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6월 2004-06-01   1080

지금 이라크는 미군의 불법무기 창고

민간인 대상으로 대인살상무기 등 국제적 금지 무기 사용

이라크를 떠난 지 이제 5일이 지났다. 무언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다. 물론 매일같이 바그다드 거리 어디에선가 폭탄이 터지고 밤마다 누군가 죄없는 이라크인 한두 명이 미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라크와 이곳 서울은 전혀 다른 세계임에 분명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괴리감은 그런 물리적인 차원에서 오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어떤 일을 보는데 있어서 나의 감정과 나의 견해가 전혀 달라졌다는 것에서 오는 느낌이다.

왜 미국을 싫어하냐고?

이라크에 있는 동안 어쩌면 나는 거의 일반 이라크인들의 정서에 동화되어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들처럼 느끼고 그들처럼 분노하고 그들처럼 겁먹고… 그렇기에 이곳에 돌아와서 며칠, 사람들이 “이라크인들은 왜 그렇게 미국을 싫어하는 거지? 왜 이렇게까지 저항하는 거지”라고 내게 물었을 때 무어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솔직히 상당히 당황했던 것이다. 그곳에 있는 한 달동안에는 너무나도 당연했던 사실이 이곳에 와서는 구체적인 분석과 설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였나 보다. 돌아오기로 한 날 아침, 비행기를 타기 몇 시간 전에 갑자기 내가 “나 안 갈래. 더 있을 거야”라고 선언했을 때 다큐를 찍는 미국인 룸메이트는 아무 말 없이 자기가 직접 내 짐을 싸서 들고 내려갔다. 그리고 내 등을 떠밀면서 말했다.

“너 지금 이라크에 너무 많이 빠져있어. 너 자신을 잃고 있다고. 이러다가 너 정말 미쳐버리고 말 거야. 지금 돌아가. 돌아가서 네가 사는 곳에 앉아서 네가 함께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네가 쓰는 글, 네가 찍는 사진들을 볼 사람들은 바로 그 사람들이야. 네가 동화되어 있는 이라크인들이 아니란 말이야. 냉정해질 필요가 있어. 지금 너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너의 나라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거, 그걸 설명해야 하는 것이 네 일이야.”

너무도 냉정하게 나를 밀어내는 친구에게, 그때는 조금 서운했었다. 그리고 돌아갈 곳이 있는, 안전하고 행복한 삶이 마음만 먹으면 기다리고 있는 나와는 달리 도망갈 곳도, 피할 곳도 없는 이라크인들을 두고 온다는 것에 바보처럼 힘들어했다.

그렇지만 그가 옳았다. 이라크에서 이라크인들과 똑같이 미군을 보면서 겁을 집어먹고 저절로 욕이 나올 만큼 분노했던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했던 사실, 왜 이라크인들은 그렇게

미군을 싫어하고 미군에 저항하는지를 설명해달라고 사람들은 내게 묻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처럼 벌어지는 무차별 감금과 무차별 총격, 매일같이 내 주변의 누군가가 잡혀가고 목숨을 잃는 이라크의 상황을, 그 안에서 그들이 겪는 아픔과 분노를 설명해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도 어쩌면 나는 너무 흥분해 있다. 빨리 냉정을 찾아야 한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그러니 여기서도 일단 감정을 털어놓는 건 이쯤에서 그만하고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상황 중의 하나를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해 보자. 주제는, 미군의 불법무기 사용이다.

첫 번째 사진은 5월 1일 봉쇄가 풀리면서 팔루자에 들어갔을 때 한 모스크 앞에서 찍은 것이다. 이 모스크는 미군의 팔루자 공격이 한참 절정을 이룰 무렵에 미군 탱크와 폭격기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군의 공격으로 파였다는 이 모스크 앞마당의 웅덩이는 지나치게 크다. 도대체 어떤 무기를 사용했길래 너무 깊어서 하수 오물이 차올라왔을 정도로 크고 깊은 웅덩이가 파였던 것일까. 그리고 이것이 기껏해야 칼리슈니코프 소총이나 RPG(로케트추진총유탄)를 들고 싸우는 무자헤딘들을 상대로 하는 싸움에서 필요했던 무기였던 것일까.

무차별 공격에 무차별 희생

두 번째 사진도 같은 날 팔루자에서 찍은 것이다. 팔루자 주민들은 기자들에게 미군이 팔루자에서 국제적으로 금지된 무기, 클러스터 폭탄과 같은 대인살상무기를 사용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가지고 놀까 두려워 모래 속에 파묻어두었던 파편들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사진 속의 청년이 들고 있는 것이 그 중 하나다. 프로펠러처럼 날카로운 칼날이 여러 개 달려있는 이 무기는 당시 바그다드에 같이 머물던 다른 기자들도 처음 보는 것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폭탄이 터지면 그 안에서 수십 개가 튀어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인살상무기, 금지된 무기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팔루자 주민들은 이런 폭탄이 25일간의 미군 공격 동안 매일같이 거리에 투하됐노라고 증언하고 있었다.

세 번째 사진에서 보이는 팔루자의 도로에 그대로 남아있는 흔적들도 이들 팔루자 주민들의 증언을 뒷받침해준다. 시멘트 도로에 수없이 파여있는 흔적들은 총탄 자국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클러스터 폭탄의 파편 자국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한 작은 도시 팔루자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무기들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금지된 무기들을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했던 것이다. 팔루자에서 거의 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것은 그러니 어쩌면 너무도 예측 가능한 결과였던 셈이다.

다음 사진은 더욱 충격적이다. 바그다드 알 사드르 시티에 사는 자바 사야 무소위 씨는 16살난 아들 자말의 목숨을 앗아간 미군의 총알 파편들을 다 모아서 간직하고 있었다. 지난 4월 4일, 마을 공터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가 미군 탱크의 공격에 겁을 먹어 차 안으로 몸을 숨긴 16살 소년에게 미군은 무려 73발의 총알을 쐈다. 그런데다가 이 총알 파편들은 일반 총알들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 폭발해서 다리나 팔에 맞더라도 ‘확실하게’ 사람을 죽이도록 고안된 총알로 역시 국제적으로 금지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 이 총알은 칼로 일반 총알에 흠집을 내는 식으로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자말에게 사용된 총알도 그렇게 미군 병사들이 만든 것이었다. 막사에 앉아서 칼로 하나하나 총알에 흠집을 내면서 미군 병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엇을 기대했을까. 혹여 저희들끼리 낄낄거리며 농담을 주고 받고 있지는 않았을까. 국제적으로 엄연하게 금지된 무기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한 마을에서 16살난 소년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미군, 그 미군에 대해 소년의 아버지가 분노하고 저항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닐까.

강은지 (민족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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