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1월 2014-01-09   5401

[통인] 국회의원 은수미는 불행하다, 그래서 귀하다

참여사회 2014-01월호

국회의원 은수미는 불행하다,
그래서 귀하다

 

최지용

사진 박영록

 

 

초선에 비례대표. 국회 ‘짬밥’은 얼마 안 되지만, 살아온 역사에서 내공이 결코 낮지 않다. 노동운동가에서 노동 연구자로, 이제는 노동 국회의원으로 쉼 없이 달려왔다. 그는 노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경제, 노동 없는 복지라는 웅덩이에 전력으로 돌을 던진다. 그 파문이 번져 노동으로 출렁일 때까지 던질 태세다. 전력투구를 하는 만큼 그의 몸과 마음도 지쳐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도 말한다. 어쩌면 그래서 그가 귀하다. 그의 불행이 노동자의 행복이 될 테니까. 불행한 은수미 국회의원을 만났다.

 

 

지난해 노동 관련 사안뿐 아니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까지 폭넓은 활동을 보여줬다. 활동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현장의 강한 요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의원이 된 건 정치를 통해 노동을 이야기하라는 강력한 사회적 요구 때문이에요. 그래서 책임감과 의무감이 강합니다. 사실 저는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해지고 싶어요. 전 노동정책 연구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의원이 되고 최근에 현장을 다니다 보면 그럴 수가 없어요. 노동 현장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리는지……. 그럴 때마다 무력감에 빠지지만 그 책임감으로 버팁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제가 제 손으로 의원이 된 게 아니기 때문에 쉽게 그만 둘 수는 없죠.

 

최근 ‘노동자’를 지칭할 때 ‘일하는 시민’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유가 있나?

노동권은 헌법으로 보장된 시민의 권리입니다. 시민주권의 역사는 곧 시민이 노동권을 획득해 나가는 역사입니다. ‘일하는 시민’은 시민의 노동권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이에요. 의도적으로 ‘노동자’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대중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질 때가 있어요. 특히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때 그래요. 자신들이 회사원이나 직장인이라고 불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근로자나 노동자라는 단어는 굉장히 낯설어 해요. 노동자라는 단어로 정면 승부를 할 때도 있지만 좀 더 설득력이 필요한 자리에서는 ‘일하는 시민’이라는 말도 함께 쓰고 있습니다. 

 

최근의 현안 중 하나가 삼성전자서비스의 문제다. 지난해 10월 31일 노동자 최종범 씨가 전태일 열사를 말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때 어떤 심경이었나?

그날 밤에 울었어요. 마침 그날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사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해서 위장도급과 하청 서비스 기사 처우 문제를 따지고 있었어요. 사실 국회가 움직여주면 조금이라도 희망을 갖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너무 부족했다’는 자괴감이 순식간에 몰려들었어요. 사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계속된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어요. 이번에도 그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했죠. 또 다른 죽음이 없도록 노력해야지, 내가 버티면 그나마 같은 일은 반복되지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견뎠습니다. 

 

최근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삼성전자 사장단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성과가 별로 없었습니다. 의회에 들어올 때부터 하청 문제만큼은 해결하고 싶었어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죽음은 순서가 있어요. 하청부터 죽습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서는 불법파견이나 위장도급 문제를 다루지는 않아요. 하지만 최종범 씨의 장례도 못 치르는 상황에서 이 문제만큼은 해결해야겠다고 했어요. 삼성전자서비스 본사와 그 하청업체, 노조, 을지로위원회가 참석하는 간담회를 열어서 장례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지만, 삼성 쪽에서 거절했습니다. 사회적 대화를 안 하려고 해요.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동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국회의원으로서는 고인의 장례를 치르는 것과 같은 실질적인 문제 해결도 매우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한데 그렇게 하려고 들지 않죠. (인터뷰 이후 삼성전자서비스 하청업체들의 위임을 받은 경총과 노조가 사측의 사과, 근로조건개선, 유족 보상 등의 내용에 합의해 지난해 12월 24일 최종범 씨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국회에 들어오면서부터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 (쌍용차를 인수한) 마힌드라 본사도 방문했다. 어떤 대화를 나눴나?

국내에서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지 못해 인도 마힌드라 본사를 방문하게 됐습니다. 타임지에서 마힌드라 회장을 꽤 괜찮은 기업인으로 소개했더군요. 여지가 있겠다 생각하고 여야가 같이 가기로 했는데 여당 의원들이 다 빠졌어요.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여지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됐죠. 앞으로도 더 만나기로 했고,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해 정치 지형에 변화가 생긴다면 더 큰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 취임 1년이 되는데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철도노조까지 공공부문의 노조 탄압이 가속화 되는 모습이다.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 폭주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민간부터 노조 탄압 전술을 쓰기 어려우니까 공공부문부터 치고 나가는 거죠. 전교조, 공무원노조, 철도노조의 사례 모두 결국 노조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입니다. 삼성만 무노조 경영인 줄 알았는데, 박근혜 정부가 무노조 국가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100일을 맞아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를 발표했을 때, 은 의원께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구체적인 정책 방향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평가는 어떤가?

일자리 정책은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가장 핵심적인 정책입니다. 그 방향이 사회 전체의 빈곤을 키우는가 줄이는가를 봐야 하죠.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시간제 일자리는 빈곤을 키우는 방식입니다. 간단한 예가 시간제 공무원에게 겸직을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제 일자리만으로는 생활에 충분하지 않으니 다른 일도 할 수 있게 하는 거죠. 결국 그 일자리가 생계형 자구책이라는 의미예요.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 현재 64% 정도의 고용률을 70%까지 높이겠다는 건데, 남성의 고용률은 이미 70%가 넘어요. 많은 여성들이 결혼하면 일을 그만두기 때문에 여성의 고용률은 55%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간제 일자리의 핵심은 경력 단절 여성들의 일자리입니다. 그런데 그런 여성들은 집에서 주부로 있는 것과 사회 활동의 기회비용을 따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최소 120만 원 이상의 임금이 보장되지 않으면 여성들이 사회로 나오지 않습니다. 시간제 일자리가 지금 수준의 처우와 단기계약직 정도의 고용 방식으로 밖에 안 된다면 결국은 청년들이 건너가는 일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참여사회 2014-01월호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과 함께 한국노동연구원에 있었다. 방 장관 취임 초기에 합리적 보수라는 평가와 함께 학자로서의 양심에 기대를 한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까지 그 생각에 변함이 없나?

그런 기대를 했었죠. 지금은 아닙니다. 그런 기대를 했던 것은 노동연구원이 파업하는 과정에서 방 장관이 보여준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정부에 반대하는 제 입장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것 때문에 탄압을 받는다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여주셨어요. 그런 일관된 태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분에게 기회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하는 것에서 그 원칙이 무너졌고, 삼성전자서비스의 근로감독 결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둘 중 하나는 원칙을 견지했어야 했죠. 저는 이제 방 장관이 정부의 압력에 맞서 노동권을 지키는 일을 포기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년 반 동안의 의정 활동 중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못 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엇인가?

솔직히 잘했다고 자부하는 건 없어요. 노동문제는 제대로 언론에 보도가 되지 않습니다. 정책을 이야기하면 주목하지 않아요. 정쟁이 일어나야 기사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언론은 정당에 정책이 없다고 비판하죠. 어느 사업장의 하청 문제를 해결하면 미담은 되지만 뉴스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노동권이 확립되는 걸 보여주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정치라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는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계속 도전해야죠. 

 

지나치게 겸손한 건 아닌가? 그래도 꼭 하나 잘한 일을 꼽는다면?

사실 해결한 일이 꽤 많기는 하죠. 지금 기억이 나는 건 티브로드라는 케이블 업체 관련 사안입니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큰 기업인데, 여기도 원하청 문제가 있었죠.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건물에 들어가 점거농성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어요. 제가 노사 양측을 다 불러놓고 정말 책임을 질 것이니 노조는 파업을 풀고, 사측은 교섭에 나서 달라고 중재를 했어요. 결국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중재해 교섭이 타결됐습니다. 을지로위원회에 대한 신뢰가 꽤 높아졌다는 걸 느껴요. 사실 저 혼자만 한 일은 아니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올해는 노동의 문제를 정치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 잠재적 가능성은 생겼다고 믿습니다. 

 

활동가나 연구자일 때와 국회의원인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 생각보다 국회의원 힘들지 않나?

지금이 제 삶에서 가장 불행한 시기입니다. 제가 과거에 운동을 하거나 연구를 할 때는 꽤나 잘 웃고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국회에 들어온 1년 6개월 동안은 별로 행복한 적이 없었어요. 국회의원은 굉장히 불행한 직업이에요. 어떻게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매일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제 평생의 화두는 노동입니다. 죽을 때까지 그 길로 갈 것입니다. 의원이 됐으니 노동을 화두로 정치를 실현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가려고해요. 

 

의정 활동 2년이 되면 상임위원회를 바꿀 수 있다. 앞으로도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할 생각인가?

상임위를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환경부,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에게도 얘기했어요. 계속 할 거라고. 당신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계속 여기에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올해는 넘어가도 내년에 다시 기억해 묻겠다고 했어요. 긴장들 하고 있겠죠?

 

2014년에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민주당의 지지율을 올리는 겁니다. 저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건 국민이지만, 그런 기회를 준 건 민주당이었어요. 민주당의 국회의원으로서도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을 정말 서민의 정당으로 만들어서 민주당이야말로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의석이 많은 야당이 아니라 국민의 사랑을 받는 야당을 만들어야죠.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국회의원은 식물인간과 다르지 않아요. 지방선거에서도 이겨야죠. 

 

 

최지용 오마이뉴스 기자
오마이뉴스에서 2013년까지 4년 동안 환경과 노동을 담당했다. 잠시 다른 분야에서 일하게 됐지만 결국 노동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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