하지 않음으로 시대의 주인이 되는




망각하지 않음으로 시대의 주인이 되는


박영선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날씨도 시국을 닮아가는 걸까요. 연일 폭우 아니면 폭서가 계속 되네요.

밤새 그치지 않던 올 장맛비는 어김없이 막대한 피해를 낳고 말아 어려운 사람의 살림은 더욱 곤

궁해지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폭우가 쏟아진 다음 날이면 집 앞 개천으로 ‘물 구경’을 나가곤 했는데,

김 선생도 저와 같은 기억이 있으신가요? 평소 우습게만 보이던 작은 개천이 하루 밤새 무섭게 불

어나 무시무시한 유속을 과시하며 온갖 것들을 휩쓸고 내려왔지요. 황톳물에 둥둥 떠다니던 돼지

를 보며 전전긍긍하던 기억을 떠올리다, 문득 쌍용자동차 공장 70미터 굴뚝에서 농성을 하며 <굴

뚝편지>를 써 보내던 서맹섭씨가 떠올랐습니다.

그가 굴뚝에 올라간 지 벌써 두 달이 넘어 가는데,

그를 까맣게 잊고 있었군요. 거의 매일 ‘해고는 살인이다’는 구호를 앞세운 노동자와

‘수 천 명이 아니라 이십 만 명의 문제’라며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있는 사측의

‘전쟁 같은 하루’가 보도되는데도 그저 그렇겠거니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도 결국 망각의 대상이 되고 말았네요.

제가 그를 기억해 낸 날은 마침 쌍용자동차 노조 조합원의 아내가

어린 두 아이를 남겨둔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었습니다.

부랴부랴 그의 <굴뚝편지>를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엔 굴뚝을

‘마치 파도 위의 조각배처럼 심하게 흔들리게 하는’ 바람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고 멀미가 난’다고
합니다.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는 한 발짝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를 ‘굴뚝 끝에 웅크리고’ 있게 하는 모양입

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날도 고되기는 마찬가지이겠지요. 폭염이 ‘굴뚝을 이글이글 타오르게’ 하여

‘살을 태워버릴 것’ 같고, 숨을 가누기도 어려운 지경이라네요. 굴뚝 아래 상황이 안 좋으면

식사마저 올라오지 않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다보면 설사가 계속되고, 탈이 날까 아예 굶기도

하고. 굴뚝 위아래 상황이 모두 전쟁입니다.

편지를 읽다보니 어렸을 적 아빠의 손을 잡고 떠내려 오던 가축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때

의 심정이 그대로 재연됩니다. 한 마디로 속수무책. 

평소 닭 보듯 무심하다 어저다 관심을 가지니 속수무책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 해결이 요원한 채 시간만 흐르는 사안이 쌍용자동차만이 아닙니다. 용산참사는 벌써 반년이
되었습니다.

김 선생, 용산 참사가 빚어진 때가 한 겨울이었던 1월 20일이었다는 걸 기억하세요?

유가족들이 더 이상 장례를 미룰 수 없다며 ‘시신 메고 광장으로 나가겠다’는 일종의 최후통첩에

도 정부는 요지부동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야당의원들이 대화 창구를 만들어 장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보도가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역시 지지부진한 모양입니다.

참사 6개월이 되던 날, 천구의식이 있었지요. 당연히 경찰은 모든 길목을 막았겠지요.

병원 측도 유족들이 장례식장 비용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시신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답니다.

그 보도를 접하고 나니 참 슬프데요. 김 선생. 희생자들의 장례를 못 치르는 게 장례비용 문제 때

문일까요.

슬픔 뒤에 부끄러움이 밀려들더군요. 쌍용자동차 농성과 마찬가지로 용산 참사도

천구의식이 있던 날에서야 겨우 냉동고에 가두어져 있는 피해자와 영안실에서 학교를 다녔던

그들의 어린 자녀들을 기억의 저편에서 꺼낼 올 수 있었으니까요. 

무의식적인 망각 때문에 부정의를 그대로 두는 경우도 많지요. 신영철 대법관 문제가 대표적입니

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리던 날,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한

대법관 판결이 있었는데, 기억하시나요? 이용훈 대법원장마저도 ‘대법관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건만, 신 대법관은 용퇴는커녕 매우 적극적으로 대법이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무죄 취지 판결을 내리는 데 기여했지요. 이건희 씨에게 면죄부를 부여한 그 판결 직후 잠깐 신

대법관에 대해 국회의 탄핵소추권 발동을 촉구하는 법학교수의 서명이 있었지만, 그 뿐이었습니

다.

최근 국회의사당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미디어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의 직권상정 처리 소동에

서 보듯 한국이 워낙 대형사고(?)가 많은 사회라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자의 반박도 있지만…

우리는 많은 것들을 망각 속에 버려두고 있습니다.

‘인간다운 삶’ 같은 가치는 어떤 순간에도 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지만, 

너무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어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만 겨우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때때로 분노도 차곡차곡 기억의 한편에 쌓아둘 필요가 있는데, 소멸기한이 있는 듯 하루만 지나

도 무슨 일 때문에 화가 치밀었는지조차 까마득합니다. 저는 요즘 같은 정국에서 분노는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의 정당한 의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어제 밤 『회남자』에서 ‘나라의 치욕을 떠맡는 자, 그를 사직의 주인이라고 한다’는 노자의 경구

를 읽으면서 더욱 확신이 들었지요. 슬픔은 어떤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서처럼 힘이 되

는 슬픔은 가능하면 우리 마음에 오래도록 머무르도록 하고 곱씹는 게 필요하겠습니다. 부끄러움

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부끄러움을 망각하는 순간은 사람의 도리를 망각하는 순간과 같을 것입니다.

이렇게 김 선생에게 몇 자 적다보니, 그동안 기억의 저편에 가둬 두었던 일들이 마구잡이로 떠오

르는군요.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겁거나, 해법이 난망하여 일부러 잊고자했던 일들까지 기억납니다.

대부분 우리 사회의 치부와 관련된 일이에요.

망가져가기만 하는 현실 속에서 무력하기만 했는데…

망각의 리스트에서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면서 힘을 찾아야겠어요.

무더위에 건승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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