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4월 1999-04-01   449

의약분업, 어디쯤 가고있을까?

의약분업,어디쯤 가고 있을까?

새 정부 출범 이후 보건의료 분야의 주요 국정과제이자 개혁과제였던 의약분업이 추상 같았던 초기의 실시 의지가 실종된 채 기력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다.

의약분업 추진위원회에 참석한 학계, 소비자 대표들이 의약분업 실시여부조차 못미더워하며 불만을 나타내자 최선정 복지부 차관은 단호한 어조로 답변했다. “여기는 의약분업 추진 위원회다. 의약분업을 실시한다는 방침은 이미 굳혀진 것이고 여기에서는 단지 그 방안만을 확정짓는 자리이다.” 이러한 답변이 있은 후, 의약분업 추진 위원회는 4차례에 걸친 회의를 진행해 대략의 골간을 확정짓고 시민단체 등의 중재에 따라 의-약계 합의에 의한 수정안을 마련하려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뜻하지 않았던 국민연금 파동으로 인해 엉뚱하게도 의약분업 논의가 또 다시 실종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의약분업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도 순식간에 비판-반대 일색으로 돌변했다. 한 라디오 프로에서 시민의 의견을 직접 물었더니 예상과 달리 강경 반대 의견이 봇물처럼 터져나와 프로그램을 마련한 취지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다. 의약분업을 무산시킬 기회만 엿보던 의-약계의 반대세력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연기-불가론을 목청높이 외치고 있다.

나는 애당초 의약분업 논의를 국민연금의 파도에 단번에 좌초될 지경으로 허약하게 만든 정부에 그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약분업을 실시해야 할 당위성에 대해 정부는 그저 ‘하기로 되어 있던 것이며, 선진국에서 하는 제도이고, 약제비 비중이 크고, 약의 오남용으로 항생제 내성이 많이 생겼다’는 정도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사실 문제의 일면에 불과할 뿐 의약분업 실시의 근본 취지라고 볼 수 없다. 필자는 약국을 통해 의료보험을 취급하면서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약국의 조제-투약 행위에 대해 지불되는 진료비의 산정 근거가 약사들이 제시하는 서류에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단에서는 형식적인 서류 검토를 통해 적정액(?)을 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간 수십 억 원에 달하는,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의료보험료가 이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집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약국뿐만 아니라 병·의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행위당 수가제’라는 복잡한 우리나라 보험료 지불방식의 본질이며 보험료가 엉터리로 지급될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이다.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가 동일한 환자에 대하여 업무를 분담함으로써 한측의 조작에 의한 부당청구의 소지가 원천적으로 줄어든다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돈’의 문제만이 아니다. 진료, 투약 내용이 공개됨으로써 전반적인 진료 내용의 투명성이 증가하고 의사, 약사의 책임성이 강화되며 환자의 보호와 알 권리가 보다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의약분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약값 마진율 저하로 입는 손실을 수가인상으로 보전해 주겠다고 해도 여전히 반대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도 바로 투명하게 드러날 진료내역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의약분업은 보건의료제도의 전근대성, 불합리성을 종식시키고 환자중심의 진일보한 보건의료제도를 정착시킨다는 뚜렷한 원칙과 철학을 갖고 대처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정부는 처음부터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하지 않았다.

정부는 의약분업에 뚜렷한 원칙과 철학도 없이 접근했다는 점말고도 정부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의약분업의 많은 쟁점들 즉, 의약분업의 범위와 처방방식, 병원 외래환자의 처방강제화 등 구체적 사례들에 대해 의-약사간의 절충을 구하는 것 외에 국민의 현실에 입각한 현장조사가 전혀 없었다. 의-약사간에 성분명과 상품명 방식의 이견이 있다면 같은 성분의 여러 상표를 수거하여 그 구체적 약효를 직접 검정해 보고 양 제도에 의한 분업시의 비용과 효과를 비교평가하는 사업을 긴급하게 진행하여 사실에 입각한 정부의 입장을 확보하였어야 함에도 그런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전혀 발견할 수가 없다. 의, 약 양 단체는 ‘의료기관들이 현재 모두들 어려운 형편이며 지금 이 시기에 투명성을 강화한다면 의료 공급기반이 무너진다’고 입모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위상을 제고하는 일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합리적인 보건의료제도를 재건설한다는 취지에서라도 세세한 방법론에 집착하는 태도를 일신하고 1년 후에라도 시행이 가능하도록 보다 확고하고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신광식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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