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10월 2015-10-02   67645

[특집] 청년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들

 

청년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들

 

 

글. 이선희 미디어홍보팀 간사

 

참여사회 2015년 10월호 (통권 227호)

삼포 세대. 인생에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 신조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1년. 5년 사이 삼포는 인간관계와 집을 더해 오포로, 꿈과 희망을 더해 칠포로, 외모와 건강을 더해 구포로 늘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9월 22일 한 일간지에 실린 논설에서는 말한다. “내가 네 나이일 때 나는 주어진 대로 살았다. 너희는 ‘삼포 세대’라면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만 우리는 그런 것 몰랐다. (중략) 실력이 있으면 사법시험도 붙고 은행도 들어갔지만 그게 안 되면 벽돌도 나르고 리어카도 끌었다. 분수에 맞게 벌고 살림을 차려 부모님께 손주를 안겨 드려야 되는 줄 알았다. 그게 주어진 대로 살았다는 뜻이다. 너희는 ‘포기’가 무슨 선택쯤 되는 줄 알더라만 나는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모든 어른들이 청년들의 ‘포기’를 나약한 투정으로 여기지는 않겠지만, 무엇이 청년들을 이토록 힘들게 하는지 공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월간 <참여사회>는 청년참여연대 회원을 대상으로 청년들의 고민과 한국사회의 문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물었다. 전체 청년의 목소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몇 퍼센트’라는 통계로 뭉뚱그릴 수 없는 청년들의 속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청년들의 고민 1순위는 무엇입니까?

참여사회 2015년 10월호 (통권 227호)

청년들이 요즘 가장 고민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절반의 응답자가 ‘취업’이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오랜 구직활동으로 인한 자존감 하락과 사회적 관계의 결여가 심각하다”고 그 이유를 밝히며, “주변의 친구들과 경쟁하고 비교하면서 열등감이나 패배감을 느낀다. 뒤처지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주택, 출산, 등록금, 취직 모두 돈과 결부된 문제”라는 이야기에서 결국 모든 고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열심히 노력해도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미래 앞에 청년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경쟁에 지쳐있다. 그리고 공허하다. “기어코 명문대에 들어가고 정규직이 되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칠 뿐, 삶은 공허하기만 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청년들의 삶이 힘든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참여사회 2015년 10월호 (통권 227호)

그러면 청년들은 자신들의 삶이 이토록 고단한 이유를 어디에서 찾고 있을까? 다수의 청년들은 소득 양극화와 사회안전망의 부재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신자유주의’라는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아도 사회안전망이 해체되고, 실질 임금이 하락하면서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것은 대다수가 삶으로 느끼는 문제다.  지금의 20~30대들은 어린이 · 청소년 시절에 IMF외환위기를 겪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가속화된 소득양극화는 부모들의 삶만 파괴한 것이 아니다.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면 단순히 노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금전적 여유가 필요하다. 기본적인 스펙을 쌓는 데도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간다. 부모님의 경제적 사정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대학에 입학하는 것부터 외국어/해외연수 등 스펙을 쌓는 것, 취업에 작용하는 인맥을 만드는 것 등은 청년들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삐끗하면 쓰러져서 못 일어날 것 같다. 실패할 자유, 도전할 자유가 없다”는 그들의 불안감을 배부른 투정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더불어 입시경쟁, 스펙경쟁, 취업경쟁의 굴레는 그들에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해답을 찾는 것마저 어렵게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학 입시만 바라보면서 살았고, 대학 와서는 취직만 바라보면서 살았다. 다른 형태와 내용의 삶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참여사회 2015년 10월호 (통권 227호)

먹고 사는 것에 집착하는 세태를 가리켜 ‘먹고사니즘’이라고 한다. 경제적 성장과 호황이 지나고 찾아온 불황기, 저성장의 시대에 청년들이 느끼는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 ‘먹고 사는 것’이었다. 청년들은 “부모의 가난이 대물림된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줄 복지제도가 필요하다”며 일자리·복지와 소득(경제)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 못지않게 부각된 키워드가 있다. 바로 정치 문제다. “경제 양극화가 심각하다. 이에 따라 세대간, 지역간, 집단간 갈등이 심화된다”는 지적은 갈등을 조정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정치가 부재함을 드러낸다. “정치가 개혁돼서 노동자, 청년, 소수자를 위한 정당이 생겼으면 좋겠다”, “정치가 국민을 대변하지 못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다양한 현실을 경직된 정치구조가 담지 못한다”는 답변은 다수의 청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왔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잘 작동해야 한다는 점을 청년들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더불어 경제적 어려움과 갈등이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서 국민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해 지고, 묻지마 범죄가 증가하며,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하게 된다는 점도 지적됐다. 

 

2030년을 전후해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는 무엇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참여사회 2015년 10월호 (통권 227호)

모든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 지금의 청년들도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될 것이다. 지금 청년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회문제는 비단 자신들이 처한 현실만을 생각하기 때문일까? 15년쯤 지나 지금의 청년들이 중장년층이 되는 2030년에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는 무엇이 될 지 물었다.  

 

일자리·복지 문제는 향후에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청년들은 내다봤다. 이와 함께 등장한 키워드는 ‘저출산·고령화’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량은퇴와 이에 따른 노동수급 불균형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낮은 출산율로 인한 노동인구의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고 청년들은 말한다. 여기에 연금문제를 비롯해 노인세대와 갈등이 깊어질 것을 걱정하는 응답도 많았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세대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10년 뒤 연금 문제는 세대갈등의 결정체를 보여줄 것 같다”,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해지는데 해결의 움직임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저성장·경제위기, 민주주의 후퇴와 정치부패의 문제도 저출산·고령화와 일자리·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의 연장에서 이야기 되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당신만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참여사회 2015년 10월호 (통권 227호)

청년들은 자신들이 당면한 처지를 걱정하면서도 이것이 다른 세대와의 갈등으로 불거질 것을 염려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은 해결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당신만의 방법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일부의 청년들은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어떤 세대도, 어떤 집단이나 전문가도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명확히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청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청년들이 무기력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사회참여와 연대’다. “사회 현안에서 도피하는 지금의 정서를 적극적인 참여의 정서로 변화시키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개인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같은 이해를 가진 사람들끼리 단결하여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비록 내 삶이 고단하고 해결이 요원해도,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의 중요성도 잊지 않았다. “국민의 목소리를 골고루 대변할 수 있도록 정치를 개혁하고, 시민단체와 정당 및 시민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책적인 면에서는 역시나 경제양극화 해소, 복지나 일자리 확충이 중요한 문제였다. 특히 부자증세(조세정의), 최저임금 인상, 기본소득 도입, 무상교육, 임대주택 확대, 노동시간 단축 등 구체적인 정책 방향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었다. 경쟁하는 삶, 공허하고 외로운 삶이 지속되지 않도록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답변도 있었다.

 

삼포세대와 표백세대를 넘어
삼포세대 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2011년 발표된 소설『표백』은 기성세대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젊은이들의 ‘인생 포기’현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공고한 자본주의와 제도화된 민주주의. 젊은이들에게 세상은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꽉 짜인 곳이다. 어떤 아이디어도 새롭지 않고, 모든 대답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그저 기존에 정해진 답을 빠르게 체화하는 것만이 경쟁력이 된다.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그 속에서 청년들에게는 도전해야 할 무엇도, 변화의 가능성도 없다.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사회라는 ‘다음 단계’를 꿈꾸며,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주체로서 뚜렷한 이념과 이상을 갖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표백 세대는 지배 이념에 맞서 그들을 묶어주거나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이념이 없으며, 그렇기에 원자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낙원’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이상향은 있을 수 없기에, 표백 세대는 혁명과 변혁에 관한 한 아무런 희망을 품을 수 없다. 이들은 사회를 비난할 권리조차 박탈당한다.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 세대의 실패는 그들 개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살을 선언하지만, 혼자 조용히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살을 ‘선언’하는 방식은 ‘포기’가 아니라 ‘외침’에 가깝다. 이렇게 옴짝달싹 할 수 없게 옥죄는 세상이 정말 옳은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그러나 친구들의 자살을 지켜보는 주인공은 끝내 자살 선언에 동참하지 않는다. 자신도 밤마다 자살을 꿈꾸고, 친구인 세연의 자살 선언에서 위안을 받기도 했지만, 구원을 받을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모순이 쌓이지 않는다는 세연의 주장에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힘은 이제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 시대에 태풍은 곧 몇 번 들이치리라 생각한다. 그때 그 에너지를 이용하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많은 일을. 그건 그 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공고한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위기를 드러내고, 그 속에 포진한 제도들은 완전하지 않으며, 민주주의는 삐걱거린다. 그렇기에 소설은 윤곽만 있을 뿐 속이 단단하게 채워지지 않은 세상에서 청년들이 해야 할 일들은 더욱 많다고 역설한다. 어른들에게는 청년들이 포기를 선택으로 여기고, 자신들의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소설 속의 ‘나’처럼, 그리고 사회 참여와 연대, 정치개혁 등 사회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청년들의 응답처럼, 이들은 표백된 세상에 섬세하게 색을 입히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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