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복/불복
공포의 탄저균 택배가 배달됐다
글. 이미현 평화국제팀장
어느 날 갑자기 편지 한 통이 날아든다. 봉투에 든 종이를 꺼내들자 의문의 하얀 가루가 공기 중에 날린다. 열흘쯤 지났을까. 어느 날 호흡이 곤란해졌고 정신을 잃는다. 눈을 뜨니 중환자실이다. 옆에 누워 사경을 헤매는 사람은 편지를 배송했던 우편배달부다. 그도 같은 증상이라고 한다.
서스펜스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사건은 2001년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바로 ‘탄저균 편지 배달’ 사건이다. 미량의 탄저균이 묻은 편지가 배달됐고 이를 받은 사람들, 편지를 배달했던 우편배달부, 편지를 받은 사람의 가족들이 ‘공포의 백색가루’ 탄저균에 노출되어 총 22명이 감염되고 5명이 사망했다.
단순 배달사고가 아니다
이같은 고위험성 세균 탄저균이 한국에도 배송됐다.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잘못’ 배송되었다는 살아 있는 탄저균의 위력은 익히 알려져 있다. 아주 적은 양으로도 치사율이 80~95%에 이르는 고위험성 병균으로 100㎏을 공기 중에 살포하면 100~300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1). 이와 같은 치명적 무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탄저균을 대량살상무기로 만드는 실험으로 발전했다. 과거 일본 731 부대가 탄저균을 에어로졸로 살포했고, 영국은 스코틀랜드 그뤼나드섬에서 탄저균 폭탄 실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특히 그뤼나드섬은 포름알데히드 수백 톤으로 섬 전체를 소독하고서야 46년 만에 탄저균을 제거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위력을 알만하다.
이처럼 대량살상무기로도 쓰일 수 있는 특성상 탄저균의 개발, 생산, 저장, 취득, 비축은 국제조약인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 금지되어 있다. 또한 국내법인 「화학무기·생물무기의 금지와 특정화학물질·생물작용제 등의 제조·수출입 규제 등에 관한 법률(생화학무기금지법)」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에 의해서도 반입·이동시 사전신고·허가를 받도록 엄격하게 관리·통제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번에 반입된 탄저균이 ‘비활성화’된 줄 알았기 때문에 사전 신고하지 않았다며 폐기했으니 별일 아니라는 식이다. 정부는 주한미군측이 “사死균을 국내에 반입하려 했던 것”이라고 해명한 사실을 들어 “대한민국 국내법 위반이 아님을 설명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국내법은 물론 국제법 어디에도 탄저균의 활성화 여부를 구분지어 규제하고 있지 않다.
반면 우리 정부는 탄저균 반입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그 경위에 대해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 군 당국은 북한의 생물무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2011년부터 한미 연합 생물방어연습Able Response을 진행하고 있고, 2015년 완료를 목표로 지난 2013년 이래로 한미 공동 생물무기 감시 포털Biosurveillance Portal을 구축하고 있다. 생물무기 방어와 관련하여 이렇게 밀접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주한미군이 어떤 물질을 반입하고 어떤 실험을 하고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탄저균 실험을 진행하면서 살아있는 샘플을 보낸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초 스티브 워렌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 내 9개주 연구시설과 오산기지에만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송되었고 그 외 해외기지에 오배송된 건은 없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속속들이 밝혀지는 진실은 한국을 비롯해 캐나다, 영국, 호주, 일본까지 총 5개국 69개소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보내졌다는 것이다. 일본 역시 2005년에 살아있는 탄저균을 받은 바 있다고 한다. 운이 좋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뿐이지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미 국방부의 위험천만한 배송은 계속되었다.
탄저균 자체가 문제다
미국의 탄저균 실험의 위험성과 위법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탄저균 실험이 중단되지는 않을 듯하다. 미군은 생물 탐지 및 분석 능력을 배양시킨다는 이유로 2013년부터 ‘합동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 위협인식JUPITR, 이하 주피터’이라는 프로그램을 오산, 용산, 평택, 군산 4개 기지에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실험과 훈련이 진행되고 있는지, 생화학무기로 사용되는 각종 세균은 어떻게 운송·처리·취급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탄저균보다 10만 배나 독성이 강한 ‘보툴리눔2)’?까지 실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군은 “북한의 생물위협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한반도에서의 생물방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고 변명하지만 한국을 시험장 삼아 대량살상무기를 활용한 실험을 했다는 사실은 용납하기 어렵다. 생물무기는 방어용과 공격용으로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방어용 실험에 사용되는 탄저균이라도 언제든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이 모두 가입하고 비준한 생물무기금지협약에서 선한 의도를 갖든 아니든 어느 누구도 개발, 사용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럼에도 6월 14일 한민구 국방장관은 정보가 공유만 된다면 “미군의 ‘주피터 프로그램’ 같은 것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며 한반도 내 생물무기를 활용한 실험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이 없다는 태도를 드러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행태를 용인할수록 이를 계기로 한미 양국관계의 고질적인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애초에 미군이 생화학무기금지법과 감염병예방법3)을 무시하고 어떠한 사전통보나 신고 없이 국내에 탄저균을 반입한 것이 문제지만, 한국 정부가 미군이 들여오는 위험물질에 대해 어떠한 통제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이유인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역시 문제다.
현행 SOFA에 의하면 주한미군이 탄저균을 포함한 그 어떤 대량살상무기를 반입하더라도 군사화물에 대한 세관 검사를 할 수 없다(9조 통관과 관세). 또한 SOFA 26조의 보건과 위생 분야를 규정한 항목을 적용하더라도 질병 발견시 미군 자체적으로 조치 후 한국 정부에 사후 통보하도록 되어 있어 한국 정부가 실제 고위험성 세균과 같은 위험물질의 국내 반입을 사전에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과거 미군이 한강에 포름알데히드를 무단방류했을 때나 방사능 무기인 열화우라늄탄을 국내에 반입했을 때, 한국 정부는 미군의 오염물질 및 위험물질의 반입과 처리에 대해 어떠한 통제권한도 행사할 수 없었다.
이것이 과연 마지막일까?
과연 이번에는 불평등한 SOFA를 개선할 수 있을까? 국내 비판여론에도 정부의 개정 노력은 요원해 보인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6월 16일 있었던 국회 국방위의 현안질의 시간에 SOFA 개정 관련 질의에 “권고사항 정도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지금껏 유감성명조차 발표하지 않았고 합동조사단을 꾸린다는 말만 한 채 미국의 자체 조사만을 기다리는 무책임하고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로는 곧 실시된다는 합동조사단에서도 미군의 설명을 읊조리는 것 이상의 진상조사 결과를 얻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공포영화는 흔히 ‘이게 끝인 줄 알았지’ 하는 스산한 여운과 함께 끝난다. 이대로라면 공포의 대상이 시즌2를 핑계로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더 이상 한반도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미국이 생물무기와 같은 위험물질의 반입 및 실험을 계속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우선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하고 그 과정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또한 국제사회가 합의한 바대로 어떤 생화학무기를 활용한 실험 및 훈련도 중단하도록 해야 한다. 탄저균의 악몽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각주
1) 6월 1일 시민사회 공동으로 관련 정부 4개 부처에 보낸 공개질의서에 대한 보건복지부 답변 인용
2) 미육군 생물과학 부문 책임자 피터 이매뉴얼 박사는 2013년 3월 미 방산산업협회 주최의 포럼에서 주피터 프로그램의 독소 분석 1단계 실험 대상은 “탄저균과 보툴리눔 에이형 독소”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3)생화학무기금지법 제12조(수입규제)에 따르면 생물무기로 활용될 수 있는 탄저균 수입과 보유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감염예방법 제21조(고위험병원체의 분리 및 이동신고)에 따르면 고위험병원체인 탄저균을 이동하려는 자는 고위험병원체의 명칭, 분리된 검체명, 분리 일시 또는 이동계획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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