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7월 2008-06-02   296

칼럼_소녀들 그리고 소

소녀들 그리고 소

박영선『참여사회』 편집위원장 baram@pspd.org

5월의 날씨가 꽤 알쏭달쏭했지요. 한낮은 덥고,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여 하루에 여름과 가을을 동시에 누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몸이 부실한 사람들은 감기로 고생깨나 했는데, 김 선생은 무탈했습니까? 

오늘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서 느낀 단상을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김 선생도 촛불집회 한 편을 차지하고 있었을 텐데, 한 번도 못 만났네요. 예전에는 으레 집회에 가면 동반할 누군가를 찾느라 전화기에 불이 나곤 했는데, 요즘에는 그냥 빈 자리가 눈에 띄면 그 곳에 앉아 촛불을 켜게 됩니다. 아무래도 여느 집회와 다른 구석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처음 촛불집회에 간 것은 중고생들을 ‘구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뿔난 시민들이 판을 벌였는데도 미적거리다 뒤늦게 소문난 잔치 구경하듯 간 셈인데, 정말 놀랐습니다. 많은 10대 소녀들이 교복을 입은 채로 정성껏 만든 피켓들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 하도 낯설어서 ‘왜’하는 의아심까지 들었지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친구들의 성난 함성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닌데, 전체 관람가 영화를 보러 갈 때조차 교복 대신 사복을 챙기던 저와는 너무도 달랐기에 낯선 눈초리로 그들을 관찰만 했던 거지요. 

그런데 김 선생, 며칠 동안 소녀들을 보기 어려웠지요. 아마도 교육부에서 학교에 공문을 내려보내고 교사들이 직접 학생들을 색출한다고 엄포를 떨기 시작한 때이겠지요. 다행히 그들은 다시 촛불을 들고 우리들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외모는 조금 바뀌었더군요. 교복을 벗고 대신 사복을 입은 친구들이 많아졌고, 어떤 친구들은 마스크를 쓴 채 단상에 올랐습니다. 순간 슬픔이 복받치더군요. 마치 그들에게 재갈을 물린 것 같아서요. 누가 10대들의 당당함을 가둔 것일까요? 어떤 신문에서는 촛불집회에 나오는 중고생들을 아예 웃자랐다고 하더군요. 실소가 터져 나올 만큼 유치한 칼럼이었지만 아마 10대들은 저처럼 웃어넘기지 못했을 거에요. 그래서 저는 미국산 쇠고기 개방이 가져올 식품 안전이나 한미관계 등 현실적 문제 외에 우리들이 10대들에게 범한 죄의 후과가 더 두렵습니다. 한편에선 무시하고, 다른 한편에서 협박하며 그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던 우리들에게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인권을 유린하지 말라고 절규했지요. 그들에게 남겨진 상처가 어떻게 잘 아물 수 있을까요.     
 
참, ‘휴메인 소사이어티’라는 미국의 동물 보호 단체가 제작한 동영상을 보셨나요? 일명 다우너(downer cow)들이 오물 더미에서조차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물 호스나 지게차의 철판에 떠밀려서야 겨우 몸이 일으켜지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그런데 저와 다른 이들의 관전 포인트가 매우 달랐습니다. 다우너들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고, 그 소가 한국에 수입되면 큰일이라고 이구동성일 뿐, ‘소’에 대해서, 소를 둘러 싼 비인도주의적인 환경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지금 한가하게 소를 생각할 때냐고 나무라는 분위기였지요. 당혹스러웠습니다. 마침 한 나라의 보건 정책을 책임지는 이가 소가 10년은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둥 어쩌고저쩌고 하는 바람에 창졸간에 저도 철딱서니 없는 부류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김 선생. 이제는 우리도 소에 대해, 동물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아닐까요? 인간 광우병에 걸릴 사람의 위험뿐 아니라 광우병에 걸릴 소의 위험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자는 주장에 대해 ‘사람이 중하지, 사람보다 소가 더 중요하냐?’고 한심해하는 풍토는 이제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의 권리가 더 중요한가 따지기 전에 인간과 동물이 모두 자연의 소산이니 사람이든, 소든 자연스럽게 태어나고 자라고 죽을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요? 김 선생도 알고 있는 것처럼 독일이나 스위스 등은 이미 헌법 개정을 통해 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헌법적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습니까?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선 한국 사회에서 동물권을 헌법화할 가능성은 아주 없겠지만, 적어도 동물들이 인간과 같은 생명체임을 인정하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만행 때문에 광우병이 발생했다는 것은 이른바 초딩들도 다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광우병을 ‘자연의 섭리를 뒤바꾼 인간의 욕심이 빚은 소의 복수’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요. 상황이 이러한데도 우리들의 싸움은 SRM(광우병위험물질)으로 분류된 부위의 쇠고기 수입만을 막고자 하고 있지요. 저는 이참에 좀 더 나아가야 한다고 봐요. 광우병을 발생시켰던 인간의 반 인도주의적인 행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동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광우병 발생 원인에 대해서 외면하고, 광우병 발생 가능성만을 좁히려는 관점으로는 이런 재앙을 막을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니까요.

제가 아무리 인간이지만, 인간의 이기적인 관점으로만 사는 것이 종국에는 인간 사회를 몰락케 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말이 길어졌습니다. 헤아려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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