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10월 2017-10-01   790

[경제] 청하와 노동친화적 성장

청하와 
노동친화적 성장

 

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출생. 서울대와 미국에서 경제학 공부,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조교수로 근무,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근무 후 홍익대 경제학과에 현재까지 재직 중. 화폐금융론이나 거시경제학에 관심이 많음.

 

 

청하를 아십니까?
“청하를 아세요?” 이렇게 대학 동료들에게 물으면 백이면 백 “술 아닙니까?” 이렇게 답이 나온다. 물론 청하는 술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 답은 완연히 달라진다. “아, 걸그룹 IOI 출신 솔로 가수요?” 그렇다. 청하는 자칭 타칭 우리나라에서 춤을 제일 잘 춘다는 가수다. 혹자는 이효리와 현아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고까지 평하기도 한다.

가수 청하를 모르는 대학 동료들에게 준비된 후속 질문은 “여자친구를 아세요?”다. 절반쯤 되는 아재들은 “아, 걸그룹 아닙니까?” 하고 아는 척을 한다. 그러나 이들은 또 다른 후속질문에 다시금 좌절한다. “혹시 여자친구 소속사가 어딘지도 아세요?” 이걸 아는 아재는 이미 ‘아재’가 아니고 ‘덕후’급이다. (참고로 필자는 청하 또는 여자친구 및 그 소속사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음을 미리 밝히고, 이 글이 그들에게 어떤 형태로도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청하의 소속사는 MNH라는 신설 기획사이고, 여자친구의 소속사는 쏘스뮤직이라는 중소형 기획사이다. JYP, YG, SM 등 대형 기획사가 떵떵거리는 가요계에서 이들 신설, 중소형 기획사의 모습은 거의 잘 보이지 않는다. 그 회사에 소속된 연예인들의 성공 사례 역시 가물에 콩 나듯 찾아보기 쉽지 않다. 청하와 여자친구는 바로 그 드물게 보이는 사례다. 과장을 보태면 ‘개천에서 용이 난 사례’라고나 할까.

특히 청하의 경우는 매우 드라마틱한 데뷔 과정을 겪은 것으로 알려진다. 당초 JYP의 연습생으로 들어갔다가 회사와 무엇이 잘 안 맞았는지 퇴사한 후, 알바생 노릇도 하다가 <프로듀스 101>이라는 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실낱같은 데뷔의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필자가 이처럼 청하 또는 여자친구의 사례를 상세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사례가 필자가 늘 주장하는 ‘노동친화적 경제성장 정책’에 여러 가지 중요한 함의를 주기 때문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아이돌 산업  
우리가 경제학적 관점에서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점은 아이유, 하니(EXID), 청하 등 많은 연예인들이 대형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대형 기획사와 결별하고 다른 길을 찾았다는 점이다. 만일 대형 기획사만으로 가요계의 판도가 완결되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아이유와 하니, 그리고 청하를 못 보았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점은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나긴 연습생 생활을 거치면서 노래, 춤 등 중요한 ‘인적 자본’을 축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획사는 이런 인적 자본 투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대형 기획사일수록 좋은 멘토와 트레이너, 그리고 체계적인 트레이닝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대형 기획사의 선도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아이돌 그룹이라는 ‘상품’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경쟁력을 상실했을 수도 있다.

 

위 두 가지 측면은 대형 기획사가 가요계에 주는 명암을 잘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체계적인 연습생 제도’를 통해 인적 자본 축적에 도움을 준다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자칫 특정 방향의 아이돌 그룹 육성만을 고집함으로써 ‘다양한 상품 공급’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이돌 그룹 산업이 활발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형 기획사의 장점을 잘 유지하면서, 다양성과 창의성이라는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청하의 사례에서 주목할 만한 세 번째 측면은 청하에게 데뷔의 결정적 기회를 제공한 것은 대형 기획사의 용의주도한 마케팅 능력이나 중소형 기획사의 무모한 데뷔 도전이 아니라 <프로듀스 101>이라는 국민 오디션 프로젝트였다는 점이다. 소비자의 선호를 나름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기회가 존재했기 때문에 능력과 다양성 측면에서 적절한 인적 자본을 축적한 연습생들이 선발될 수 있었다.

 

청하

 

노동 및 인적자본 중심의 성장이 중요하다 
요즘 우리 경제가 직면한 최대의 과제는 성장이다. 필자는 그동안 줄곧 종전의 성장 방식인 ‘규제완화 및 물적 투자 촉진’에 의한 성장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과 노동 및 인적 자본의 축적을 장려하는 성장 방식, 즉 노동친화적인 성장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아이돌 그룹이 활동하는 가요계는 이런 고민의 좋은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예를 들어 대형 기획사의 시설 투자를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것은 이 산업의 성과와 큰 관련이 없다. 반대로 연습생들이 알바 생활을 하지 않고 연습, 즉 인적 자본의 축적에 몰두할 수 있게 최저임금을 주도록 유도하는 것은 어쩌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국민 오디션처럼 소비자의 선호를 가감 없이 반영하는 기회, 일종의 시장 테스트가 활성화되도록 지원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정책일 것이다. 그 외 인적 자본의 과도한 소진을 막기 위해서는 전속 계약에 노예 계약적 요소나 과도한 강도의 혹사 조항 등 불공정한 내용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이 산업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역동성과 창의성이 말살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제조업에 대한 정부 지원에 대해서는 여러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서비스 산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문외한에 가까웠다. 대표적 서비스 산업인 가요계는 그런 의미에서 경제정책 담당자가 심사숙고해야 할 여러 가지 함의를 전해 주고 있다. 청하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감탄을 자아내는 춤 솜씨만은 아닌 것이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