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3월 2014-02-28   5773

[역사]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삼일절 기념식으로 시작되는 봄의 길목 3월이다. 3·1운동은 남북이 함께 기억하고 기념하는 거족적인 항일 투쟁이다. 주목할 건, 남한에서는 성대히 기억하고 기념하는데, 북한에서는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유관순이다. 16살의 나이에 만세 시위를 이끌다가 체포되어 지독한 고문 끝에 이듬해 서대문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한 유관순, 그는 남한만이 기억하는 민족의 ‘열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명 소녀에서 일약 조선의 잔 다르크로

 

3·1운동 직후인 1920년에 박은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썼다. 여기에는 3·1운동 당시 전국적인 시위 현황이 세세히 기록되었다. 하지만 충남 천안에서 일어난 시위를 기록한 대목에 유관순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방이 될 때까지 3·1운동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유관순은 없었다.  

 

유관순의 존재가 새삼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해방 직후였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조선의 잔 다르크’로 부활했다. 잔 다르크는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적 소녀로 알려진 인물이다. 유관순은 왜 조선의 잔 다르크라 불렸을까. 일제 시기 사람들은 유관순은 몰라도 잔 다르크는 잘 알고 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이 독립 의지를 촉구할 때나 조선총독부가 침략 전쟁에서 조선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조국애를 운운할 때도 그녀의 숭고한 희생은 빠질 수 없는 격려용 단골 메뉴였다. 적국의 장수와의 사랑을 그린 『잔 다르크의 사랑』이란 통속소설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이 잔 다르크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무명 소녀였던 유관순이 일약 조선의 잔 다르크로 주조되었던 것이다.     

 

참여사회 2014-03월호

 

친일-우익-기독교 합작 프로젝트

 

유관순을 처음 세상에 알린 이는 이화학당에서 그녀를 가르쳤고 감옥에서 조우했던 박인덕과 해방 직후 이화여자중학교 교장으로 있던 신봉선이었다. 두 사람은 친일 활동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여성계 인사들이었다. 그렇다. 유관순은 자신들의 친일을 덮어 이화학당을 여성 민족 지도자의 산실로 재포장하려는 동창들에 의해 민족적 영웅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유관순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에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익 인사들도 적극 가담하면서 1947년 10월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가 발족했다. 

 

해방 정국의 혼란 속에 유관순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는 일사불란하게 추진되었다. 1947년에 기념비가 건립되었고, 이듬해에는 유관순 전기가 발간되었고, 기념 영화가 만들어져 상영되었다. 유관순 전기를 쓴 사람은 목사이자 소설가인 전영택이었다. 전기는 유관순이 밤마다 몰래 하느님께 조국의 광복을 기원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전영택은 유관순의 삶과 죽음을 “신의 선택”이라 추앙했다. 윤봉춘 감독이 만든 유관순 영화도 기독교적 순교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여기에 언론이 가세했다. “작년(1947년) 처음으로 일부 식자 간에 알려져 유 처녀의 장엄한 일생을 아는 사람은 아직 드물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녀를 “억만 인을 감동시킨 불세출의 영웅” 자리에 올려놓았다.  

 

진실만으로 영웅은 탄생하지 않는다

 

유관순이 어린 나이에 만세 시위로 체포되어 고문 받고 옥사한 것은 분명한 진실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희생은 기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그런데, 친일-우익-기독교 합작의 유관순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는 오히려 그녀의 삶에 허구적 이미지를 덧씌워 죽음과 맞바꾼 희생의 가치를 훼손했다. 전기와 영화 속의 유관순은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고 희생한 영웅이고 성웅이다. 늘 하느님께 독립을 기원하는 기도를 잊지 않고 잔 다르크의 전기를 탐독하면서 자신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것임을 각오한다. 감옥에서도 혹독한 고문에 굴하지 않고 매일 용감하게 독립만세를 외치다 결국 의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이렇게 그녀의 삶과 죽음의 진실에 대해 역사학보다 먼저 정치가 나서 영웅화를 시도하면서 만들어낸 ‘유관순 열사’의 이미지는 지금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무엇보다 유관순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훼손한 것은 그녀의 항일로 자신의 친일을 덮으려 했던 유관순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의 주체들이라 할 수 있다. 1966년에 이화 80주년을 맞아 선정한 이화인에는 친일에 앞장섰던 김활란과 함께 유관순이 포함되었다. 이화학당 출신으로 친일 행각을 펼친 또 한 명의 여류 명사인 모윤숙은 1969년, 그러니까 박정희 정부 시절에 자유와 정의를 위해 저항을 불사했던 유관순을 따라 젊은 한국을 재건하고 통일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로 시작되는 노래 속 유관순에 대한 기억은 자랑스럽지만, 유관순의 영웅화 과정은 참으로 쓰디쓴 여운을 남긴다.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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