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5월 2017-05-02   2800

[읽자] 이불에서 나와 봄을 만끽하는 오월

 

이불에서 나와
봄을 만끽하는 오월

 

글.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가 원을 크게 그리며 ‘오월’이라 소리만 내도 좋은 계절, 어디론가 훌쩍 떠나 나중에 돌아볼 추억거리 하나 만들지 않으면 왠지 손해인 듯한 날씨, 그럼에도 일상이 붙잡고 게으름이 놓아주지 않으니 이불 밖은 위험하다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만족하고는 오늘도 뭉그적거릴 뿐인가. 똑똑, 바람이 문을 두드린다. 톡톡, 친구가 어깨를 건드린다. 탁탁, 나들이 가는 발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온다. 아아, 더는 못 참겠다. 이불킥을 힘차게 날리고 봄나들이 떠나보자.

 

월간 참여사회 2017년 5월호(통권 245호)

● 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_왔노라, 찾았노라, 내 발로! / 안민영 지음 / 책과함께어린이

 

아파트 담벼락에도 역사가 담긴 서울 골목

참여연대에 와본 적이 없다면, 서촌 일대를 거닐며 뜻밖의 답사를 시도하면 어떨까. 『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는 마침 서촌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 지역을 이르는 말로, 인왕산 아래 자리하여 이름난 계곡이 많았고, 정취 덕분에 예부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흔적은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는데, 배화여자고등학교 안에 들어가 인왕산 끝자락 바위 절벽을 만나면 그곳이 바로 필운대다. 필운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의 호로, 그곳에 남겨진 바위 글씨 가운데 이항복의 글씨로 전해지는 것이 있다고 한다. 답사는 옛 흔적을 찾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옛사람의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일이 답사의 참맛이라 전한다. 겸재 정선이 남긴 서촌 일대의 그림을 보고, 배화여고 건물 앞으로 나가 조선 사람들이 필운대에서 바라보던 서촌 풍경을 마주하노라면, 이곳이 서울인지 한양인지 한국인지 조선인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진다. 봄날에 취한다는 것이 이를 두고 한 말 아니겠는가.

 

월간 참여사회 2017년 5월호(통권 245호)

●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_해양생물학자가 우리 바다에서 길어 올린 풍미 가득한 인문학 성찬 / 황선도 지음 / 서해문집

 

발을 담그지 않아도 이미 시원한 바다 이야기
바다는 여름이 제격이라지만, 뜨거운 모래와 차가운 바다에 발을 두지 않더라도 언제나 좋은 곳이 바다 아니겠는가. 물론 바다가 좋은 이유는 또 있다. 바다 내음 가득 품은 해산물은 생각만 해도 싱그러운 맛이 전해지니, 아무래도 바다는 봄이 제격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 맞춤한 안내자까지 나섰으니, 이제 바다로 떠나지 않을 도리가 없겠다. 주인공은 바로 물고기 박사 황선도다. 전작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에서 듣도 보도 못한 우리 바다 물고기 이야기를 전해주었는데, 이번 책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에서는 맛은 알아도 정체는 몰랐던 바다 속 생물 이야기로 진수성찬을 차린다. 늘 생선에게 주인공 자리를 양보하고 비주류 해산물로 여겨지는 해삼, 멍게, 개불의 속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앞이 보이지 않는 뿌연 먼지 속에서도 나름의 삶을 지키며 주변을 맑게 만드는 이들이 보여 애틋해진다. 그러다가도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제철 조개 이야기를 만나면 인생의 참맛이야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바지락, 백합, 재첩 삶은 뽀얀 국물 속에서 시원한 맛의 모순을 즐기는 데 여념이 없다.

월간 참여사회 2017년 5월호(통권 245호)

● 여행, 길 위의 철학_플라톤에서 니체까지 사유의 길을 걷다 / 마리아 베테티니·스테파노 포지 엮음 / 책세상

 

왜 여기에 있는지 몰라도 좋은 여행
그럼에도 왜 떠나야 하는지 고민이라면, 떠나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평생 무엇을 찾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떠돌다 고민의 흔적만을 오늘에 남긴 철학자들의 여행을 만나보자. 여행보다 산책을 즐기며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칸트 덕분인지 철학자는 세상을 떠돌기보다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머릿속의 사유를 즐기는 이들로 여겨지는데 『여행, 길 위의 철학』에서 만난 철학자들은 사뭇 다르다. 그들은 깨달은 이를 만나거나 해결되지 않은 생각의 조각을 찾아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넜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곳을 탐험하여 세상에 전하기도 했다. 물론 니체의 여행길이 총 3,761킬로미터였고, 무려 4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는 대목에서는 그토록 찾아 헤맨 것은 결국 나 자신일 텐데, 하며 주저앉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들처럼 철학의 방식으로 여행을 택하지 않더라도, 막상 도착하거나 돌아올 때면 왜 이곳에 왔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때가 있더라도, 이유 없이 떠나고 싶을 때가, 떠나는 모습이 자연스러울 때가 있는 법 아니겠는가. 바로 지금, 봄 말이다. 

 


글.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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