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5월 2010-05-01   3140

김용민이 만난 사람_김영경 청년 유니온 대표: “개척자 기상으로 좌절하는 20대를 깨운다”



“개척자 기상으로 좌절하는 20대를 깨운다”


김영경 청년유니온 대표


김용민 시사평론가     사진 김영광 사진가

지난 해 6월, 필자는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라는 제목의 글을 한 대학신문에 기고했다. “나는 지금 너희에게 데모할 것을 부추기기 보다는 도리어 만류하겠다. 왜냐면, 이미 너희는 뭘 해도 늦었고, 너희의 단점, 즉 뒷모습을 이미 이명박이 목격했기에 어설피 저항했다가는 더 가혹한 보복만 당할 것이므로. 그냥 조용히 공부하고, 졸업해서, 삽 들고 안전한 삶의 길을 모색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또 너희가 소화하기 좋은 유일한 충고이다.”

‘매운 맛을 원 한다’는 학생 편집자의 요구에 부응해 지금까지 나왔던 20대 담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하게 썼고,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정도가 당시 최고 위험 수위에 근접했던 글이었다.) “너희 세대는 제치고 10대에게 올인 한다”라며 라이터를 켰던 것이다. 그런데 그즈음 ‘20대는 못났다’는 식의 어른 세대의 지적에 삭히고 삭혔던 분기奮起가 가득했던 터라, 나는 평생 들은 욕의 곱을 단시간에 접하게 됐다.


20대의 빈곤과 불평등, 노조로 눈뜨게 해

많은 20대가 나에게 묻는다. ‘어째서 이게 다 20대의 책임이냐’라고. 물론 나는 ‘20대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나아가 ‘피해자일 뿐’이라고 두둔한다. 그렇다고 한정 없이 옹호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을 불러온 가해자, 즉 그릇된 사회구조는 개선할 의지가 없는데 개선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변화를 추동할 몫은 그대들에게 있다”고. “아울러 지금 20대의 실존적 문제는 앞선 세대의 고민이기도 했다고. 하지만 그 어떤 세대도 지금 20대처럼 동정 받지는 않았다고. 이젠 그 자조와 한탄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라”고.

이런 와중에 이 사람을 만났다. “선배세대는 문제없습니까? 거대한 기득권 체제에 동화 됐잖습니까? 이로 인해 발생한 구조적인 모순을 방치하지 않았습니까?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한 이들이 ‘아파트 시세차익에 달관한 재테크의 달인’, ‘사교육 시장의 맹주 또는 최대 소비자’가 돼 버린 것은 무슨 연유인가요? 게다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자본의 지배를 강화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맞서 더 이상 투쟁하지 않는 태도도 궁금합니다.”

정곡을 찌르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우리나라 최초의 청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의 대표 김영경씨다. 20 대가 주도했던 4·19혁명, 그 50년 되던 날인 2010년 4월 1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4층 회의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이 구조적인 문제는 20대 혼자의 힘으로 풀어갈 수 없습니다. 기성세대, 팔짱 끼고 ‘더 분투해봐’ 이런 식의 값싼 동기부여로 끝낼 일이 아닙니다.”

이 주장에 무게감을 잔뜩 싣는 이유는 다음 이어질 말에 있다.

“대학 재학 중에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이른바 ‘운동권’이었습니다. 등록금 인하 등의 캠페인을 주도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의로운 에너지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졸업 후 생계를 위해 또 갚아야 할 학자금을 갚기 위해 삶의 현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원 강사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기자가 꿈이었는데 일을 시작하니 고시 준비는 전혀 불가능했습니다.”



꿈을 접은 것이다. 대다수 20대의 이야기도 따지고 보면 다르지 않다. 졸업 이후, 그들에게 펼쳐지는 세상은 온통 좌절의 늪이다. 기본이 실업 상태이고, 조금 발품 팔면 인턴, 아등바등해야 비정규직이다. ‘신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범접하기 힘든 게 정규직이다. 비루한 현실이다. 말 그대로 ‘OTL(좌절)’ 상태이다.

“좌우를 돌아 봤어요. 나만 이러는 게 아니더라고요. 상하도 봤죠.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를 내주는 곳이 없었어요. 사람들을 모았죠. 빈곤과 불평등을 조장하는 현재의 난국을 돌파할 방법이 없는지 소모임 형태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일본 수도권 유니온의 사례를 접하게 됐어요. 2000년에 만들어 2008년 12월 파견법 투쟁을 펼쳤던 사람들의 이야기지요.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리고 ‘사고’를 치게 된 겁니다.”

일본 수도권 유니온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봤다.

“일본은 한국의 3년 뒤 미래라고 하잖아요? 일본은 지금 파견 노동자 문제가 심각합니다. 일본 20~30대가 대부분 파견직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2008년에 파견법을 개정하는데, 500명이 대규모 해고된 거예요. 문제는 파견직으로 일하면서 기숙사를 제공받았던 이들이 해고되면서 노숙자가 양산된 점입니다. 일본의 지성이 깨어났습니다. 전국 자원 활동가 1,000명이 모이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걸 보면서 일본 사회에서도 큰 성찰이 이뤄졌습니다. 우리는 못할까 싶더라고요.”



20대가 결집하면 정부 체제 위협?

여기서 청년유니온의 개념을 짚어보자. 이것은 노동조합이다. 청년(만 15세~39세)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세대는 물론 지역, 성별 단위의 노조 설립도 가능하다. 이를 테면 ‘종로구 노동조합’ ‘여성 노동조합’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청년유니온은 아직 법외 노조이다. ‘조합원 중에 구직자도 있는데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신청서를 반려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허 사유의 전부일까.

“실업자조차 노조 설립이 가능하다는 게 판례입니다. ‘잠재적 노동자’로서 더 나은 노동환경을 요구하는 것이 온당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신청서 반려는 정치적 해석이 개입된 것으로 봅니다.”

사실 불물 안 가리는 청년 계층이 사회적 모순에 항거하기 위해 결사체를 구성한다면 긴장하지 않을 권력이 없을 것이다. 이게 ‘정치적 해석’의 요체이다. 실제 정정길 대통령 실장은 2008년 10월 청년실업이 심화돼 20대가 결집할 경우 “정부나 체제가 위협받을 수도 있는 수준”의 위기가 온다며 우려한 바 있다.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개중 하나는 지난持難한 과정을 거치는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행정소송을 통해 권리를 찾는 방안입니다. 또 하나는 ‘구직자는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해 청년 아르바이트생 노조를 우선 설립하는 방안입니다. 무엇으로 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노조는 온전한 돌파구가 될까. 아닐 것이다. 김영경 대표의 생각도 같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는 사회적 패배자로 인식됩니다. 권익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부나방이 돼야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만연할 만큼 노동환경도 척박합니다. 초등학교 교과과정에서부터 노동3권 교육을 실시하는 유럽과 참 대비됩니다.”


소모품 취급받는 노동자… 나만 부자 되면 그만?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을 소망하지 않는다. ‘부자’ 되기를 바랄 뿐이다. 왜 그럴까. ‘노동자’는 ‘뛰어봤자 벼룩’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정규직 비정규직의 신분상 차이가 서류에서나 존재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휩쓸고 간 뒤, 노동자는 자본의 소모품이 돼 버렸다. 비루함? 부자가 되면 사라질 걱정이다. 그래야 탈세 횡령 등 질 나쁜 범죄를 서슴지 않으면서도 ‘정직하게 살라’며 대중을 우롱할 수 있지 않은가. 공장에서 얻은 백혈병으로 꽃다운 일생을 마감하는 비극도 피할 수 있지 않던가. 20대의 생각도 이러하다. “나는 뭐 빠지게 공부했다. 대학 와서도 연애할 시간 줄여가며 학점 관리, 어학 실력 향상, 스펙 쌓기에 몰입했다. 부모님으로부터 매년 1,000만 원씩 받아서 학교에 갖다 바쳤다. 사회는 나에게 보상해야 한다”라고.

그런데 한 달에 88만 원이란다. 도대체 20대는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대접을 받을까. 이는 거의 모든 20대가 품고 있는 울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탄식으로만 끝낼 일인가.

“우리는 당사자입니다. ‘나는 결국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럴 때 대안이 생깁니다.”

난해하지만 간단하다. 20대의 문제는 ‘당사자’라는 인식의 부재와 직결된다. ‘내가 좀 더 용쓰면 불안하지 않은 직장 즉 대기업 또는 공기업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만의 행복’, 이게 궁극적인 답이 될 수 있을까. 이 상황을 좀 더 구조적으로 살펴서, 무한 경쟁체제와 엇물려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현실을 내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직시하고 함께 해법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김영경 대표가 말하는 ‘당사자 운동’이 바로 이것이다.

“저도 청년 구직자가 중소기업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기업만 지망하지 말라’며 수반된 대책도 없이 저렴한 립 서비스만 남발하는 정부 입장과 같지 않습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청년들이 굳이 대기업에 눈 돌릴 필요가 없도록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한 해 중소기업이 직원에게 주는 임금과 대기업에 상납하는 로비자금, 어느 것의 규모가 더 클까요? 게다가 원청과 하청 위치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 구조는 얼마나 투명한가요? 뜯어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중소기업에 갈 수 있는 겁니다.”

서대문역 근처에 위치한 청년유니온 사무실

청년유니온은 이런 고민이 집산된 현장이다. 20대 노동자들이 모여 들어 서로 하소연하면서 위로하는 장이 되고 있다. 어느 정도 모일까. 온라인 회원 1,400명이지만 실제 조합원은 100명 선. ‘과연 나에게 유용한 모임’인지 판단 유보층이 아직은 절대 다수이지만 저항은 커녕, 응집도 잘 안 된다는 20대의 현실을 따져본다면 이 정도도 상당한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침묵하는 다수가 많아 걱정입니다. 개인의 의지력 부족 아니면 불이익에 대한 우려 때문일까요. 이런 현실이 김예슬 씨의 ‘학교 거부 선언’을 낳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고려대 경영학과 재학생 김예슬 씨가 쓴 ‘대학을 자퇴한다 아니 거부한다’ 선언문의 첫 문장부터 누선을 자극받았다고 김영경 대표는 말한다. 나는 물었다. ‘김예슬 씨도 결국 문제의 해법을 개인의 결단에서 찾았다. 연대의 힘을 배제한 것 아닌가’라고.

“불과 입학한지 한두 달밖에 안 된 대학 1학년 조합원도 자퇴를 생각하고 있어요. 순진한 생각 또는 치기어린 행동일까요. 아닙니다. 현실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 대학, 그러면서 부모님에게는 고생을 잔뜩 전가시키는 자신, 싫다는 것이죠. ‘옳은 해법이냐 아니냐’ 이 논란을 이미 벗어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대 아픔, 세대간 공감대로 희망 품기를


그렇다면 무엇을 어쩌자는 것일까.

“자신의 아픔을 사회에 내놓는 겁니다. 어느 세대도 못하는 문화 예술적 접근으로요. 그리고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해야 합니다. 청년유니온은 그 장이 될 겁니다. 가능성이 있어요. 총회를 열면 제 시간에 끝난 적이 없습니다. 요구와 의견이 많은 세대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가정 이야기를 물었다. 벌판에 서서 황무지를 기경起耕하는 딸의 활동을 어머님은 알고 계실까. 괜한 심려를 끼쳐 드리는 것은 아닐까.

“학생 운동하는 것을 학교 다닐 때부터 알고 계셨죠. 하지만 청년유니온에 대해서는 모르셨어요. 그러다 방송뉴스를 보신 모양이에요. 전화를 주셨어요. 너무 짠했어요. ‘영경아, 너 뉴스에 나왔더라. 네가 잘하고 있으니까 나왔겠지’ 이러시는 거예요.”

그러나 현실에서 김영경 대표는 경찰서에 불려 다니는 ‘불온한 젊은 여성’이다. 4월 4일 명동에서 10분 간 플래시 몹 행사를 했는데 경찰이 와서 제지하더니 며칠 뒤 불법집회를 했다며 조사받으러 나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편하고 번거로운 일상이 ‘당사자 운동’의 물꼬를 트는데 일조한다면 언제든 기꺼이 불려나갈 뜻이 있단다. 개척자의 기상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잊어선 안 될 점이 있다. 이 푸른 ‘당사자’들은 우리의 손자 손녀요, 아들딸이요, 형 누나요, 삼촌 이모가 된다는 것이다. 시민운동이 섬겨야 할 또 하나의 주체가 될 것이고.

“‘너희들이 침묵하니 이런 꼴 당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만 말씀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청년들은 억울합니다. 꼬인 매듭, 함께 풀기 위해 연대해주셨으면 합니다.”

진보하는 역사를 종종 수레바퀴에 비유하지 않던가. 축 하나만으로는 한 보의 진전도 어렵다. 신자유주의라는 수렁에 빠진 20대가 모든 선배세대에게 손을 내밀었다. 비정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함께 이겨 나가자고. 그래서 말한다. 희망여부를 쉽게 예단하며 펼친 나의 ‘20대 담론’에 심각한 성찰의 부족이 있었다고. ‘세대는 없고 시대만 있다’는 말을 숙고하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되묻게 된다. ‘20대의 현실에서 비단 20대만이 당사자로 국한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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