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6월 2008-05-19   2768

칼럼_ ‘되고송’을 불러보셨나요?

‘되고송’을 불러보셨나요?

박영선『참여사회』 편집위원장 baram@pspd.org

제가 지난 편지에서 이번 달에는 꼭 상쾌한 소식을 전하리라 약속했었지요? 원고 마감 시간을 앞두고 골똘히 생각을 모아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어 주변에 탐문까지 하였지요. 그런데도 딱히 선생께 전할 만한 상쾌한 뉴스가 없네요. 상쾌하기는커녕 불쾌함, 나아가 무력감까지 느끼게 하는 일들투성이였던 것 같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불쾌함과 무력감의 정점은 총선 결과일 테지요. 오십 퍼센트에도 미치지 않는 투표율부터 어이없는 금권, 관권선거에, 당 대표부터 나 몰라라 발뺌해야 하는 비례대표 의원의 선출에 이르기까지. 어디 그것뿐입니까. 삼성 특검이나 쇠고기 협상 결과는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불쾌함이 덜하진 않지요. 또 0교시 부활 방침은 정치문제에 있어서 열외로 보호(!)되었던 어린 청소년들까지 열 받게 했습니다. 오직 자연만이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탁류의 불쾌함을 덜어줄 뿐이군요.

그런데, 김 선생. 요즈음 세상을 그리 비관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는 소리가 유난히 귀에 와 닿네요. 우연히 최근에 읽은 몇 편의 글에서도 ‘긍정’의 가치와 에너지를 내세웠는데, 평소와 달리 거부감이 들지 않아 의아했답니다. 저도 이제 삐딱한 세상살이에 지친 걸까요.

교도소에서 인문학 강의를 맡아 12주 동안 수용자들과 시를 함께 읽었다는 한 문학평론가의 글에 수용자에게 받은 편지가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편지에서 수용자는 그에게 세상에 대해서 자못 비관적인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며,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곳이고, 죽음이 찾아오는 그날까지 어쨌든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삶을 가꾸어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지요. 푸른 수의를 입은 채 기껏해야 한 평 남짓한 방에서 높은 담장 너머의 세상을 원망할 것이라 여겼던 수용자가 건넨 말로서는 정말 의외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국 필자도 “이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곳으로 생각하는 편이, 절망으로 채색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요.  

한 시사주간지에서 ‘노땡큐’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쓰던 이는 만약 ‘땡큐’한 것에 대해 쓰라면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 아니 백 허리를 버혀 내어도 얼마든지 쓸 수 있을 거 같지만 ‘노 땡큐’라고 이름붙인 한 바닥의 칼럼은 아주 힘든 전장이었다는 고백을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돌아가는 시국이 꼴사나워 한바탕 불평을 쏟아내거나, 일이 맘먹은 대로 안 풀린다고 짜증을 낼 때 혹은 심사가 뒤틀려 누군가를 비난할 때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더러운 기분이지요. ㅎㅎ 때때로 친구들이 상황의 어려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거나 욕을 하는 걸 무심히 들을 때조차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맞장구를 치다가도 서서히 지쳐가는 것이지요. 김 선생은 그런 경험 없으셨나요?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소멸되는지 과학적으로 측정이 불가능하겠지만,  우리들의 분노나 절망이 기운을 북돋는 데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혹시 ‘되고송’ 들어보셨어요? 한 이동통신 CF에서 장동건이 흥얼거리는 노래인데, 벌써 앨범이 나왔다지요.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김 선생도 처지에 맞는 ‘되고송’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맘에 들지 않으시면 그냥 김 선생만의 되고송을 만들어도 되고요. 제가 애독하는 영화 잡지의 편집팀장이 ‘되고송’을 흥얼거리며 마감을 무사히 넘겼다고 하는 걸 보니 ‘되고송’이 발산하는 무한 긍정 에너지가 효력이 있긴 있나 봅니다. 

저는 ‘되고송’이 진화를 거듭하며 고단한 일상으로 인해 시름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애창곡이 되어가는 현상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결코 상쾌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상쾌함을 만들어내는 평범한 이들의 지혜를 느낍니다. 사실 누구 말처럼 한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면서 긍정하는 힘을 가지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긍정하고 수긍하는 자는 무조건 순진하고 따분한 삶으로 평가해버리기 일쑤지요. 하지만 굳이 긍정의 가치를 짓밟는다고 해서 뭐 나아지는 게 있을까요. 또 세상사가 어찌 궂은 일만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새삼 제가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들 세상이 천지개벽하여 제가 꿈꾸는 세상으로 변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제가 짜증내고 불평하던 에너지는 모두를 위해 훨씬 생산적으로 쓰이겠지요. 예컨대 다른 사람에게 미소를 짓게 한다거나, 아님 혼자 웃거나 말입니다.

매일 얼굴에 인상을 쓰고 사는 제가 긍정의 힘 운운하는 글을 쓰다니…. 참 쑥스럽습니다. 어느 봄날 우연찮게 마주친 벚꽃의 낙화 행렬에 눈이 홀렸는데, 그 황홀경에 어느새 제 마음도 홀렸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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