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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 07월
  • 1995.07.01
  • 694
미군은 치외법군(治外法軍)인가?
한미 행정협정에 독소조항이 많다는 얘기는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미군 범죄를 다루는 형사관할권 행사의 불평등성은 자주 거론돼왔다. 하지만 이 형사관할권상의 문제는 한미 행정협정이 안고 있는 문제점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행정협정의 여타 불평등한 문제로서 민사청구권 행사에 있어서의 문제점(제23조), 미군기지 노무자 처우문제(제17조), 통관·관세 및 조세상의 특혜문제(제9조, 제14조), 미군시설과 기지 사용(제9조, 제12조, 제20조, 제24조)으로 인한 환경문제와 국민의 재산권 침해 문제, 협정해석시 영어본 우선(제31조) 등이 있다. 이중 일반 국민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는 주한미군 근로자의 노동권 문제를 중심으로 행정협정의 불평등성과 그나마 그 규정조차도 준수하지 않는 구체적 사례를 소개해보겠다.

한국인 노동자는 주한미군의 봉(?)

주한미군에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은 행정협정에 의해 한국 노동법상의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부당해고, 부당처우 등을 감수해왔다. 더욱이 한국인 노동자들의 쟁의권은 온갖 절차규정으로 인해 껍데기가 되어버린 상태다. 하지만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고용노무자의 근로3권에 대해서는 ’91년 개정 양해사항에서도 전혀 언급이 없었다.

그러므로 현행 직접고용제를 간접고용제로의 전환을 포함하여 주둔군 지위협정상 노무조항(제17조)도 최소한 한국노동법 수준으로 보장되도록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한 예로 주한미군에 고용된 한국인 근로자의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행정협정상 ‘군사상 필요’로 해고시킬 수 있다는 막연한 개념을 삭제하고, 한국노동법상의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해고할 수 없다고 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행정협정상 냉각시간이 70일로 이는 지나치게 길다. 이것도 한국노동법처럼 최소한 15일 이내로 줄여야 한다. 그밖에 직접고용제를 간접고용제로의 전환을 포함하여 행정협정상 노무조항(제17조)도 최소한 한국노동법 수준으로 보장되도록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현행 불평등한 노무조항조차도 미국 측이 지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난 ’94년 11월8일에는 “주한미군에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라 하더라도 임금 등 고용조건에 관한 한 국내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그리고 대법원은 지난 5월 주한미군에 근무하던 시급제(時給制) 한국인 근로자 24명이 낸 소송과 관련, “시급제는 월급제와는 달리 각종 수당이 임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이를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 별도의 주휴 및 월차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이는 대법원이 주한미군 근무자라 하더라도 개별적 노사관계에서는 국내법을 적용토록 한 것이다. 동시에 이는 미군이 자체 인사규정을 적용, 노동자들의 임금을 일방적으로 결정해온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었다. 이 판결은 주한미군에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 1만5,000여 명 거의 대부분이 시급제로 고용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전체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을 시사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94년11월17일 열린 한미 행정협정 제175차 합동위원회에서 주한미군 측은 한국인 노동자라 하더라도 임금 등 고용조건에 한국노동법을 적용토록 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강력하게 반발, 사실상 이를 거부하였다. 주한미군 당국은 한미 행정협정의 관련 규정을 들어 한국의 어떤 기관도 노사분쟁의 관할권이 없다며 한국법원이 이 사건을 재판하는 것 자체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행정협정조차 위반하는 미군당국

그런데 행정협정 제17조 제3항에는 “본조의 규정과 합중국 군대의 군사상 필요에 배치되지 아니하는 한도내에서 합중국 군대가 그들의 고용원을 위하여 설정한 고용조건, 보수 및 노사관계는 대한민국의 노동법령 제규정에 따라야 한다.”라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더구나 개정 양해 사항(’91년)에는 “제3항에 사용된 ‘따라야 한다’는 고용조건, 보수 및 노사관계가 본조항 또는 합의의사록 제4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합동위원회에 의해서 별도로 합의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 노동법에 의해 정해진 조건과 실질적으로 일치해야 함을 의미한다”라고 반복적으로 한국노동법의 적용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미군 측의 주장은 행정협정 제17조 제3항 그리고 개정 양해 사항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이러한 미군측의 위반은 대한민국의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것으로서 대한민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처사다. 외국 군대는 치외법권 대상이 아니다. 치외법권이라는 것은 과거 식민지 열강시대에 유럽국가가 남미나 아프리카 국가를 식민지화할 때 식민지국에서 법적 문제가 발생시 자기들은 높은 법문화를 가진 나라로 낮은 법문화를 가진 나라의 법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식민지 지배적 사고에서 연유하며, 오늘날은 국제법상 인정되지 않는다.

현대 국제법에서 외국 군대나 외교관에 특권과 면제를 주는 이유는 그들이 치외법권적 대상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군대를 파견한 목적 및 외교관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접수국이 편의 차원에서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이라 하더라도 행정협정에 달리 규정되어 있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법령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고, 그래서 국민은 세금을 낸다. 그런데 그 동안 정통성 없는 정부는 미군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 미군을 처벌하는 사후관리에도 소홀하였고, 그 피해국민의 권리보호에도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광복 50주년을 맞이하면서 이 땅의 위정자들은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서구열강에 맞서 부단히 민족의 자존과 독립을 지키며 희생된 수많은 독립지사들의 애국심을 배워야 한다.

세계화라는 것이 한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제 정부는 상기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한 미군 측에 정식으로 외교문제로 제기하는 한편, 불평등한 한미 행정협정의 전반적 개정을 미국 측에 당당히 요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장희(한국외대 법학과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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