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4월 2008-03-17   940

특집_대선 이후:17대 대선이 남긴 시민사회의 과제

17대 대선이 남긴 시민사회의 과제

‘양극화 넘어서서 삶의 질 시대로’

전성환 2007 대선시민연대 삶의질정책운동본부 공동본부장
           한국YMCA전국연맹 정책기획국장

17대 대선이 끝났다. 진보개혁세력이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참패하고 말았다.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 아직도 말이 많다. 수구·보수세력의 득표율이 65%에 이르고 진보개혁세력의 득표율은 35% 정도에 머물렀다. 원래 이 정도가 한국사회 정치세력들의 본래의 득표력을 정확히 보여준 것이라며 애써 안위하는 평이 있는가 하면 진보개혁세력을 철저히 외면한 중도적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지 못해 장기적으로 일본처럼 우익 보수화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진단 또한 등장한다. 다음 대선에서도 수구보수세력은 대통령 후보로 나설 선수가 뚜렷한 반면 진보개혁세력은 선수 자체가 없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향후 한국사회의 진보담론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나타낸다. 

1997년 이전에는 민주화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정권교체가 개혁세력 최대의 화두였다면 사회적 양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고용 없는 성장’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대’ ‘저출산·고령화 추세’ ‘심각한 청년 실업’ 등은 시민사회 자체의 위기와 다원화를 촉진했다. 소위 평화개혁세력 내에서도 중도와 진보 사이의 간격이 매우 커져(예를 들면 한미FTA에 대한 입장차) 있는 가운데 단순히 수구세력 혹은 부패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담론으로는 신보수세력의 ‘선진화담론’에 맞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대통합민주신당의 통합과정은 단순히 ‘평화개혁세력’의 대동단결(?)이라는 구호 아래 촉박한 정치일정에 따라 국민적 동의를 구하지 않고 급속도로 진행됨으로써 2002년 대선과 같이 경선과정 자체로 흥행몰이를 하려는 의도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보수세력의 ‘성장담론’과 ‘선진화담론’에 대비되는 문국현 후보의 ‘사람중심 경제담론’ 또한 주류 담론화하는 데 실패하였다. 아니 이명박 후보처럼 ‘이미지화’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명박 후보는 눈에 보이는 ‘청계천사업’이 있었고, 다른 후보들은 ‘이미지화’가 가능한 가시적 성과가 없었던 것이다.

성장의 덫에 걸린 유권자

미국의 민주당이 지난 두 번의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에 패한 이유를 ‘담론 프레임론’에 입각해 명쾌하게 설명했던 책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에서 말한 바대로 한국의 보수세력 또한 ‘잃어버린 10년’, ‘세금폭탄’, ‘규제완화’, ‘정부의 비대화’,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프레임으로 조중동과 같은 보수신문을 나팔수로 내세워 끊임없이 보수담론을 유포시킴으로써  국민들을 ‘성장의 덫’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역설적이게도 10년 전 IMF 외환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인 정치세력이 ‘경제를 살린다’는 슬로건으로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다. 위장전입, 자녀 위장취업, 세금포탈, 여성비하발언, BBK 주가조작 연루의혹 등 온갖 부패와 비리의 악재와 검찰의 BBK 수사결과를 뒤집는 결정적인 물증이 선거 막바지에 발견되었는데도 표심은 움직이지 않았다. 각종 여론조사결과에 의하면 국민들 60% 정도가 검찰의 수사결과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결정적 물증이 될 동영상이 발견되는데 BBK와 대통령선거는 마치 별개라는 듯 투표하고 말았다. 진보개혁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전면적 도입으로 실업과 양극화 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적 진단을 하고 있는 반면 다수의 유권자들은 보다 급격하게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여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울려퍼지지 않은 유권자 목소리

이번 17대 대선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은 ‘판을 흔들자!!(Rock the Vote!!)’라는 슬로건하에 성장이데올로기에 맞서 ‘삶의 질’이라는 화두로 정책선거를 유도하고자 전국 370여 개 단체로 2007대선시민연대를 결성하였다. 교육, 복지, 환경, 경제·노동, 여성, 지역, 평화 등 7개 분야에서 7대의제를 채택하여 정책쟁점화하고, 다음아고라를 통하여 생활 공약 1,000개 모으기, 경부운하 등과 같은 나쁜 공약 뽑아내기 등의 운동을 펼쳤다. 또 각종 번개모임과 판도라TV와 연계한 UCC 공모전, 부동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1가구 1주택 청계천 텐트촌 퍼포먼스’, ‘유권자한마당’ 등 유권자의 직접행동을 통한 ‘유권자 목소리 운동’을 전개하여 대선을 명실상부한 유권자 축제로 이끌려고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중과부적이었다.

후보 아닌 유권자 감시에 주력했던 17대 대선

누가 선거를 축제라고 했던가?  축제는 잘 짜인 이벤트에 끼어드는 의외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동안 정치권은 선거라는 축제장에서 그 의외성을 ‘공작정치’와 ‘여론조작’이라는 형태로 재미없게 만들어왔었다. 사실 2002년 대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축제적 요소가 다분한 선거였다. 이번 선거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력 언론들의 여론조사 결과가 유권자들에게 ‘나 한사람의 표는 대세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다’고 확신하게 만들고 축제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보다는 ‘재미없는 축제’로 인식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여기에 선관위와 경찰은 온라인 공간에서 선거법 93조라는 독소조항으로 유권자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 유권자 참여를 철저히 차단함으로써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선거인가’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보게 만들었다. 이런 여건 속에서 정책선거의 기치를 높이든 대선시민연대는 너무 앞서간(?) 것이었다. 그렇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이 ‘삶의 질’과 ‘유권자 목소리’라는 선거 방향을 설정한 것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능력이 부족했을 따름이다. 

‘삶의 질’ 담론으로 10만 시민 양성하자

2008년 이후 시민사회와 시민사회단체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는 않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은 오히려 뚜렷해졌다.  ‘나쁜 경제, 좋은 경제’, ‘성공하는 경제대통령’ 등 경제가 이번 선거를 관통하는 주제였고 앞으로도 당분간 한국사회를 관통할 것이다. 시민사회 또한 ‘양극화를 넘어서 삶의 질 시대로’라는 화두로 한국사회에 도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새롭게 바꾸어나가는 험난한 과정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성장’과 ‘성공’의 신화로 똘똘 뭉친 불도저 대통령 밑에서 살아남은 행정관료와 기술자(테크노크라트), 전문가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실 양극화는 시민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위기다. 세계사적으로도 역사적 반동이 나타나는 시기는 늘 한 국가 혹은 세계의 경제위기였다. 삶의 여유가 없는 서민들이 시민사회를 지탱할 힘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의 본래적 기능은 공론장을 형성하고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데 있다. 민주화운동 초기에 수많은 곳에서 교양과 교육, 시민대학 등을 열어나갔던 열기와 열정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야 한다. 눈높이를 다시 청년세대에 맞추고 함께 호흡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삶의 질’ 담론으로 무장한 청년과 시민 10만 명을 만든다는 목표하에 뛰어야 할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생각하는 사람들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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